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8)

베드로후서 3장 “구원받을 시간, 구원이룰 시간”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베드로후서 3:8)

사도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기억”할 것을 성도들에게 부탁합니다. 무엇을 기억하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시간의 주인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시간에 매어계시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시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편 90:4)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침투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할 것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부정할 것입니다. 복음과 교회를 조롱하는 자들은 명백히 보이는 진실을 잊으려고 무던히 노력합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베드로후서 3:5)

거짓 교사와 적그리스도는 일부러 잊으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일부러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천군천사와 함께 강림하실 수 있는 예수께서 악인들을 오래 참아 주시며 그들에게 기회를 허락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구원을 이룰 시간을 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힘쓸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이 현재입니다. 주님께서 시간 안에 매여 있는 우리들에게 촉구하시니 그분의 다시 오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전도와 성화에 힘써야하겠습니다.

특히 우리는 ‘복음은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병든 자, 무력하고 무능한 자, 구제불능인 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당신은 아픈 사람이다”, “당신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는다면 당신이 지금 현재 누리거나 꿈꾸고 있는 모든 행복과 명예 등은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잔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인간을 성경적으로 배려하는 유일한 태도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아프니까 의사가 필요하다고, 당신은 죽어 가고 있으니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이 인간을 대하는 원초적 입장입니다. 치명상을 입어 정신을 잃고 죽어 가고 있는 환자에게 당신은 큰 문제가 없다고, 다만 조금만 더 개선하면 된다고, 생각을 조금만 고치면 되는 거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잔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한재술, 『독서모임 “대답은 있다” 이야기』 (수원: 그 책의 사람들, 2011), 34.]

시간을 만드신 주께서 시간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성육신은 상상을 초월한 경이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전능자께서 시간 속에서 피조물과 같이 되셨습니다.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6시간 동안 고통당하셨습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쾌락을 즐기다간 심판대 앞에서 할 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주여, 오늘도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협 없이 전도하고, 진리 속에 자라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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