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The ...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 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1. The love of God is greater far
Than tongue or pen can ever tell;
It goes beyond the highest star,
And reaches to the lowest hell;
The guilty pair, bowed down with care,
God gave His Son to win;
His erring child He reconciled,
And pardoned from His sin.
Oh love of God, how rich and pure!
How measureless and strong!
It shall forever more endure,
The saints' and angels' song.

2. When hoary time shall pass away,
And earthly thrones and kingdoms fall;
When men who here refuse to pray,
On rocks and hills and mountains call;
God's love, so sure, shall still endure,
All measureless and strong;
Redeeming grace to Adam's race
The saints' and angels' song.
Oh love of God, how rich and pure!
How measureless and strong!
It shall forever more endure,
The saints' and angels' song.

3. Could we with ink the ocean fill,
And were the skies of parchment made,
Were every stalk on earth a quill
And every man a scribe by trade;
To write the love of God above
Would drain the ocean dry;
Nor could the scroll contain the whole,
Tho' stretched from sky to sky.
Oh love of God, how rich and pure!
How measureless and strong!
It shall forever more endure,
The saints' and angels' song.


다니엘4:34-37

[현대인의성경]
34. 7년이 다 지났을 때 내가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원히 사시는 그분에게 이렇게 찬양하였다. '그는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나라는 대대로 지속될 것이다.
35.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시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 뜻대로 행하시니 그의 뜻을 거역하거나 그가 행하시는 일을 물어 볼 자가 아무도 없구나.'
36. 내가 이성을 되찾게 되었을 때 내 명예와 위엄과 내 나라의 영광이 나에게 되돌아왔으며 내 신하들과 귀족들이 나를 영접하고 나는 다시 왕위에 앉아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37. 그래서 나 느부갓네살은 지금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높이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는 진실하고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분이시다.

[NASB]
34. "But at the end of that period, I, Nebuchadnezzar, raised my eyes toward heaven and my reason returned to me, and I blessed the Most High and praised and honored Him who lives forever; For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And His kingdom endures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35.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are accounted as nothing, But He does according to His will in the host of heaven And among the inhabitants of earth; And no one can ward off His hand Or say to Him, 'What have You done?'
36. "At that time my reason returned to me And my majesty and splendor were restored to me for the glory of my kingdom, and my counselors and my nobles began seeking me out; so I was reestablished in my sovereignty, and surpassing greatness was added to me.
37. "Now I, Nebuchadnezzar, praise, exalt and honor the King of heaven, for all His works are true and His ways just, and He is able to humble those who walk in p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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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의 회복 (다니엘 4:34-37)

우리는 여기서 느부갓네살이 파멸로부터 다시 회복되어(" 7년이라는 기간이 차매") 제 정신을 찾는 것을 본다. 그가 살아 있었던 것은 하나의 자비였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으며, 느부갓네살처럼(" 그 기간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우리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은 더 이상 짐승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으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기 시작했다. Os homini sublime dedit-즉 하늘은 인간에게 올바른 용모를 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것보다 더 한 것이 있었다. 그는 믿음 이 깊은 사람으로서, 회개한 사람으로서 자비를 구하는 겸손한 경건자로서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자각하게 될 때까지는 결코 그렇질 못했다.

Ⅰ. 그는 그의 이성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진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런 비참한 상태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사에 접하게 된다.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한다." 하나님을 송촉하지 않고 찬미하지 않는자들은 총명이 없는 자로 간주되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또한 인간이 경건해지기까지는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때까지는 인간으로서 사는 게 아니다. 이성이 종교의 주체나 토대인 것처럼 (그래서 이성을 갖지 않은 피조물은 종교적이 될 수 없다), 종교는 이성의 영광이며 왕관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성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성은 공허한 것이 된다. 이것은 이성을 회복한 느부갓네살의 첫 번째 행동이었다. 자기에게 되돌아 온 이성을 하나님 찬미에 사용하자 그는 비로소 다른 모든 이성의 향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이성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이성을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에 적용할 줄 몰랐다. 우리가 이성을 부여받은 것은 바로 이 큰 목적을 위해서다. 그의 어리석음은 지혜의 수단이 되었다. 그가 회복하게 된 것은 심판에 대한 꿈에 의해서가 아니었다(그것은 꿈처럼 곧 잊혀졌다). 그는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의 귀는 열려서 교훈을 듣게 되었다(욥 36:10).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는 먼저 제 정신이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마음 가운데 있던 좋은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좋은 행동은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이 이로써 드러났다. 이제 느부갓네살은 마침내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변화와 종말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스로 그것들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첨군들은 때때로 "오, 왕이시여, 만수세를 하시옵소서" 라고 그에게 알랑거린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이제 어떠한 왕도 영원히 살 수 없으며,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2. 하나님의 왕국은 그와 마찬가지로 영원하며, 그의 권세는 대대에 이른다. 그의 왕국에는 혁명도 상속도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왕노릇하시며 그의 통치는 영원하며, 그의 왕국에는 종말이 없다.

3.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나라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그는 그들은 고려도 하지 않으신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지고하심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초라함을 생각한다.

4. 하나님의 왕국은 우주적이며, 하늘의 군사와 땅의 모든 거민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억제와 제어하에 있다. 천사와 인간은 다 하나님께 고용된 책임적 존재다. 가장 높은 천사도 하나님의 명령을 초월하지 못하며 가장 보잘 것 없는 인간도 그의 인식밖에 있지 않다. 하늘의 천사는 하나님의 군대이며, 지상의 인간들은 그의 소작인들이다.

5. 그의 능력은 불가항력적이며, 그의 주권은 억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하시며 자기 계획과 목적, 자기 법령과 모략을 따라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기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행하신다. 그는 예정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성취하신다. 그리고 아무도 그의 뜻에 거역할 수 없으며, 그의 계획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아무도 그의 행동을 책망할 수 없으며, 그 행동의 의미를 물을 수도, 그리고 그 행동에 대한 이유를 요구할 수도 없다. 창조주와 다투며 "당신은 누구냐" ? 혹은 "왜 당신은 그렇게 행하느냐?" 고 말하는 사람은 화있을진저!

6.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모두 진실하다. 왜냐하면 그가 하시는 모든 행동은 그의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의 길은 공평하다. 즉 하나님의 길은, 지혜롭고 의로우며 슬기와 형평의 법칙에 정확히 일치하며 지혜롭고 의로운 심판이시다. 그의 일에서는 잘못을 찾을 수가 없다.

7. 하나님은 그의 적 가운데서 가장 교만한 자를 겸손하게 만드시는 힘을 가지고 계신다.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37절). 하나님은 하나님과 다툴 수 있다고 자기 능력을 자신하는 가장 교만한 자들을 다루실 수 있다.
Ⅱ. 느부갓네살은 이성을 되찾았고, 그로써 자신을 다시 되찾으며 번영을 재확립하고 기뻐한다(36절).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다." 앞에서도 그는 그의 총명이 돌아왔음을 말한 적이 있다(34절). 그런데 여기서 또 그 말을 한다. 왜냐하면 이성의 사용은 우리가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자비이기 때문이다. 그의 관원들은 그에게 조회했다. 그는 관원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그가 이성을 회복하여 통치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덤으로 전보다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아마도 그 꿈과 해몽은 잘 알려졌었고 궁정에서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신 이상자가 된다던 예언의 첫 번째 부분은 성취되었으므로 그들은 예언에 의해서 7년째에 그가 다시 자신을 회복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이를 믿고 그들은 때가 차자 느부갓네살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러자 그의 위엄과 광명이 그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히기 전과 꼭 같은 상태로 돌아 온 것이다. 그는 이전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었다. 그때처럼 그는 이제 자기 나라에서 그 위치를 확고부동하게 굳힌 것이다. 그는 바보가 되었고 그럼으로써 그는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 더 현명해졌다. 전일에는 수치와 불명예의 심연에 있던 그가 이제는 지극한 위세를 더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나라와 나라를 정복하며 다닐 때의 위세를 능가하였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때, 특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적 인식과 참회하는 죄의 고백으로 영광을 돌리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영광을 주시며, 첫 아담의 죄로 인해서 상실했던 그들의 존엄성을 회복하실 뿐만 아니라, 둘째 아마의 의와 은총으로 그들의 위세를 더욱 크게 해 주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또 그럴 때만이 그렇게 기대할 수 있다.

2. 재난은 그들이 보냄받은 일을 행할 때 사라질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지배를 깨달았을 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를 회복할 수 있었다.

3.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하고 주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느부갓네살은 그의 왕국을 되찾았을 때,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였다(37절). 우리는 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고, 우리는 번영을 누림으로 그를 칭송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이 그의 삶과 통치를 끝낸 것은 이런 사건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유세비우스의 인용에 의하면 아비데누스는 갈대아의 전승으로부터, 바벨론이 고레스에 의해서 취해질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가 여기서 볼 수 있는 선한 마음을 계속 지녔는지 우리는 언급이 없어 알 수 없으며 그가 반대로 행했다는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그토록 큰 훼방자요, 박해자였던 느부갓네살이 자비를 얻었다면 우리 역시 자비를 소망할 수 있다. 우리는 거저 주시는 자유로운 은사를 찬미해야 한다. 느부갓네살은 그 은사로 말미암아 잠시 동안 이성을 잃었으나 그의 영혼을 영원히 건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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