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고백록 강독 5 (97부터 119까지)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1. 서론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초대교회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사상가요 역사가중의 한사람이다.1) 그는 한때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하여 젊음을 방탕하며 오랫동안 유랑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그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로 회심하여 하나님께 돌아왔다. 

어거스틴은 회심후 초대교회 극도로 혼란했던 시대에 지도자로서 기독교를 재건하는데 앞장을 서 서방문화의 기틀을 세우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는 초대교회를 대표할만한 교부중의 교부요 실천적인 카톨릭의 아버지였다.2)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기독교 전통의 역사와 신학의 바른 이해를 원한다면 어거스틴에 대한사상적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초대교회의 마지막 인물이면서 그의 역사철학과 은총의 교리는 중세교회와 종교개혁의 사상적인 지주가 되었다.3) 그러므로 루터의 신학이 개혁신학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면 어거스틴의 신학은 청교도 신학의기초가 되었다고 할수 있다.  

2. 어거스틴의 생애 

어거스틴은 그의 스승 암부로시스와 함께 서방교회의 대부로 초대교회와 중세교회를 연결하는 교부였으며 그는 누구보다도 다양한 인생을 살았고 또 경험했던 믿음의 성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어거스틴은 생애동안 참회록을 비롯하여 750편의 설교와 강해서 그리고 삼위일체론과 신의 도성이란 저서를 포함하여 많은 신학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생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년기와 중년기와 노년기등으로 나누어 이해함이 좋을듯싶다. 

1) 제1 시기 

어거스틴(Augustinus) 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북아프리카 누미디아(Numidia) 지방의 타카스테(Tagaste)라는 작은 마을에서 A.D 345년 11월 13일 태어났다. 그곳은 오늘날 알제리이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Patricius)는 이교도 였으며 시 의원으로서 성격이 사납고 방종한 습관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사에서 칭찬을 받는 어머니중의 한사람이다. 

어거스틴은 아버지의 지적인 성격과 어머니의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그는 뛰어난 재능꾼이었다. 그의 부모는 어너스틴의 교육을 위해 16세가 되던해에 마디우다의 카르타고로 보내 수사학과 라틴문학을 깊이 연구(AD371-375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때 사회적 신분이 낮은 여인을 사랑하여 15년 동안 살며 아데오다투스(Adeodatus) 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사는 젊은 시절 심한 영적 갈등을 격었다. 이때 그는 19세때 키케로의 호르덴시우스(Hortensius)의 작품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아 진리의 철학적 탐구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뒷날 당시의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자신이 기독교를 향하여 내디딘 첫 발걸음이 되었다고 하였다.4) 

어거스틴은 이때 철학에서도 공허했던 자신의 정신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당시 북 아프리카의 페르시아 제국에 널리 퍼져있는 마니교(Manicheism)에 심취하여 9년동안 따르게 되었었다. 

  마니교는 기독교와 이교도의 사상을 혼합 한 이원론적 사상(二元論的 思想)이다.5) 즉 빛과 어둠, 영적인것과 물질적인것에 유래하는 혼합주의로서 이들에게 구원이란 이 두가지 요소를 분리시켜 영혼의 정신은 순수한 빛으로 귀환하도록 준비하는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마니교에 빠졌던 어거스틴은 성경이 세련되지 못한 문체와 표현으로 가득차 있으며 물질주의요 유치한 언어의 표본이라고 격멸하였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문자적 표현 그대로 인식하고 폭력 ,강간, 부도덕, 사기 등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였다면 이 세상에 어떻게 악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리고 존재의 본질이 무었인가 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 하였던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의문들을 마니교의 교사들에게 제기하였는데 이때 마니교 교사들은 어거스틴의 심오한 질문을 알게 하기 위하여 파우스트(Faustus)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그를 만난 어거스틴은 그의 무지에 대하여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그를 만나면 그동안 해결되지 못한 영혼의 갈급한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했지만 실망한 나머지 어거스틴은 9년동안이나 따르며 생활하였던 마니교를 결국 떠나게 되었다. 

마니교를 떠난 어거스틴은 이제 종교를 버리고 인간의 이성에 의하여 삶의 본질에 문제를 해결하고자하여 카르타고에서 수사학, 문학,음악, 철학등 다양한 학문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였지만 의문점만 더 늘어날뿐 그가 추구하는 영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29세가 되던 383년 카르타고를 떠나 바다 건너 이탈리아로 가서 384년 밀란의 국립대학에 수사학 교사가 되었다. 어거스틴은 그곳에서 자신의 찬란한 미래의 꿈을 꿀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학문을 하면 할수록 그 어느때 보다도 더 마음의 불안과 번민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이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그가 로마로 가는 것을 극구 만류하며 원치를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는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도시였으나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종교는 형식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여기서 암부르 시우스를 만나게 되었다. 암부로 시우스는 신학자요 감독이었다. 이때 어거스틴은 암부로시우스의 영향과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사상아래 있었다.  어거스틴은 이곳에서 암부로 시우스와 신 플라톤 주의자들의 신학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암부로 시우스의 신학사상은 구약성경의 어려운 부분들을 풍유적으로 취급하는 것을 배웠고 또한 신 플라톤주의자들을 통하여는 하나님의 영적 완전성과 내적 명상을 통한 통찰력을 배웠다. 마니교가 물질 세계를 죄악시 하는데 비하여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악을 단순히 선의 결여에 불과 하다는 해석이 더 마음에 들어 신 플라톤 주의로 기울게 되기도 하였다. 어거스틴은 암부로 시우스의 풍유적 해석의 설교와 수도사 안토니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회심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지만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지는 못하였다.6) 그가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386년 밀란의 정원정원 의 벤취에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와 않아 있을 때 어린 아이들의 떠들며 노는 소리에서 한 음성을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네옆에있는 성경을 펼쳐 읽으라”는 소리였다.  어거스틴이 들었던 성경은 롬13:13-14절의 말씀이었다. “낮에와같이 단정히하고 방탕과 술취하지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말라” 이때 어거스틴의 나이는 서른두살이었다. 7) 

2) 제 2 시기 

어거스틴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신앙을 저버리고 끝없이 방황하며 세상과 타협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방황하고 고뇌하던중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의 기도속에 회심을 하게 되며 그의 생애를 새롭게 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로마 카록릭 교회에서는 일년에 두 번 회심 기념일을 지키는데 1월25일에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던날과 또 하나는 어거스틴이 회심을 하였던 5월5일을 기념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요청으로 당시 밀라노에서 목회를 하던 암부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게 된다 처음에는 암부로시우스의 설교를 수사학적 평가를 하기 우해 들어지만 점차 시간이 지남에따라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거스틴의 눈에 비춰진 암부로시우스는 교회의 권위가 구현되는 그 어떤 회의적인 상태를 넘어 확신과 교회의 교훈을 하나님의 진리로 받아 들여 순종케하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암부로시우스는 어거스틴이 이해할수 없던 성경 구절을 풍유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대한 암부로시우스의 모형론적 해석은 어거스틴의 오랜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암부로시우스의 웅변적인 설교는 어거스틴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암부로시우스와의 만남으로 하나님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암부로 시우스를 만나면서 새로운 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고 긴 세월의 방황이 끝나게 되었다. 

그후 어거스틴은 밀라노를 떠나 고향 아프리카의 타가스테로 돌아 가던 도중 로마 근처의 오스티아 항구에서 갑짝 스럽게 어머니를 잃고 말았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56세의 일기로 오스티아 항구에서 개종한 아들 어거스틴을 품에서 행복한 최후의 순간을 보냈다. 그후 어거스틴이 전하는 어머니의 죽음은 고대 기독교 문화에서 가장 고상한 기념비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어거스틴은 어머니를 잃은지 얼마 안되지 않아 그가 사랑했던 아들 데오도시투스도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3. 제3시기 

어거스틴은 고향에 돌아와 기독교회의 신앙운동을 위하여 수도원을 세울 계획을 하였으며 남은생에 책을 쓰는일과 힙포의 주교로 헌신하는 시기였다. 그는 고향 타가스테에 금욕주의자들의 작은 공통체를 만들어 남은 생애를 보냈다, 

  어거스틴은 387년 그의 나이 34세때 밀라노의 목회자 암부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수도원 건립을 위하여 힙포에 가 392년 힙포의 장로가 되었으며 395년에는 발레리우스가 죽자 그의 뒤를이어 주교가 되었다. 이때 어거스틴은 주교직의 계승은 그의 또다른 생애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소명감을 깨닫고 주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는 설교하는 일과 성경의 해석 및 저술활동외에도 성직자를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에 힘썼다. 또한 그는 400년경에 자신의 삶에 체험과 구원받은자로서의 찬양시인 참회록 참회록을 쓰게 되었다. 그가 참회록을 쓰게된 동기는 당시 사회에서 어거스틴을 성자요 교부중의 교부라고 위대하게 잃컬어지던 자신을 바로 설명하기 위하여 참회록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여러분들에게 위대하ㅣ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죄인중에 죄인이었음을 고맥하며 자신이 있데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은혜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 기록하게된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저서는 신의 도성이다. 이 책은 어거스틴의 필생에 대작으로서 413년에 시작하여 426년에 완성하였다. 이 책은 당시 지적 도전에 답하는 하나의 역사철학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의 변증서라고도 할수 있다. 

당시 로마인들의 마음에는 이러한 사상들이 있었다. 옛날 로마의 신들을 섬길 때는 모든것이 평안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뒤에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는데 그 것은 로마의 신들이 노하여 로마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비난을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답변하는 입장에서 기록한 “왜 하나님은 로마의 멸망을 허락하셨을까?”에 대한 변증서이다. 

  로마가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웁을 격게된것은 기독교를 받아 들여서가 아니라 기독교가 들어오기전에도 로마에는 무수한 재앙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로마는 오히려 기독교를 받아 들이기 이 전에는 더욱 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였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 들임으로 말미암아 이 만큼이나마 유지할 수가 있었으며 큰 유익을 얻게 된 것 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의 세 번째 명작은 삼위일체론이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론에 관하여 서방신학을 최후로 확정시키는데 이를 만큼 발전시켰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들이 정립되지 못한 시대였다. 

아리우스의 성자에 신성과 인성의 문제라든지 터툴리안이나 오리겐이나 아다나시우스등은 성자와 성령이 성부에 종속되었다는 종속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교리를 다룰 때 신의 단일성, 즉 일체성을 먼저 강조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인격적으로 한 본질에 속하여 창조자 하나님과 전능한 삼위일체가 구별될수 없이 일하고 계신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홀로 계시며 위대 하시고 전능하시며 선하시고 의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다 지으신 분이시다. 

어거스틴은 삼위 일체를 이렇게 부자간으로 설명을 하였다. 아버지는 사랑하는자요 아들은 사랑받는자요 성령은 그 두사이를 있는 사랑이시라고 보았다. 

1. 어거스틴의 신학사상 

어거스틴 의 대표작 가운데 3가지는 첫째가 자신의 삶에 체험적인 회심을 기록한 고백록을 들수 있다 고백록은 그가 회심하여 돌아온 뒤 글을 얼마 되지 않은 400년경에 썻다. 두 번째 글은 413년 시작하여 426년에 완성을 본 신의도성(City of God) 이다. 이책은 당시 지식적인자들에 대한 변증서로 역사철학이다. 그글은 당시 예수를 믿는 로마가 왜 망했는가라는 지식인들에게 답을 주는 글이며 사람들이 사는데는 이땅의 도성이 있는가 하면 하늘의 도성이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변증서이다. 

세 번째가 오늘 함께 연구 하고자하는 삼위일체론이다.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서방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당시 교회 안에는 터툴리안이나. 오리겐, 아다나 시우스등의 삼위일체론은 성자와 성령은 성부에 종속한다는 종속설을 가르쳤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터툴리안이나 오리겐, 아다나 시우스등이 주장한 삼위일체론을 배제하고 성부,성자, 성령의 위격에 일체성을 강조하며 “인격”면에서도 완전한 동등성을 가르쳤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삼위일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 실례로 성부를 기억(記憶)(memor)이라는 단어로 성자를 이해(理解)(understaning) 라는 단어로 성령을 의지(意志)(Will)로 설명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또 한가지는 성부를 사랑하는자로 성자를 사랑받는자로 성령을 사랑등으로 삼위일체를 성명하고자 하였다. 

2. 어거스틴의 기독관 

어거스틴은 회심후 교회의 권위에 순복하였고, 또한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들였다. 회심 이전에 그는 철학적 이성에서 진리를 발견하려고 생각했지만 회심후에는 철학과 신학의 사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독교의 신조와 일치되는 선에서 이해하려 하였다. 

어거스틴은 모든 것을 믿음에 기초한 동시에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복종과도 일치되는 논리적 사고는 기독교와 신 플라톤주의를 종합시킨 형태를 취하여 인식했다. 어거스틴은 두 사상을 종합하여 하나의 중심 사상을 이루는 것은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라는것과 선행적 은혜란 그가 친히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에게 내려 오심으로서 결과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은 카리타스 변증법적인 특징을 가진 것으로 모든 인간속에 감추어저 있는 지고의 선에 대한 열망과 관계된 사상이다. 즉 열망으로 인한 노력은 세상을 향한 잘못된 사랑과 인간 자신에 의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반드시 그 방향이 지고의 선을 향하도록 재 수정 시켜 줌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소유하는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만족을 얻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거스틴은 기독교 복음을 요약해서 설명해 보려는 의도에서 신 플라톤 주의의 기본적 교리인 에로스 교리로서 기독교의 구원 교리와 결합 시켰던 것이다. 

3. 교회관 

어거스틴의 교회 개념은 3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다. 그첫째 로 어거스틴은 카톨릭 교회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믿음의 출발을 삼았다. 어거스틴이 주장한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이다.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과 성레와 성직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만이 신도들을 구원하고 정화 시킬수 있다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인 카톨릭 교회 밖에는진리도 없고 구원도 없다. 그리고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신성모독이다라고 한다. 

둘째는 어거스틴은 교회의 외적인 조직으로는 현실적 교회와 성도들의 사귐으로서 교회를 구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자들은 불가시적 연합에 속한다고 하며 교회의 외적으로 속해 있는 자들과 진정한 의미로 교회안 에 속해 있는 자들로 구별하였다. 셋째는 하나님께 예정된자와 예정되지 않는자를 구별하였다. 즉 불가시적 연합은 예정된 성도의 단체와 일치되지 않는다고 하며 결국에 가서는 긍극적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고 인내의 은사를 받은 전자만이 참된 교회의 일원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4. 죄와 은총관 

1). 죄 

  어거스틴의 죄란 정신의 죄로부터 시작한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스스로 존재하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을 위해 원했으며 또한 자기의 힘으로 서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신을 외면하고 타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하는 죄는 “인간의 자만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신에게 돌아가는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멸망의 무리에 속하게 되었고 어린 유아들도 멸망 받을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죽음에서의 구원은 신의 특별한 은총의 행위로서만 가능하다고한다.  

2). 은총 

어거스틴의 죄에 개념은 곧 은총의 개념이다. 신이 우리를 선택한 것은 우리가 거룩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했다면 어떤 인간을 멸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권한이 인간에게는 없다. 신이 우리를 선택 했다면 그 결정을 이루시는 것은 신이다. 더 나아가 어거스틴은 용서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나타난 최고의 선이며 현실적인 참여로 본다. 신은 우리들의 그릇된 욕구 대신에 착한 욕구를 불러 일으킴으로서 우리 마음속에 아가페를 퍼지게 함으로서 우리를 돕는다고 말한다 

5.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의 삼일체론은 A.D 400-419년까지 약 20여년의 긴 세월동안을 걸처 저술하였다. 그가 쓴 삼위일체는 초대교회가 400 에걸처 논쟁을 거듭한 기독론과 성령론을 종합하여 가장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며 정통성있는 삼위일체 신앙을 체계화한 불후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터툴리안이나 오리겐, 아다나시우스등이 그 이전에 주장하던 종속설을 모두 배재하고 독자적인 삼위일체론을 정립시켰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가 삼위일체론을 쓰게된 동기와 목적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는 유일하시고 하나이신 참된 하나님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인 동시에 동일한 본체에서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바로 말하며 이해할수 있을까 해서 삼위일체의 글을 쓰게된 동기가 되었고 목적이라고 할수 있다. 

1). 삼위의 동일 본질 

삼위는 나누어질수 없는 동등한 본질에 속하고 있다. 이 본질 자체는 한 하나님으로서 불멸 불가견적이라 항상 계시는 자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성부와 성자는 모든일에 있어서 그 본질이 동일하시므로 동등할 수밖에 없다. 

그는 성자의 완전한 “나심”과 신성의 중간이 없는 발생을 말하며 낳으신 성부와 나신 성자의 완전한 동등을 강조하므로 유출설과는 다르다. 성령도 성부와 성자에게서 보냄을 입었으므로 이에 못지않게 동등하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plotinus의 유출설과 노스틱주의의 이원론과 아다나시우스의 종속설을 모두 극복하고 성부 성자 성령은 그 어디에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동일 본질이라는 삼일체론을 정리하였다. 

2). 삼위의 구별 

샤벨리안의 “양태론”은 삼위의 구별을 무시했으나 어거스틴은 이에 대항하여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며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아니다 이들은 확실히 셋이다라고 말하며 그 본질은 같으나 관계는 다르다 즉 성부는 성자를 갖지 않고는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은 성부를 갖지 않고는 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삼위는 신성안에서 신성을 일으키고 있는 낳음, 태어남, 및 발현함,,이라는 요인들과 똑같이 실질적이고 영원한 관계이다. 그러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 품격이 무었이든간에 각기 한분이나 혹은 나머지 두분에 대하여 관계되어 있다는 뜻에서의 관계들이다. 

3). 삼위에 대한 성경적 근거 

(1). 성부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신명기6:4절을 인용하면서 아들이나 성령이 제외되지 않는한 성부가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한다. 신6:4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 이신 여호와시니” 

어거스틴은 부(父)란 말은 삼위일체 안에 있어서 신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양식에 적용된 관계개념이라고 한다. 즉 신은 본래부터 부와 자와 영이라는 3자(者)가 상호간에 가지는 불가분리의 관계로 존립하는것임을 지적한다. 성부만 불가견이 아니고 삼위가 다 불멸이며 불가견이라 한 것은 종래의 사상인데 곧 성부만이 불멸, 불가견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2). 성자에 대하여 

성자에 대한 성경적근거는 골로새서 2:9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본성을 완전히 반영하고 있는 거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 자체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본성을 자기안에 소유하시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았다. 골2:9절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따라서 아들은 아버지의 지혜요 능력인 것 처럼 성부의 신성이다. 어거스틴의 기독론에 특징은 Forma Dei 의 사상이다.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이요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며 모든일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이며 신에게 있어서 나온 신이요 본질중의 본질이며 성부와 동등이면서도 성부가 아니고  그는 성부로부터 전적으로 나셨고 또한 모든 것을 그대로 가진다. 

(3). 성령에 대하여 

어거스틴은  성자가 성부와 모든 면에서 있어서 동일하다고 주장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성령도 그 본체에 있어서나 기능에 있어서나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다고 한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셨고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을 보내신고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 못지않게 동등하시다고 한다. 어거스틴은 성서가 한번도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른곳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 하면서도 요 1서 4:13절과 4:16절의 말씀을 근거하여 신자 안에서 신의 사랑을 복돋우어 주는자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요1서:4:13절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안에 거하시는줄을 아느니라” 요1서4: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안에 거하는자는 하나님도 그안에 거하시느니라” 즉 성경이 성령을 사랑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우리안에 거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안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안다면 그것은 곧 성령께서 사랑을 깨닫게 하셨기 때문이라는것이다. 

(http://www.kwangmun.org/history-main/middle-3.htm 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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