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직 신앙고백서 강해 5 [제6조 정경와 외경의 차이, 제7조 성경의 충분성] 아무리 저자가 거룩하다 해도 사람의 기록, 전통,...



6항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 우리는 외경들 즉 에스드라 3, 4서. 토빗서. 유딧서.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더서 부록. 아사랴의 기도. 풀무불 속의 세 소년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상하를 이 거룩한 책 성경과 구분합니다. 교회는 이 외경들이 정경과 일치하는 한, 외경들을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외경들은 우리의 믿음이나 기독교를 확증하는 증거를 삼는데 있어서 권위나 효력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더더욱 이 외경들은 정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며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6항은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을 고백합니다. 앞서 벨직 신앙고백서 4항에서 고백한 것처럼, 정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성경 39권과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 성경 27권뿐입니다. ‘정경’이란 단어는 ‘규칙, 규범’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경’을 “우리의 믿음을 규정하고 기초하고 확증하는 거룩한 정경”으로 받아들인다고 벨직 신앙고백서 5항으로 고백했습니다. 따라서 외경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정경 66권에 들지 못한 책들로서 그 이름의 뜻이 의미하듯이 숨겨지고 감추어진 지혜와 역사 그리고 용기의 경전들이라고 합니다. 이 외경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구별하는 신구약 중간기 동안 일부 유대인 저자들이 헬라어로 저술한 15권의 책입니다. 이후 구약 39권이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70 인역’(the Septuagint)입니다. 이 ‘70 인역’ 번역본에는 이 부가적인 헬라어책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 15권의 책이 정경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했고 이 외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 이 외경이 정경의 문제로 일어난 것은 제롬이 ‘70 인역’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외경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로마교회는 외경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6세기 종교개혁시대에 개혁자들은 외경이 포함된 성경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이 외경을 계속해서 받아들일 것이지 아닌지 혹은 초대교회의 판결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외경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혁자들과 함께 귀도 드 브레는 제4항에서 고백한 것을 주장했습니다. 오직 구약과 신약 66권만 정경이고, 추가된 15권은 외경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외경이 정경일 수 없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외경이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증언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1,2) 이 증언은 이 세상에서 복음이 증거될 때 그 핵심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아닌가는 바울의 사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기 전 마지막 변론을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26:22,23) 바로 이것이 정경 66권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하신 것으로서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영광을 언약과 성취의 사실로 자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성령님의 조명하심속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이에 반하여 외경에는 정경의 핵심이 없습니다. 외경은 숨겨지고 감추어진 지혜와 역사 그리고 용기의 경전들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 무의미하고 반드시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외경에는 정경적인 정서와 반대되는 유대인들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외경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외경은 역사적인 부정확성과 터무니없는 과장이 심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외경은 ‘믿음’을 규정할 수 있는 권위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요컨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정경 66권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구약과 신약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여 주신 정경은 성령님의 조명으로만 깨닫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절대 진리의 보화는 오직 정경 66권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정경과 외경의 차이점입니다.
7항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담고 있으며, 또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하게 가르치고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 모범이 성경에 충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고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든지 심지어 사도들이라 할지라도 불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글이라 할지라도 성경과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관습이나 많은 사람의 의견이나 고전이나 전통이나 공의회나 법령이나 규칙 등도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과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며,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고,(요일4: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0)고 가르친 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전심을 다하여 배척 해야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벨직 신앙고백서3-6항). 성경이 권위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7항은 성경의 충족성을 고백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믿어야 할 모든 것을 충분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삶도 온전하게 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함으로 성경의 충족성을 교회사로 기록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세워진 교회와 그 공동체들이 신앙의 삶으로 증거 한 것이 바로 성경의 충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충족성으로 하나님의 뜻과 믿음의 실재와 모든 예배의 삶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이외의 다른 것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성경에서 가르침을 받고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든지 심지어 사도들이라 할지라도 불법입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불법입니다.(갈1:8).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성경의 교리는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벽한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말씀으로 증언합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순종은 오직 성경으로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하여 주신 성경에 덧붙이는 것이나 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입니다. 벨직신앙고백서 7항은 성경의 충족성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의 글이라 할지라도 성경과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관습이나 많은 사람의 의견이나 고전이나 전통이나 공의회나 법령이나 규칙 등도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과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속이는 자들이며, 입김보다 가볍기 때문입니다(시62:9).” 그러므로 세상이 자랑하는 지식, 인간의 전통, 공의회, 교회의 권위, 교회의 최고 중재자인 교황 자신조차도 이제는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 말씀처럼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충족성입니다. 오직 성경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8-4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뜻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순종하여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성경의 충족성으로 하나님의 뜻과 믿음의 실재와 예배의 삶을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배의 삶을 본으로 다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0-12). 예수님께서 본으로 보여주신 대로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을 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7항 마지막 문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고,(요일4: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10)고 가르친 대로 우리는 이 무오한 규범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은 전심을 다하여 배척해야 합니다.” 성경의 충족성이 훼손되면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질 우리의 믿음과 예배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믿는 영생의 복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귀도 드 브레는 이 부분을 경고합니다. 우선 우리 자신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성경의 충족성을 넘어서거나 감 한다면 전심을 다하여 배척할 것을 강조합니다. 성경을 떠난 것에 대한 배척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일상으로 완성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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