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e him alone; let him curse, for the LORD has told him to.

사무엘하16:5-14

[새번역]
5. 다윗 왕이 바후림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 마을에서 나왔는데, 그는 사울 집안의 친척인 게라의 아들로서, 이름은 시므이였다. 그는 거기에서 나오면서, 줄곧 저주를 퍼부었다.
6. 다윗 왕의 모든 부하와 모든 용사가 좌우에 서서 왕을 호위하고 가는데도, 그는 다윗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계속하여 돌을 던졌다.
7.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여 말하였다. "영영 가거라!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자야! 이 불한당 같은 자야!
8. 네가 사울의 집안사람을 다 죽이고, 그의 나라를 차지하였으나, 이제는 주님께서 그 피 값을 모두 너에게 갚으신다. 이제는 주님께서 이 나라를 너의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 주셨다. 이런 형벌은 너와 같은 살인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앙이다."
9. 그러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에게 아뢰었다. "죽은 개가 높으신 임금님을 저주하는데, 어찌하여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제가 당장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10. 왕은 대답하였다. "스루야의 아들아, 나의 일에 너희가 왜 나서느냐? 주님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분부하셔서 그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그가 나를 저주한다고,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겠느냐?"
11. 그런 다음에 다윗이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에게 말하였다. "생각하여 보시오. 나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도 나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하물며 저 베냐민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혹시 주님께서 나의 이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오늘 시므이가 한 저주 대신에 오히려 나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은 계속하여 길을 갔다. 그래도 시므이는 여전히 산비탈을 타고 다윗을 따라 오면서 저주하며, 그 곁에서 돌을 던지고, 흙먼지를 뿌렸다.
14.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백성이 요단 강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은 매우 지쳤으므로, 거기에서 쉬면서, 기운을 되찾았다.

[NIV]
5. As King David approached Bahurim, a man from the same clan as Saul's family came out from there. His name was Shimei son of Gera, and he cursed as he came out.
6. He pelted David and all the king's officials with stones, though all the troops and the special guard were on David's right and left.
7. As he cursed, Shimei said, "Get out, get out, you man of blood, you scoundrel!
8. The LORD has repaid you for all the blood you shed in the household of Saul, in whose place you have reigned. The LORD has handed the kingdom over to your son Absalom. You have come to ruin because you are a man of blood!"
9. Then Abishai son of Zeruiah said to the king, "Why should this dead dog curse my lord the king? Let me go over and cut off his head."
10. But the king said, "What do you and I have in common, you sons of Zeruiah? If he is cursing because the LORD said to him, 'Curse David,' who can ask, 'Why do you do this?' "
11. David then said to Abishai and all his officials, "My son, who is of my own flesh, is trying to take my life. How much more, then, this Benjamite! Leave him alone; let him curse, for the LORD has told him to.
12. It may be that the LORD will see my distress and repay me with good for the cursing I am receiving today."
13. So David and his men continued along the road while Shimei was going along the hillside opposite him, cursing as he went and throwing stones at him and showering him with dirt.
14. The king and all the people with him arrived at their destination exhausted. And there he refreshed himself.

시므이의 저주(사무엘 하 16:5-14)

우리는 여기서 시바의 아첨 못지 않은 시므이의 저주를 다윗이 견뎌내는 훌륭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시바에 의한 다윗은 타인을 잘못 인정했으나 시므이에 대해 그는 바로 판단할 수 있었다. 세상의 미소는 찡그림보다 더 조심할 일이다. 생각해보자.

Ⅰ. 시므이가 얼마나 오만하고 난폭했던가. 그는 다윗의 재난을 통해 자신의 적개심을 폭발시켰다. 다윗이 망명 중에 베냐민성 바후림에 이르렀다. 그곳은 시므이가 살았던 곳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집안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사울이 몰락될 때 그의 문중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므이는 모든 관직에서 떨어졌다. 그는 사울의 후계자로 물망되던 자였다. 그래서 그는 다윗에 의해 뼈에 맺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다윗이 번영하고 권력이 왕성하면 할수록 시므이는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그가 말로 표현한 저주보다 더 무서운 저주가 그의 마음 속에서 발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므이는 다윗을 날조할 수 있는 모든 나쁜 말로 그를 저주로 퍼부었다.

1. 왜 시므이는 자기의 분노를 이 기회에 발산했는가.

(1) 이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도전자에게 분을 발할 수 있었다면 시므이는 당장 처단되었을 것이다.

(2) 이 때가 다윗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슬픔에 고충을 더하기 위해 그의 상처에 초를 치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처신자에게 슬픔을 더하는 것은 가장 야만인이다(시 69:26 참조).

(3) 이 때가 자기의 비난을 다윗에게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윗의 당면한 고통은 자기 자신이 자진해서 저지른 죄악임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욥의 세 친구들도 이런 잘못된 원리에서 그를 저주했다. 하나님의 은혜 중에 책망듣는 사람은 왜 하나님은 선인에게 악인을 보내서 비난받게 하시는가를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으니 지금 따라가 그를 잡으라" (시 71:11)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쓰러지는 자를 아주 짓밟아 없애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2. 그의 악의가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비참하게 된 자에게 어떻게 했는가. 그는 다윗에게 돌을 던졌다(6절). 마치 그가 개나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 유대인은 가장 악한 죄인을 만나면 그가 죽을 때까지 돌을 던졌다. 아마 그가 던진 돌이 다윗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한 먼 곳에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힘만 있었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주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그가 돌을 던지매 티끌을 날리더라" (13절). 그가 저주한 저주가 자기에게로 돌아 간 것같이 그가 날린 티끌이 자기 눈속으로 들어 갔을 것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미워하면 할수록 자신의 증오는 더욱 무기력함을 느끼곤 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미워는 할 수 있을지라도 그를 해칠 수는 없는 것이다.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욥 35:6). 다윗이 좌우에 장대한 호위병과 함께 있을 때 시므이의 무기력함이 드러나므로 그의 분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다윗이 버림받고 박해 중에 고난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태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전과 다름없이 여전하고 오히려 그 신하들은 더욱 열성적이었다.

(2) 그가 한 말이 무엇인가? 그는 돌을 던지며 악한 말을 했다(7, 8절). "너는 재판장을 욕하지 말라" (22:28). 다윗은 명성있는 양심의 사람이요 의롭고 선한 분이라는 여론이 있었다. 어떻게 그런 저주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까? 그가 잊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는 사울의 집에 있을 때에 갈망하던 것이 다윗 때문에 패배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인하여 이렇게 다윗을 비난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기질 때문에 우리는 불의한 생각만 가졌어도 늘 의롭다가도 한 번만 악에 이용되어도, 그를 악인이라고 규정짓는 경향이 있다. 이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는 너무 일방적이고 부분적이다. 사울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빼앗을 자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집에서 순결한 피를 뺏을 자 또한 없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의 생명을 노릴 때 다윗은 사울의 생명을 살려 주었다. 사울과 그의 자녀들이 블레셋 사람에 의해 살육당했다는 소식을 다윗이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었을 때 매우 슬퍼했다.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모살자로부터 다윗은 충분히 혐의가 밝혀졌으나 사울의 집에 피 흘린 자는 모두 그의 집 문에 남아 있었음에 틀림 없다. 악의가 없는 사람은 거짓과 악함에 대해서도 방벽이 없다. 악한에게 도전을 당해도 이상하게 생각지도 않고 신중을 기해서 자신을 지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이 재판장이 될 수 없고 진리를 따라 판단하시는 하나님만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울의 피 값을 불법으로 다윗에게서 찾으려 했다.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1] 그의 성품을 나타냄으로 다윗보고 벨리알의 사람 "피 흘린 자여" 라고 이름을 붙였다(7절). 그가 벨리알의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피흘린 자다. 벨리알이라 불리는 사람은 악마의 후예이기 때문이다(고후 6:15 참조). 그는 창시 때부터 살인자다. 피흘린 자란 가장 흉악한 자라는 말이다.

[2] 다윗에게 고통을 더해 줌으로써 사울의 피 값을 찾으려 했다.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 내고 광야로 방황하게 한 것은 사울의 피 값이라는 것이였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만일 자기에게 잘못을 저질렀거나 하면 그에게 고통이 찾아오고 큰 손상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리석음이나 불의의 원한에 이용하려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분노를 도와 주지도 않는다.

[3] 그의 왕위가 다시 회복될 수 없도록 망하기를 그는 원했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시 3:2). 하나님은 압살롬의 손의 나라를 므비보셋에게 옮기실 것이라는 꿈에도 생각지 않은 말을 시바에게서 들었던 것처럼 시므이는 다윗에게 너는 피를 많이 흘렸고 많은 파괴를 했다고 저주를 했다.
Ⅱ. 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참고 유순하게 대하는 다윗을 생각해 보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장군이 특별히 그의 칼로 다윗의 명예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9절)라고 날카롭게 이를 방어하려 했다. 만일 다윗이 허락만 한다면 아비새 장군은 그의 목을 잘라 저주하는 일을 조용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존경한 왕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로 저주하게 두라" 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도 명예를 좋아하는 제자들이 사마리아성에서 치욕당하는 것을 생각하고 하늘로부터 불을 명하여 저들을 멸하자고 할 때 그들을 책망하셨다(눅 9:55). 다윗이 어째서 침묵을 지키게 했나 생각해 보자.

1. 침묵한 첫째 이유는 자기의 고난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참회하는 자는 할 말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참회자의 반성은 말 같은 것은 전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므이는 사울의 피에 관해 다윗을 몹시 비난했다. 양심으로는 다윗을 저주할 만한 것이 없어 무죄로 인정되지만 그러나 우리아의 피를 그에게 부과시켰다. 그의 말은 거짓이지만 그러나 다윗은 그 비난도 참된 말이라고 생각했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언제나 비난의 소리도 좋은 충고로 믿는다. 그래서 그들을 선하게 대해준다.

2. 그는 모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관찰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10절)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막을 자가 누구겠느냐?" (11절) 그의 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그의 악한 마음 속에서 나온 것이거나 악마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것은 시므이의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도 없고 핑계나 참작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죄는 예수를 죽는 데 내어 준 사람들의 죄만큼 악한 것이다(행 2:23; 4:28 참조). 그러나 다윗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다윗은 욥과 같이 약탈자로부터 그의 것을 뺏겼을 때 주께서 뺏어갔다고 인식했다. 은혜스러운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말이 없다. "주께서 이루셨으므로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하였나이다." 입술의 저주도 하나님의 회초리가 된다.

3. 그는 위인을 생각하고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11절). 경건한 사람은 재난이 인내를 낳게 한다. 견디면 견딜수록 더욱 훌륭한 인내력이 생긴다. 우리의 인내심을 키우면 재난을 개선할 수 있게 된다. 고통에서 연단을 하면 할수록 고통을 당해도 놀라지 않게 하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게 된다. 원수가 해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말라. 친구가 불친절하다고 이상히 여기지 말며 자녀들이 불효한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

4. 그는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의 고통을 몰아내고 좋은 것을 허락하실 줄 믿고 또 그가 직면한 고통자체가 통제되고 그의 재난으로부터 인내함으로 보상이 있을 것을 믿고 위로를 받았다. "여호와께서 그의 저주대신 선한 것으로 내게 갚으시리라" 생각했다. 만일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그를 슬프게 만들라고 명하셨다면 다윗은 이 시련으로 그를 연단시킨다고 생각하고 더욱 위로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생각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를 높이기 위해서 고통 중에서도 그를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바후림에 머무른다(14절). 거기서 원기를 회복하고 사소한 말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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