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 / Trouble is a Messenger / John 15:1 / Streams in the Desert by Mrs. Charles Cowman

September 19

Trouble is a Messenger

My Father is the husbandman — John 15:1

It is comforting to think of trouble, in whatever form it may come to us, as a heavenly messenger, bringing us something from God. In its earthly aspect it may seem hurtful, even destructive; but in its spiritual out-working it yields blessing. Many of the richest blessings which have come down to us from the past are the fruit of sorrow or pain. We should never forget that redemption, the world’s greatest blessing, is the fruit of the world’s greatest sorrow. In every time of sharp pruning, when the knife is deep and the pain is sore, it is an unspeakable comfort to read, “My Father is the husbandman.”

Doctor Vincent tells of being in a great hothouse where luscious clusters of grapes were hanging on every side. The owner said, “When my new gardener came, he said he would have nothing to do with these vines unless he could cut them clean down to the stalk; and he did, and we had no grapes for two years, but this is the result.”

There is rich suggestiveness in this interpretation of the pruning process, as we apply it to the Christian life. Pruning seems to be destroying the vine, the gardener appears to be cutting it all away; but he looks on into the future and knows that the final outcome will be the enrichment of its life and greater abundance of fruit.

There are blessings we can never have unless we are ready to pay the price of pain. There is no way to reach them save through suffering. — Dr. Miller.



9월 19일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5:1)

어떠한 형태로 오든 고통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뭔가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하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니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겉보기로야 말할 수 없이 아프고 죽을 것 같지만, 안에서는 영적인 일이 진행되며 축복을 낳습니다. 우리가 받은 풍성한 축복은 대부분 슬픔이나 고통의 열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인 구속(救贖)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의 열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칼날이 깊이 들어와서 우리의 가지를 냉정히 잘라낼 때는 언제나 말할 수 없는 위로의 말씀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내 아버지는 농부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 성공회 주교요 주일학교 운동의 주도자였던 존 빈센트가 언젠가 대규모 온실에 가 봤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실에는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온실 주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새 농부가 와서 하는 말이, 가지를 줄기 부근까지 몽땅 쳐내지 않고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두 해 동안은 전혀 포도가 없었는데, 보다시피 결과는 지금 이렇습니다."

이 가지치기 이야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할 만한 상징이 풍부합니다. 가지치기는 포도나무를 죽이는 행위 같고, 농부는 모든 것을 잘라 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미래를 봅니다. 최종적인 결과는 포도나무의 풍성한 생명이요, 더욱 풍성한 열매임을 그는 압니다. 고난의 길 하나밖에 없어서 반드시 그 길을 걸어야 받을 수 있는 축복들, 많고도 많습니다.

즐거움과 걸어 보았다, 즐거움

가는 길 내내 지껄였다.

그렇게 떠들었어도

내게 가르쳐 준 것 하나 없었다.

슬픔과 걸어 보았다, 슬픔

가는 길 내내 한 마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배웠다.

슬픔과 걷는 동안 많은 것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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