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월 8일, 평양 널다리골교회를 설립, "장대현교회의 전신"

1월 8일

“장대현교회와 마포삼열, 분립개척과 살구”

오늘은 평양 장대현교회가 설립된 날입니다. 1894년 1월 8일 마포삼열(Samuel Austin Moffet, 1864-1939)은 평양 널다리골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이 널다리골교회는 장대현교회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이날, 마포삼열(한국이름 마삼락[馬三樂])은 1893년 10월부터 학습교육을 받은 22명 중 7명에게 세례를 주고, 첫 성찬식을 집례했습니다. 세례를 받는 7명은 회중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는 서약을 하였습니다. 1890년에 내한한 마포삼열은 1893년 1월, 이길함, 소안론과 함께 평양개척선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외국인이 거주할 수 없던 가운데, 마포삼열은 한석진의 이름으로 기와집 한 채를 구입하고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인구 약 10만 명이 거주하는 기생의 도시 평양은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그는 거리와 사랑방을 누비며, 전도에 힘썼습니다....

당시 평양에서 마포의 일과는 조사 한석진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길가에 나가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전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밤낮 없이 온종일 전도했다. 그의 사랑방은 항상 열려 있었고 누구나 찾아 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사람이 그칠 줄 몰랐다. 차분히 먹고 쉴 시간도 없었다. 운동 삼아 산책을 나가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전도지를 뿌렸다.” 마포는 당시 자신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바로 그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즉 나는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고, 종일 그들과 만나며, 내가 그들 생활 속에 그리고 그들이 내 생활 속에 들어오는 것을 소원해 왔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양낙흥, 『한국장로교회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8), 61-62.]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의 중심에는 장대현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를 위해 흘린 전도자들의 땀과 눈물, 기도가 없었다면 대부흥의 영광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장대현교회는 1903년부터 교회를 분립시켰는데, 주기철 목사가 시무한 산정현교회는 1906년에 분립·개척되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개척과 분립에 대한 아름다운 사례가 한국교회 초기부터 있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요즈음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슬프기만 합니다.

한번은 대구에 살던 한국인 친구가 그 가족의 소중한 이야기를 우리 부부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부친이 평양 숭실대학의 학생이었을 때 학장이던 아버지께서 가족과 함께 한두 주일 집을 비우면서 그의 부친에게 집을 돌봐 줄 것을 부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없을 때는 자네가 이 집의 주인이네.” 그러던 어느 날 마포삼열 박사가 예상치 않게 잠깐 집으로 돌아왔다. 이 청년은 마당에 있는 살구나무에 올라가서 익은 살구를 몇 개 따고 있었다. 그는 놀랐고 자신이 하는 일에 크게 당황했다. 그런데 그가 사과하려고 했을 때 마포삼열 박사는 말했다. “자네는 사과할 것이 전혀 없다네. 내가 없을 때 자네가 이 집의 주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주인은 그런 일을 할 권리가 충분히 있는 거야” 우리 친구는 그 이야기가 자기들의 가보(家寶)가 되었다고 말했다.[옥
성득 편역, 『마포삼열 서한집 제 1권(1868-1894)』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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