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5-9 설교 /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
히브리서2:5-9
[개역개정]
5.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6.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7.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8.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NIV]
5. It is not to angels that he has subjected the world to come, about which we are speaking.
6. But there is a place where someone has testified: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7. You made him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you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8. and put everything under his feet?In putting everything under him, God left nothing that is not subject to him. Yet at present we do not see everything subject to him.
9. But we see Jesus, who was made a little lower than the angels, now crowned with glory and honor because he suffered death, so that by the grace of God he might taste death for everyone.
=====2:5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는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 '장차 오는 세상'에 해당 하는 헬라어 '텐 오이쿠메넨 텐 멜루산'(* )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좌정하셔서 왕으로 등 극하시고 온 우주에 대한 구원을 행사하시는 새창조된 세상을 가리킨다(Lane, Bruce, Hewitt). 천사들은 이러한 세상을 다스릴 권한이 없으며, 이러한 세상도 천사들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장차 오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전 전하신 율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구속사역을 통해 창 조되었기 때문이다. =====2:6,7,8 본 구절들은 시 8:4-6을 인용한 것이다.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 본문은 유대인들의 문어체 표현 방식으로서 저자와 서신의 수신자들이 본절에서 인용된 시편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 다.(Hewitt, Robertson, Morris).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 시나이까 - '사람'과 '인자'는 히브리 시(時)의 병행 법칙을 따른 것으로 동일한 의미 를 지닌다. 인자 곧 '사람의 아들'에서 '...의 아들'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관용구로 서 어떤 것의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란 '사람됨의 속성을 지닌 자' 즉 '사람'이란 의미이다(Morris, Hewitt). 본절에서 사용된 '인자'(* , 휘오스 안드로푸)는 본래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사용하신 '인자'(* ,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와 동일하지 않다.그러나 저자는 여기에서 '인자'를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켜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 신 인자와 동일시하고 있다(Lane, bruce, Hewitt). 한편 '생각하시며'의 헬라어 '밈네 스케'(* )는 도움을 베풀기 위해 '기억하신다'라는 의미이며 '권고 하시나이까'의 헬라어 '에피스케프테'(* )는 '조사하다'혹은 '방 문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돕기 위해 기억하시며 돌보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저를 잠깐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 '천사'에 해당하는 맛소라 본문은 '엘로 힘'(* )으로서 RSV는 이것을 '하나님'(God)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NIV는 '천상의 존재들'(heavenly beings)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70인역에서는 명확하게 '천 사들'(* , 파르 앙겔루스)로 번역하고 있으며 탈굼역 (Targum)도 역시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70인역을 따르고 있다. 한편 '못하게 하시며'는 맛소라 본문을 따를 경우 하나님보다 잠시 목하게 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 으나(Westcott) 저자가 1장에서 그리스도와 천사를 비교한 것으로 볼 때 천사보다 못 한 상태 즉 성육신하셔서 '인간'이 되셨음을 시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빌 2:7, Morris).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 '관 씌우시며'의 헬라어 '에스테파노사스'(* )는 '왕관을 씌우다'라는 의미로 왕위에 오르심을 시사한다 (Hewitt).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 승리자로서 영광과 존귀로 하나님 의 우편 즉 왕위에 오르셨으며(1:3: 엡4:8),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주권적인 권한을 소유하셨음을 시사한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 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 본문은 1:13의 인용문인 시 110:1과 연결된다. 1:13 에서는 원수가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나 본절에서는 '모든 만물'이 그 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모든 만물'은 맛소라 본문에서는 '모든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어 만물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로 왕위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시므로 모든 만물 즉 온 우주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셨으며, 자신의 완전한 주권 을 통해 온 우주를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 한편 여기서 '저에게'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맛소라 본문을 근거로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니 라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orris). (2) 혹자는 '저에게'(* , 아우토) 가 대표적 단수로서 그리스도를 지칭한다고 주장한다(Bruce, Lane, Hewit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를 사람으로 이해한다면 바로 뒤에 이어지는 9절의 내용과 연결될 수 없으며, 저자가 시편을 인용하면서 '인자'나 '사람'을 순수하 게 '사람'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인자되신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키고 있기 때 문이다(6절).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 본절은 시 8편에는 없 는 구절이다. 본절의 '저에게' 역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봄이 타당하다(Hewitt). '아직'의 헬라어 '우포'(* )는 '일시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미래에 성취 되어야 하는 것임을 암시한다(Michel, Lane).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그의 모든 주권을 회복하여 만물이 저에게 복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의 왕국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이 때의 지배자처럼 행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왕권을 보 지 못한다 할지라도(마4:8,9; 엡2: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즉 그분의 왕국이 온전히 실현되는 날 보게 될 것이다. =====2:9 천사들 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 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 본 구절은 7절의 반복이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 보다 못하게 되신 것은 오직 잠깐 동안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본절 에서는 '잠깐 동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브라퀴 티'(* )를 7절과 다 른 위치에 삽입함으로 이 말을 7절보다 더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7절 * (엘라트도사스 아우톤 브라퀴 티 파르 앙 겔루스) 9절 * (브라퀴 티 파르 앙겔루스 엘라트토메논) 한편 '인하여'의 헬라어 '디아'(* )는 예수께서 '관'을 쓰셔서 왕이 되시는 것 이 '죽음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시사한다(Bruce, 빌 2:8,9). 더욱이 저자는 여기서 특별히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그의 '인간되심'과 '죽으심'에 초점을 맞 추고 있다(Morris, Lane).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 이라 - '이를 행하심'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죽으심과 영광의 관을 쓰심 모두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Bruce), '죽음의 고난'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Hewitt, Moffatt).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이 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 판토스'(* )에서 '판토스'는 두가지로 해석된다. (1) '판토스'는 중심으로서 '온 우주'를 가리킨다(Origen). (2) '판토스'는 남성으로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Hewitt, Morris, Bruce, Robinson). 두 가지 해석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저자는 그리 스도의 구속 사역이 인간을 위한 것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16절). 한편 '하나님의 은 혜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카리티 데우'(* )는 몇몇 사본에 '코 리스 데우'(* , '하나님을 떠나서')로 기록되어 있다(Minuscule 1739, Vulgate Codex, Peshitta Codices). 그래서 대부분의 교부들이 본문을 '코리스 데우'로 보아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을 뜻하며(마 27:46; 막15:34)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한 죄인으 로서 그의 신성이 상실되었던 것으로 해석하였다(Origen, Eusebius, Theodoret, Jerome, Ambrose). 그러나 본문은 '카리티 데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Tasker, Morris, Jerome, Ambrose). 대부분의 사본들이 이것을 지지하고 있으며 교부들의 견해 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Hewitt).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구속 사역의 성취는 그 의 죽음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아들됨과 영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 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10절; 12:15, Lane, Mo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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