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에 관하여 [저자 : 김남준 | 출판사 : 생명의말씀사, 발행일 : 2020-10-26 | (142*204)mm, 272p | 978-89-04-16722-7]
염려라는 마음의 질병에 걸린 이 시대를 향한 은혜의 처방전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엄숙하도록 존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가?
믿음이 부족한 나로부터 출발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다다라 안식을 얻고
다시 평화롭게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여정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 여기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끝없이 드넓은 우주를 휘감고 당신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무한한 사랑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만세(萬世)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을 그분의 사랑의 품 안에 있습니다.
인생에는 괴로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간 모든 사람의 인생이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고초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불러일으키고, 우리는 그로 인해 깊은 절망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영혼이 추락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나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로 누구랄 것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결핍과 고립감에 싸인 채 사회 문화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 이 시점에, 그리스도인들 역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영혼의 닻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도록 무능하기만 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불안증에 잠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염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자각하면서 과연 나의 신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게 되고 말았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염려에 관하여>는 이 위태로운 염려증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으로 우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돌아보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얼마나 거대하고 한계를 알 수 없는 사랑을 받는 값진 주체인지를 돌이켜 보게 하여 무용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데로 눈을 돌리게 해줍니다.
또한 우리의 빛 된 삶을 갉아먹고 은혜를 헛되이 소모하게 하는 염려의 뿌리가 자기가 누구인지 망각하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지 못하여 그릇된 자기 사랑에 빠진 데 있음을 말해 줍니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근본을 잃고 갈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려 주어 그 부질없는 자기애(自己愛)의 허상을 확인하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사랑의 본성적 결박을 끊고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염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임을 깨닫도록 해줍니다.
저자의 간곡한 위무의 글을 읽어 가면서 우리가 비록 타고난 실존적 한계로 염려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이기는 하나, 동시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안에 있는 보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함으로 다른 데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안도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납득함으로써 염려라는 감옥을 박차고 나가 우리의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 있음을 천명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하늘에 사무치는 위엄과 땅 끝까지 울려 퍼지는 사랑으로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없는 그 사실을 다시금 돌아보며 어느덧 운명처럼 익숙해진 염려라는 병에서 탈출하여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염려의 문제를 성경 주석으로, 현상학적 관찰로, 인문학적 탐구로, 신학적인 접근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이 책을 통하여 2020년 코비드19로 지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알고 그것의 미망을 극복하는 희망의 신론(神論)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밀려오는 염려 때문에 삶이 고단하고 두려운 그대들이여, 저자의 이 성경적 목회적 사상적 처방전을 펼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이 들의 꽃도 공중의 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 있음을 깨닫고 흔들림 없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깊은 평안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은 엄숙하도록 존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가?
믿음이 부족한 나로부터 출발하여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다다라 안식을 얻고
다시 평화롭게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여정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지금 여기 살아 있게 하셨습니다.
끝없이 드넓은 우주를 휘감고 당신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무한한 사랑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만세(萬世)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을 그분의 사랑의 품 안에 있습니다.
인생에는 괴로움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간 모든 사람의 인생이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고초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불러일으키고, 우리는 그로 인해 깊은 절망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영혼이 추락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나 미증유의 감염병 사태로 누구랄 것 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결핍과 고립감에 싸인 채 사회 문화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 이 시점에, 그리스도인들 역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영혼의 닻을 내린 사람들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하도록 무능하기만 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불안증에 잠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염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자각하면서 과연 나의 신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게 되고 말았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염려에 관하여>는 이 위태로운 염려증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으로 우선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돌아보라고 호소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얼마나 거대하고 한계를 알 수 없는 사랑을 받는 값진 주체인지를 돌이켜 보게 하여 무용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는 데로 눈을 돌리게 해줍니다.
또한 우리의 빛 된 삶을 갉아먹고 은혜를 헛되이 소모하게 하는 염려의 뿌리가 자기가 누구인지 망각하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지 못하여 그릇된 자기 사랑에 빠진 데 있음을 말해 줍니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근본을 잃고 갈 바를 알지 못하게 되었음을 알려 주어 그 부질없는 자기애(自己愛)의 허상을 확인하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자기 사랑의 본성적 결박을 끊고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염려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유법임을 깨닫도록 해줍니다.
저자의 간곡한 위무의 글을 읽어 가면서 우리가 비록 타고난 실존적 한계로 염려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이기는 하나, 동시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안에 있는 보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함으로 다른 데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안도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무한한 당신의 사랑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납득함으로써 염려라는 감옥을 박차고 나가 우리의 삶의 참된 의미와 가치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 있음을 천명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하늘에 사무치는 위엄과 땅 끝까지 울려 퍼지는 사랑으로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변할 수 없는 그 사실을 다시금 돌아보며 어느덧 운명처럼 익숙해진 염려라는 병에서 탈출하여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염려의 문제를 성경 주석으로, 현상학적 관찰로, 인문학적 탐구로, 신학적인 접근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이 책을 통하여 2020년 코비드19로 지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알고 그것의 미망을 극복하는 희망의 신론(神論)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밀려오는 염려 때문에 삶이 고단하고 두려운 그대들이여, 저자의 이 성경적 목회적 사상적 처방전을 펼쳐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이 들의 꽃도 공중의 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 있음을 깨닫고 흔들림 없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깊은 평안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하지 않거나 지연되기에 염려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고뇌하는 존재입니다.
염려라는 주제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염려는 내가 끌어안은 것도 아니고 내가 뿌리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싫어서 내친 것도 아닌데, 나도 아닌 것이 마치 나의 일부인 듯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예배드릴 때는 움직이지 않았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는 얼른 마음의 동굴에 숨어 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늘 보던 염려라는 놈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한 작정이 섰습니다. ‘내가 네 놈을 영구히 내 마음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네 진짜 민낯은 확인을 해야겠다.’
사실 그렇게 말한 것은 저의 굳센 신앙이었고 그 말은 들은 것은 저의 연약한 이성이었으니, 둘 다 제 안에 있어 익숙하지만 낯설고, 또한 낯설지만 익숙한 자아(自我)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믿음이 부족한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다다라 안식을 얻고 다시 평화롭게 나 자신으로 돌아온 자아의 여행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눈물과 기도 속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는 염려하는 나의 약한 신앙에 대한 꾸짖음 때문이었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던 나의 무지에 대한 원통함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 말씀에 숨이 멎는 듯하였습니다.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나를 태어나게 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 있게 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만세(萬世)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을 하나님 사랑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이렇게, 때로는 나도 싫은 나를 엄숙하리만치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이게 저를 더 아프게 했는데) 내가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드넓은 우주를 휘감고 당신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무한한 사랑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 저를 울렸습니다.
하얀 눈이 꽃잎처럼 내리던 겨울에 쓰기 시작해서 벚꽃잎이 흰눈처럼 날리는 봄날에 펜을 놓았습니다. 마침 뜻하지 않은 감염병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때에, 이 책도 우리 모두처럼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읽고 염려를 능히 이기소서.
<저자 서문.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p. 12-15 중에서
염려는 불안에서 오는 감정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存在)를 확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근거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중략]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기를 규정하는 다른 존재가 없으니 자기 존재에 무슨 의미(意味)를 부여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 속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 가운데 염려합니다. 때로 이런 염려는 단지 염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두려움에 이르게 하고, 심하면 절망으로 이끕니다.
신자의 마음이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빛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使命)에 대한 자각, 일상의 의미, 인간관계의 가치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은 커다란 죄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눅 19:21). 그래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알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염려의 의미
염려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재물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 이 구절은 이 땅에서 욕심내어 재물을 모으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의 결론을 고려하면 이 말씀은 단순히 재산 축적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누리는 것보다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며 살아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대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과 박해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염려입니다. 성경적으로 염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합당한 염려입니다(마 5:25, 13:29). 고통에 대한 경험은 두려움을 주고, 염려는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심(警戒心)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에 교통 신호를 지키고 눈 오는 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이것들은 합당한 염려로서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타인에 대해서는 올바르고 공정하게 행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염려하는 바에 대한 완전한 대비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합당한 염려라고 할지라도 합당치 못한 마음으로 대함으로써 경건에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함입니다. 염려가 되는 상황에 대비는 하여야 하지만, 우리가 의지(依支)하는 분은 하나님뿐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령한 것들을 위한 염려도 합당한 염려에 포함됩니다(고전 7:32, 9:27, 고후 11:28). 자신의 경건과 교회의 영적 번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의 영혼들을 위한 걱정이 경건한 염려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에게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염려하는 바에, 우리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혹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염려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자기 사랑’(amor sui, self-love)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교만(superbia)에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의지(意志)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일치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염려를 운명처럼 지니고 삽니다.
<제1장.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가?> p. 31-36 중에서
염려라는 주제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염려는 내가 끌어안은 것도 아니고 내가 뿌리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싫어서 내친 것도 아닌데, 나도 아닌 것이 마치 나의 일부인 듯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예배드릴 때는 움직이지 않았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는 얼른 마음의 동굴에 숨어 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늘 보던 염려라는 놈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한 작정이 섰습니다. ‘내가 네 놈을 영구히 내 마음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네 진짜 민낯은 확인을 해야겠다.’
사실 그렇게 말한 것은 저의 굳센 신앙이었고 그 말은 들은 것은 저의 연약한 이성이었으니, 둘 다 제 안에 있어 익숙하지만 낯설고, 또한 낯설지만 익숙한 자아(自我)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믿음이 부족한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다다라 안식을 얻고 다시 평화롭게 나 자신으로 돌아온 자아의 여행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눈물과 기도 속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는 염려하는 나의 약한 신앙에 대한 꾸짖음 때문이었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던 나의 무지에 대한 원통함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 말씀에 숨이 멎는 듯하였습니다.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나를 태어나게 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 있게 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만세(萬世)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을 하나님 사랑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이렇게, 때로는 나도 싫은 나를 엄숙하리만치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이게 저를 더 아프게 했는데) 내가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드넓은 우주를 휘감고 당신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무한한 사랑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 저를 울렸습니다.
하얀 눈이 꽃잎처럼 내리던 겨울에 쓰기 시작해서 벚꽃잎이 흰눈처럼 날리는 봄날에 펜을 놓았습니다. 마침 뜻하지 않은 감염병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때에, 이 책도 우리 모두처럼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읽고 염려를 능히 이기소서.
<저자 서문.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p. 12-15 중에서
염려는 불안에서 오는 감정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存在)를 확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근거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중략]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기를 규정하는 다른 존재가 없으니 자기 존재에 무슨 의미(意味)를 부여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 속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 가운데 염려합니다. 때로 이런 염려는 단지 염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두려움에 이르게 하고, 심하면 절망으로 이끕니다.
신자의 마음이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빛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使命)에 대한 자각, 일상의 의미, 인간관계의 가치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은 커다란 죄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눅 19:21). 그래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알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염려의 의미
염려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재물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 이 구절은 이 땅에서 욕심내어 재물을 모으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의 결론을 고려하면 이 말씀은 단순히 재산 축적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누리는 것보다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며 살아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대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과 박해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염려입니다. 성경적으로 염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합당한 염려입니다(마 5:25, 13:29). 고통에 대한 경험은 두려움을 주고, 염려는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심(警戒心)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에 교통 신호를 지키고 눈 오는 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이것들은 합당한 염려로서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타인에 대해서는 올바르고 공정하게 행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염려하는 바에 대한 완전한 대비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합당한 염려라고 할지라도 합당치 못한 마음으로 대함으로써 경건에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함입니다. 염려가 되는 상황에 대비는 하여야 하지만, 우리가 의지(依支)하는 분은 하나님뿐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령한 것들을 위한 염려도 합당한 염려에 포함됩니다(고전 7:32, 9:27, 고후 11:28). 자신의 경건과 교회의 영적 번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의 영혼들을 위한 걱정이 경건한 염려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에게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염려하는 바에, 우리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혹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염려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자기 사랑’(amor sui, self-love)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교만(superbia)에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의지(意志)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일치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염려를 운명처럼 지니고 삽니다.
<제1장.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가?> p. 31-3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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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색인
저자 서문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시작하는 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제1부 염려하지 말라
제1장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가?
들어가는 말 l 염려의 의미 l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l 염려가 엄습할 때 l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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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l 들풀도 돌보신다 l 믿음을 깨우치신 예수 l 염려를 극복하는 실제적 방법 l 맺는말
제4장 필요한 것을 아신다
들어가는 말 l 염려의 해결 방식 l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l 은혜 가운데 살라 l 맺는말
제2부 의미 있게 살라
제5장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들어가는 말 l 나라는 무엇인가? l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라 l 하나님 나라의 두 차원 l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라 l 그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 l 맺는말
제6장 먼저 그의 의를 구하라 1
들어가는 말 l 믿음으로 이르는 의 l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라 l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라 l 맺는말
제7장 먼저 그의 의를 구하라 2
들어가는 말 l 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 l 신자 안에서 이뤄지는 의 l 사회로 확장되는 의 l 교회를 세우신 이유 l 맺는말
제8장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들어가는 글 l 이미 받은 것 l 더하시는 하나님 l 맺는말
제9장 오늘, 염려하지 말라
들어가는 말 l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l 그날로 족한 괴로움 l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l 맺는말
마치는 글 하나님의 품 안에서 행복을 누리소서
참고 문헌
색인
김남준
현 안양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 신학과를 야학으로 마치고, 총신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신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했다. 안양대학교와 현 백석대학교에서 전임 강사와 조교수를 지냈다.
1993년 열린교회(www.yullin.org)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으며,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 퓨리턴들의 설교와 목회 사역에 감화를 받아 그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해 왔으며,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보편교회의 신학과 칼빈,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과 함께 현대 사회와 사상을 해석하면서 조국교회에 신학적 깊이가 있는 개혁교회 목회가 뿌리내리기를 갈망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97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와 2003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거룩한 삶의 실천을 위한 마음지킴』, 2005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죄와 은혜의 지배』, 2015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을 비롯하여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 『깊이 읽는 주기도문』, 『인간과 잘 사는 것』,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 제1권』,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거기 계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등 다수가 있다.
1993년 열린교회(www.yullin.org)를 개척하여 담임하고 있으며, 현재 총신대학교 신학과 조교수로도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 퓨리턴들의 설교와 목회 사역에 감화를 받아 그 모본을 따르고자 노력해 왔으며,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보편교회의 신학과 칼빈,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과 함께 현대 사회와 사상을 해석하면서 조국교회에 신학적 깊이가 있는 개혁교회 목회가 뿌리내리기를 갈망하며 말씀을 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97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와 2003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거룩한 삶의 실천을 위한 마음지킴』, 2005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죄와 은혜의 지배』, 2015년도 기독교 출판문화상을 수상한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 가족』을 비롯하여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 『깊이 읽는 주기도문』, 『인간과 잘 사는 것』,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 제1권』,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거기 계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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