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스펄전 아침묵상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욥기 8장 11절]

December 27

"Can the rush grow up without mire?" (Job 8: 11).

The rush plant is spongy and hollow and so is a hypocrite.  There is no substance or stability in him.  The rush plant is shaken to and fro in every wind, just as formalists yield to every influence.  For this reason the rush is not broken by the tempest, neither are hypocrites troubled with persecution.  Perhaps the text for this day may help me to try myself, whether I am a hypocrite or not.  The rush by nature lives in water and owes its very existence to the mire and moisture wherein it has taken root.  Let the mire become dry, and the rush withers very quickly.  Its greenness is absolutely dependent on circumstances.  Is this my case?  Do I only serve God when I am in good company or when religion is profitable and respectable?  Do I love the Lord only when temporal comforts are received from His hands?  If so, I am a base hypocrite.  Like the withering rush, I will perish when death deprives me of outward joys.  But can I honestly assert that when bodily comforts have been few and my surroundings have been rather adverse to grace than helpful to it, I have still held fast my integrity?  Then I have hope that there is genuine, vital godliness in me.  A goodly man often grows best when his worldly circumstances decay.  He who follows Christ for gain is Judas.  They who attend Him out of love are His own beloved ones.  Lord, let me find my life in You and not in the mire of this world's favor or gain.

  12월  27일

제목 : 물 없이

요절 : "왕골이 진펄이 아니고 나겠으며 갈대가 물 없이 자라겠느냐"(욥8:11)

왕골 풀은 구멍이 많고 속이 비었습니다. 위선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위선자에게는 실속과 안정성이 없습니다.  왕골 풀은 모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꼭 마찬가지로 형식주의자들(기회주의자들)도 모든 영향에 잘 따릅니다.(쓸립니다) 이런 이유로 왕골은 큰 폭풍우에도 잘 부러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위선자들도 박해로 인한 환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아마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내가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시험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왕골은 본래 물 속에서 삽니다. 그리고 진펄(습기 많은 진흙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그래서 그 진펄이 마르면, 왕골은 금새 말라(시들어)버립니다. 왕골의 싱싱한 푸름은 절대적으로 환경에 달려 있습니다.(의존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바로 나의 처지( 경우)인가요? 내가 좋은 친구(company)들과 있을 때  혹은 교회생활이 유리하고 체통이 설 때만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내가 주님의 손에서 일시적인 위로를 받을 때만 주님을 사랑하는 건지? 만일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은 비열한 위선자이지요. 그렇다면 시드는 왕골처럼, 나는 죽음이 나에게서 현세(現世)의 모든 쾌락을 앗아갈 때 나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역자주1)

만일 육신의 위로가 거의 없을 때, 나의 환경이 은혜에 도움이 되기 보다 오히려 반할 때(불리할 때)도 나는 여전히 나의 고결성(신실성)을 굳게 유지했다고 정직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내 안에는 생명있는 순수한(진짜의) 경건이 있다는 소망을 나는 가질 수 있습니다. 경건한(훌륭한) 사람은 종종 그의 세상의 환경이 부패(타락)할 때 가장 잘 자랍니다. 이득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님 자신의 것으로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주여, 우리가 이 세상의 사랑이나 이득(유익)이란 진펄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주님 안에서 나의 생명을 발견하게 하시옵소서.

주1 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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