1912년 1월 30일, 프란시스 쉐이퍼(혹은 쉐퍼, Francis August Schaeffer) 출생, "전제가 다른 이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

1월 30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분명한 방식으로”
오늘은 복음주의 지도자 프란시스 쉐이퍼(혹은 쉐퍼, Francis August Schaeffer)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2년 1월 30일, 쉐이퍼는 펜실베이니아 주 저먼타운에서 출생했습니다. 만 18세에 예수님을 믿게 된 쉐이퍼는 함든 시드니 대학(Hampden-Sydney College)과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페이스신학교(Faith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였습니다. 몇 년간의 목회사역 후 그는 스위스로 이주하였습니다.

1941년에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체스터 시에 있는 다른 성서 장로교회로 옮겼는데……그의 회중의 대부분은 조선소 노동자, 트럭 운전사, 상점 점원, 농장 일꾼들과 같은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가 자라온 환경 때문에 쉐퍼는 함께 졸업한 다른 동료들에게는 항상 불가능했던 노동자에로의 접근이 자신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게는 지식인이나 노동자나 모두가 동일한 기본적 질문을 물어오는 것이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은 보다 분명한 언어로 질문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설교를 그의 모든 회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너무 지적이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으나, 또한 가식적으로 자신을 낮추지는 않았다……후에 쉐퍼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중국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웠던 것처럼 자신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분명한 방식으로 진리를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라브리에 온 모든 사람들이 지식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목사로서 받은 훈련은……큰 효과를 자아냈다.[Christopher Catherwood, Five Evangelical Leaders, 김영우 역, 『5인의 복음주의 지도자들』 (서울: 엠마오, 1992), 152-53.]

쉐이퍼는 1955년에 라브리(L'Abri, 불어로 “쉼터”)를 세워 많은 구도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전제가 다른 이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창기와 세리와도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정곡을 찌르셨던 예수님처럼 젊은이들을 대했던 프란시스 쉐이퍼. 그의 열정과 지혜를 본받아 방황하는 내 이웃을 돕기 원합니다.

에디스와 나는 A형 포드 자동차……로 구혼을 하고 또 신혼여행을 했다. 그 차는 나에게 대단히 귀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나는, 여름 성경 학교 때면 어린이들을 너무 많이 태우고 다녀서 스프링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차체가 축 처진 채 몰고 다녔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 차가 보기에도 너무 덜거덕거린다고 판단하고 새 차를 구입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낡은 자동차에 슬픔을 느꼈고 또 배반자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새 차는 대단히 좋은 것이었다……중고품 판매원이 손질을 해서 윤이 났다. 나는 전시장을 떠날 때 이보다 더 큰 자만심으로 충만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기 전에 좁은 길에서 어떤 사람이 내 차 옆을 너무 가까이 통과하였기 때문에 벽에 약간 스쳐서 길게 긁히고 말았다. 그리하여 기쁨은 사라졌다. 그러나 오히려 차가 긁힌 것이 기뻤다……그 이유는 내가 만약 그릇된 관점에서 재물을 본다면 많은 재산도 얼마나 말썽이 되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Francis A. Schaeffer, No Little People, 전호진 역, 『쉐퍼의 명설교』 (서울: 생명의말씀사, 1993), 2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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