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12월 10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크룸마허(Friedrich Wilhelm Krummacher) 별세, "16년간 왕 앞에서 설교"


1868년 12월 10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크룸마허(Friedrich Wilhelm Krummacher) 별세, "16년간 왕 앞에서 설교", "왕을 감동시킨 설교자”

오늘은 독일의 개혁파 교역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크룸마허(Friedrich Wilhelm Krummacher)가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1868년 12월 10일, 크룸마허는 프러시아의 포츠담(Potsdam)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위대한 교회사가 필립 샤프는 크룸마허의 죽음 이후 웅변적인 헌사를 남겼습니다.

크룸마허는 뛰어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강단사역을 위한 은사를 부여받고, 가장 풍성하고 빛나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고, 큰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쉽게 그러면서도 적절한 표현을 잘하는 특이한 말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경에 아주 익숙한 사람이었으며 건장하고 위압적인 용모를 갖추고 있었고, 강력하고 운율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말년에 들어오면서 크게 변화되어서 마치 멀리서 천둥이 치는 소리, 마지막 나팔소리같이 들렸다.[Friedrich Wilhelm Krummacher, Suffering Saviour, 서문강 역, 『고난받는 그리스도』 (서울: 지평서원, 2005), 26. 저자 약전에서 발췌.]

크룸마허는 펜실베니아의 메르셀스버그(Mercersburg) 신학교의 교수직을 제안받았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지하고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베를린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필립 샤프를 추천하였습니다. 이후 샤프는 북미에서 가장 탁월한 교회역사가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크룸마허는 합리주의에 물든 독일의 영적 상태를 보며 가슴아파했던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편만한 이성주의에 대항하여 믿음을 변호하고, 성경을 강해하며, 글을 쓰고 출판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에 무릎꿇지 않았습니다. 1853년에 궁정목사로 임명된 크룸마허는 16년간 왕 앞에서 설교하였습니다. 빌헬름(Wilhelm) 왕이 그에게 보낸 편지를 봅시다.

그대가 전한 대림절 설교는 내가 들어왔던 모든 설교들을 능가했습니다. 교회의 주님께서 수천 배의 복을 주시어 그 설교가 열매 맺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친애하는 크룸마허여! 그대가 그러한 복을 오래토록 간절히 기다려야 할지라도, 나는 그대의 사역과 머리 위에 주께서 이 복을 내려주실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나는 그대의 은사와 지식, 신성한 직무를 위한 사랑이 그대의 설교 가운데 회중(목회적 돌봄 속에 있는 사람들)위에 부어지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눈부신 광경이었는지요!……포츠담에서의 대림절 설교로 인한 감동이 이번 안식일에 사그러지지 않도록 하시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 인쇄하도록 하고, 내게는 백부의 사본을 보내시오. 그대를 통해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Friedrich Wilhelm Krummacher, An Autobiography, 269-70.]

진실한 신자였던 왕의 반응이 놀랍고 부럽기만 합니다. 우리나라에 궁전목사같은 것은 없지 않느냐는 말은 하지 맙시다. 대신 지역교회의 강단마다 정확한 강해가 살아나길 기도합시다. 가슴을 찌르는 적용이 살아있는 설교가 회복되길 간구합시다. 크룸마허 시대의 영적상황과 지금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위대한 복음적 설교는 그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합니다. 크룸마허와 같은 설교자가 배출되길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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