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1월 7일, 최봉석(崔鳳奭, 1869-1944) 출생, “예수 천당!”
1월 7일 “최권능, 시집만 가지 말고 예수!”
오늘은 최봉석(崔鳳奭, 1869-1944)이 태어난 날입니다. 1869년 1월 7일, 최권능으로 잘 알려진 최봉석은 평양 장경문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공직에 있었으나 공금 횡령죄로 반년 동안 투옥되었다가 평북 삭주로 유배되었습니다. 최봉석은 그곳에서 교회 출석을 시작했고, 34살 되던 해에 하늘에서 벼락불이 떨어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했습니다. 최권능은 1907년에 평양신학교에 들어가 1913년에 졸업했습니다.
최권능 목사는 실천주의 전도자로서의 주초를 이루어 근대교회 부흥의 중요한 기초석이 되었다고 하겠다……그토록 넓고 광활한 만주 땅을 누비면서 많은 사경과 박해를 통과하면서 특이한 전도방법과 기지(奇智)로서 사역한 하나님의 귀한 종이었다. 한번은 하도 배가 고파서 말똥 속에 있는 콩을 먹고 힘을 얻었는데 갓 눈 똥이라 뜨끈뜨끈 하였고 덜 삶은 콩이라 말이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껍질을 벗기고 물에 씻어 먹고는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다니 그 고생이 오죽하였겠는가?……『평안도 그 한 사람』에 죽은 송아지를 놓고 3일 기도하여 살렸다는 기록도 있다. 그가 전도에 열심하느라 신학교 공부는 형편없었다. 졸업을 할 수 없었는데 44세 때에 교수실에 가서 기도하자 한 뒤에 졸업장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우습기도 하고 최목사다운 이야기도 통한다. “아멘”하였으니 달라는 것이었다……전도의 대명사, 능력의 종 최봉석 목사는……세계교회사에 둘도 없는 독보적 존재일 것이다.[김해연, 『한국교회사』(서울: 성광문화사, 2006), 428-29.]
최권능은 구령의 열정이 가득한 전도자였습니다. 결혼식 가마를 따라가면서도 “시집만 가지 말고 예수!”를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신부는 가슴이 철렁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거리에서 최권능의 ‘예수 천당’ 소리가 끊어지면 평양이 망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최권능은 고상한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신사참배와 마펫의 동상건립을 반대했던 그는 그리스도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분명히 알았고, 그 신앙대로 살기위해 몸을 쳐서 복종했습니다. 나의 지식과 순종은 발맞추어 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아는 만큼 전하며 살게 하소서. 죽어가는 자 불쌍히 여기게 하소서.
곡산 지방 높은 산밭에서 담배 재배를 하던 화전민들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올라가기 힘드니, 최 목사는 길에 선 채 큰 소리로 “큰일 났습니다!” 소리소리 질렀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몰려온 남녀들을 보고 하는 말이 “그런 게 아니라, 예수 안 믿어 지옥 가게 됐으니 큰일이오!” 해버렸다. 그 중에 화가 난 한 사나이가 “예수고 떡대구리고 안 믿는다.” 하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당신 참 좋은 말 했소. 떡대구리라고 했죠?” “그랬소, 왜요?” “성경에 예수는 대구리 떡이라고 했소. 머리 떡이요!”하면서 전도했다고 한다. 교통순경이 한길에 서서 교통정리하고 있는데, 최 목사도 함께 서서 전도하니 직무 방해로 연행하여 파출소에 가두어 두었더니, 그 속에서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을 큰 소리로 불러대니 견딜 수 없었다. 본서로 끌고 가니, 서장이 순경에게 하는 말이 “너 이분이 누구인줄 알고 끌고 왔어! 속히 풀어 드려!” 했다. 최 목사는 나오면서 서장 앞에 인사하며, 역시 “예수 천당!” 했다.[엄두섭, 『좁은 길로 간 믿음의 사람들』(서울: 소망, 2008),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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