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11월 26일, 존 하버드(John Harvard) 출생, "학교를 위해 내어놓은 779파운드와 320권의 책들"

12월 26일 “존 하버드, 장서와 재산의 절반은 칼리지에, 나머지 절반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오늘은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가 태어난 날입니다. 1607년 12월 26일, 존 하버드는 런던 사우스워크(Southwark)에서 정육점과 여인숙을 운영하던 로버트 하버드의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임마누엘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비국교도 목사로 안수 받았습니다. 하버드는 결혼 후 뉴잉글랜드로 건너가 찰스 타운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는 결핵으로 죽어가면서 자신의 장서와 재산의 절반을 칼리지에 기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아내 앤(Ann)에게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버드가 전한 779파운드와 320권의 책들은 학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1638년에는 매사추세츠의 뉴타운 대학이……토마스 셰퍼드 목사를 기리며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개명되었다……셰퍼드를 따라서 미국으로 온 또 한 명의 임마누엘 대학의 졸업생이자 목사가 있었다. 그가 바로 존 하버드였다. 그는 아내와 함께 1637년에 매사추세츠 찰스 타운에 정착하였다. 하버드가 미국에 가기 1년 전에 식민지 매사추세츠 만 의회는 투표를 통해 뉴타운에 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장차 미국 최초의 대학교가 될 학원이었다. 그리고 하버드는 미국에 도착한 이듬해에 폐렴으로 죽으면서, 새로 설립된 이 학원에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였다……이 기부를 받은 대학은 이듬해에 학교 이름을 뉴타운 대학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바꾸었다가, 1639년 3월 3일 존 하버드의 공로를 기억하며 그를 기리기 위해서 다시 이름을 하버드 대학교로 바꾸었다.[Ian Harrison, The Book of Lasts: The Stories Behind the Endings That Changed the World, 이경식 역, 『마지막에 대한 백과사전』(서울: 휴먼앤북스, 2007), 166.]
하버드 대학은 하버드 목사가 돈과 책을 기부할 당시 신설대학이었습니다. 그 대학은 특정한 종파에 의해 세워진 종립(宗立)학교였고, 주요 목적은 교역자 양성에 있었습니다. 존 하버드의 기부를 생각하며, 내가 가진 것을 돌아봅니다. 매년 작성하는 유언장에 기부를 위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첨가할 것을 다짐합니다.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입니다. 성도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귀한 남김과 나눔이 있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버드 개교 때 교사는 단 1인, 학생은 4인이었다. 그리고 초기 30년간 총 3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그들의 대다수는 목사와 입법기관의 고위직의 자제들이었다……초창기의 교수들은 '튜터(tutor)'로 불리는 지도교사로서 대개가 20대 전반의 미혼남이었다. 대개가 10대인 학생과 더불어 학사(學舍) 즉, 칼리지에서 거주한 그들은 학식자도 전문직도 아니었으며 당시의 모든 교사들처럼 하버드의 교사들도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의 본래의 바람은 교수직이기보다 목사직이었으며 그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나 하버드를 떠났다. 단지 2~3인의 ‘튜터’로 교사를 충당한 어설픈 상태가 1세기 이상 지속되던 하버드에 처음으로 ‘교수’가 나타난 것은 1722년에 이르러서였다. 한편, 3년 과정인 칼리지 초기의 교과목은 일반교양 과목과 철학(자연학·윤리학·형이상학) 및 고전문학이었다……성직자 양성을 주요 과제로 삼았으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적인 학풍이 뿌리를 내렸다.[이광주, 『대학의 역사』(파주: 살림, 2008),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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