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로렌스 "하지만 영적인 즐거움은 영혼을 위한 안전한 즐거움입니다. 영혼을 위한 안전한 즐거움은 지식을 얻고 진리를 사랑하며 우리가 아는 것을 기뻐하게끔 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청교도와 함께 안전한 샘
모든 육신적인 즐거움은 잠시 있다 사라질 뿐입니다. 지금은 육신적인 즐거움들이 좋아 보이지만, 잠시 뒤면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것이 돼버립니다. 그 즐거움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지는 않더라도 조만간 나뭇잎처럼 떨어져 나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기쁨은 처음이나 끝이 동일하게 신선하고 푸르릅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시1:3). 예수 그리스도의 침상은 언제나 푸릅니다(아1:16). 시인들이 꿈꾸는 봄이 사라지지 않는 황금 시대의 실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즐거움은 언제나 새롭게 샘솟고 싹트는 위로를 줍니다. 게다가, 이 즐거움은 더 안전한 즐거움입니다. 육신적인 즐거움은 파괴적인 즐거움이어서 영적인 유익을 파괴합니다. 죄를 자기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육신적인 즐거움은 심지어 자연적 유익까지도 파괴합니다. 슬픔뿐 아니라 즐거움도 지나치면 위험합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 근심이 “사망을 이루느니라.”(고후7:10)라고 한 말을 즐거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즐거움 때문에 분별력과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나친 즐거움은 영이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의 문을 크게 열어놓습니다. 이것이 육신적 즐거움이 종종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즐거움은 영혼을 위한 안전한 즐거움입니다. 영혼을 위한 안전한 즐거움은 지식을 얻고 진리를 사랑하며 우리가 아는 것을 기뻐하게끔 하는 좋은 수단입니다. 이 즐거움이 아니었다면 가장 좋은 진리라도 우리 영혼의 뱃속에 소화되지 않는 채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적당한 즐거움의 영은 과도함을 내어 쫓고 영감을 고취하며 이해력을 증진하고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한 마디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잠17:22)입니다. - 매튜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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