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2월 24일, "나는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에 고독의 생활에서도 진리로 더불어 싸우려 하나이다. 많이 기도하여 주옵소서."

12월 24일

“나는 성공하리라. 주님이 같이 하여 주시니 나는 실패하나 주님은 성공하리라.”

1946년 12월 24일, 한상동 목사는 호주장로교회 선교사 허대시(Miss D. Hocking)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편지 말미에서 자신을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한상동”으로 표현했습니다.

……항상 위하여 기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이렇게 편지하여 소식을 알려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셨다지요. 믿음으로 위로를 받으시는 줄 아옵니다. 팔십이 넘으신 어머님 모시고 얼마나 고생하십니까? 어머님께 문안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남동생 내외분께 문안합니다. 큰 조카 둘 다 전쟁에 나갔다가 큰 고생을 하였으나 주님의 은혜로 잘 돌아왔으니 참 감사합니다. 진실로 누님이 보내 주신 성경말씀대로 어지러운 세상이외다. 어서 주님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이곳 동생 명동은 부산 영도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경남에서는 제일 재미있게 은혜롭게 나갑니다. 매일 새벽기도회 때 4, 50명이 모이고 주일 예배 시는 예배당이 좁아서 새로 지어야 되겠는데 물자가 없어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교생은 작년 8월 17일 밤에 평양감옥에서 나와 평양 산정현교회(주기철 목사님 계시던 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금년 3월에 경남으로 왔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불행히도 내가 옥에서 나온 지 1개월가량 되어 어머님 얼굴을 뵙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자식 된 나로서는 너무 마음이 상하였습니다. 다시 평양으로 가야 될 사정이지만 38선이 가로 막히어 잘 가지 못하고 임시로 부산 초량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습니다.
평양에 있다가 경남으로 와서 형편을 보니 아무래도 조선교회의 장래를 생각할 때 목사가 목사다운 목사라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산진 일신학교를 장소로 정하고 전에 평양신학교 교수 선생 되신 박형룡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미국 가서 8년 이상 공부하고 온 명신홍 목사님과 김진홍 목사님을 모시고 고려신학교라 이름한 신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지난 9월부터 박윤선 목사님을 모시고 개교식을 하고 개학 중 공부를 해왔습니다. 내년부터는 박윤선 목사, 명신홍 목사, 김진홍 목사, 한부선이라는 미국 선교사, 이자익 목사 이렇게 다 모여서 신학생 한 50명 되는 학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나는 우리 주님의 살아계심에 고독의 생활에서도 진리로 더불어 싸우려 하나이다. 많이 기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신학교는 집도 없고 설비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다만 내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로 시작하였으니 기도로 성공할 줄 믿고 나갑니다……할 말이 많사오나 우선 이만 그치나이다. 잘못된 것 용서하옵소서.[이상규, 『한상동과 그의 시대』 (서울: SFC, 2006), 72-74.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는 한국교회의 쇄신과 순결을 위해 자신을 드린 봉사자였습니다. 흠없는 지도자란 있을 수 없고, 그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한상동 목사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를 위해 보냄 받은 사역자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지가 없었던 그는 허대시 선교사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성공하리라, 나는 성공하리라. 주님이 같이 하여 주시니 나는 실패하나 주님은 성공하리라.” 나의 성공을 위해 주님을 팔아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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