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4 Carry Your Cross Whosoever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 Mark 8:34
September 14
Carry Your Cross
Whosoever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 Mark 8:34
The cross which my Lord bids me take up and carry may assume different shapes. I may have to content myself with a lowly and narrow sphere, when I feel that I have capacities for much higher work. I may have to go on cultivating year after year, a field which seems to yield me no harvests whatsoever. I may be bidden to cherish kind and loving thoughts about someone who has wronged me — be bidden speak to him tenderly, and take his part against all who oppose him, and crown him with sympathy and succor. I may have to confess my Master amongst those who do not wish to be reminded of Him and His claims. I may be called to “move among my race, and show a glorious morning face,” when my heart is breaking.
There are many crosses, and every one of them is sore and heavy. None of them is likely to be sought out by me of my own accord. But never is Jesus so near me as when I lift my cross, and lay it submissively on my shoulder, and give it the welcome of a patient and unmurmuring spirit.
He draws close, to ripen my wisdom, to deepen my peace, to increase my courage, to augment my power to be of use to others, through the very experience which is so grievous and distressing, and then — as I read on the seal of one of those Scottish Covenanters whom Claverhouse imprisoned on the lonely Bass, with the sea surging and sobbing round — I grow under the load. — Alexander Smellie.
“Use your cross as a crutch to help you on, and not as a stumblingblock to cast you down.”
9월 14일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
주께서 내게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내 능력으로는 더 큰 일을 맡아도 될 듯한데, 세속의 한정된 분야에서 섬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몇 년을 경작해도 소출이 없는데, 내내 그 들판에서 쟁기질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 친절히 대하고 사랑하는 마음 길러서, 남들이 그를 반대할 때도 그 사람 편에 서서 연민과 위로 보여주라는 하나님의 부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내 주님에 대해, 그분의 주장에 관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주님을 증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가슴은 슬픔으로 미어지는데, 웃는 얼굴로 이 세상 걸어가라는 요청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십자가가 있고, 그 하나하나가 다 무겁고 고통스럽습니다. 게다가 이 많은 십자가 중 단 하나라도 내 힘으로 지고 갈 만한 것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나의 십자가를 들어 겸손히 내 어깨 위에 올리고, 유순히 참으며 받아들일 때만큼 예수께서 내게 가까이 계시는 때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내 지혜를 성숙하게 하시고 내 평화를 깊게 하시며 내 용기를 늘리시고 내 능력을 더하시기 위해 내게 가까이 오십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것은,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든 체험을 통해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더 유용한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나는, 17세기 스코틀랜드 장로파 언약자들의 일원으로서 믿음 때문에 존 그레이엄에 의해 투옥당한 한 성도의 이 말을 내 말처럼 외칠 것입니다. “나는 짐을 지고서 자란다."
그대 지고 가는 십자가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그 십자가를 목발처럼 짚으며 그대의 길 가십시오.
당신의 십자가 웃으며 지고 가면, 다른 이들이 슬픔에서 기쁨으로 슬며시 넘어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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