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장 23-31절 설교, 강해 32] "모든 ...

모든 것이 가하나(고린도 전서 10:23-33)

여기에서 바울은 어떠한 경우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종교적인 의식이나 우상의 제물임을 알고 신전에서 잔치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우상에게 바쳐진 것도 죄없이 먹을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Ⅰ. 바울은 먼저 합법적인 일에 있어서도 우리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도 가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가한가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유익하며 덕을 세우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생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웃을 해치지 않고 그의 유익을 높이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을 도와서 거룩함과 위로와 구원에 방해가 안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가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우연히 악을 행하여 남에게 피해를 준다. 자체가 합법적인일도 합법적으로 수행되지 못하는 예가 있다. 형편이 죄 아닌 것을 죄로 만든다. 행하기 전에 유익과 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잘 하려면 우리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도 고려해야 한다.

Ⅱ. 바울을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 이방인의 제물은 제관을 통하여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의 고기 파는 사람에게 그것이 제물인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일반 음식물로 팔리니 그것으로 사서 사용하여야 한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26절). 이 땅의 모든 열매와 산물은 대 주인인 주의 것이며 인간의 사용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고 특히 하나님의 자녀와 종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4, 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딛 1:15) 비록 어떤 음식을 우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면 죄이나 보통으로 용도와 거룩한 방법으로 쓰면 가하다.

Ⅲ. 만약 이방인 친지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면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27절). 비록 그들이 우상에 바쳐진 것이 차려졌으며 시장에서 팔려지는 것을 알더라도 문제가 아니다. 바울은 불신자의 초대에 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나 불경건한 사람에게도 해야할 예의가 있다. 기독교는 우리와 아무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의 제도나 그들을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신자의 잔치에 앉았을 때에는 묻지 말고 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불필요한 질문은 마음과 양심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피해야 한다. 일반 열회석에 있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제물에 바친 것인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일반 잔치이며 종교적인 잔치가 아니다.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를 하고서 잔치를 열었는데 바울은 이것을 정죄하였다. 보통의 연회석에서는 일반의 음식을 기대하고 양심의 가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의무를 알고 깨닫도록 주의하여야 하지만 불필요한 질문으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Ⅳ. 그러한 연회석에서도 어떤 사람이 그것이 제물이라고 말하면 삼가해야 한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주인이나 손님이나 공공연하게나 비밀리나 불신자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나 누가 말하여도 삼가하라. 양심을 위하여서 삼가하라. 전과 같이 이론을 전개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주의 것이다." 주님에 의하여 제공된 식물이 많이 있다. 이것을 가책없이 먹을수 있다. 같은 교리가 적용된다. 이 땅은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음식으로 주어진 무엇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먹을 수 있다. 이 땅은 주의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걸림이 되는 것은 먹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을 우상으로 인도하고 가하지 않는 것을 먹도록 유혹하고 죄를 짓고 상처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양심을 아프게 하고 그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것을 주의해서 금해야 함을 주목하자.

Ⅴ. 비록 제물이었던 것을 일반 식물로 제공할 때에 먹어도 가하나 남을 넘어지게 하는 일은 삼가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양심이 우리의 행위에 척도는 아니다. 그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도 불법이 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자유에 속한 일이다. 하나님을 식물의 제공자로 고백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면 음식을 사용함에 대하여 비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상황에서 먹음으로 생긴 비난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해하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사용하여 나를 욕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겠는가." 바울의 충고에 의하면(롬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그리스도인은 남을 해롭게 하거나 자기가 비난을 받도록 자기의 자유를 사용해서는 안 됨을 명심하자.

Ⅵ. 바울은 이 경우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을 정하고 특별한 경우에 적용한다(31,32절). 즉 먹든지 마시든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그를 기쁘시고 명예롭게 해야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경건의 근본적인 원리이다. 모든 실제적인 신앙의 목표가 특별한 규칙이 없는 곳에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배치되는 일은 할 수 없다. 이웃의 유익을 해치는 일을 금해야 한다. 어떠한 사람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32절) 우상을 그렇게나 혐오하여 우상에 바친 모든 것은 불결하며 그것을 먹는 사람도 죄가 있다고 믿는 유대인을 불필요하게 근심스럽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행위가 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를 지지해 주는 결과가 되어도 안 된다. 이방 종교에서 개종한 연약한 신자들이 그들이 버린 우상 숭배를 계속해서 하도록 해도 안 된다. 교회의 어떠한 성도들의 신앙을 잘못 인도해도 안 된다. 우리의 기질과 기호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과 덕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흥미나 쾌락을 생각하지 말고 천국의 확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헌신한 사람이며 공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Ⅶ. 바울은 자기의 본보기를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33절). 설교자는 자기의 본보기로 강조할 때에 더욱 권위있게 충고할 수 있다. 스스로 실천하는 일은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다. 목사가 청중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그의 기능에 알맞는 정신이다. 좁은 마음이나 이기심으로써는 할 수없는 일이다.

23.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또 그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닙니다.
24.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생각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25.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무엇이든 양심에 거리낌없이 먹어도 됩니다.
26. 이것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 여러분이 불신자의 초대를 받고 가거든 차려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에 거리낌없이 먹으십시오.
28.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쳤던 것이라고 하거든 말한 사람과 양심을 위해 먹지 마십시오.
29.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30. 감사하고 먹으면서 왜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남의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NIV]
23. "Everything is permissible"--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Everything is permissible"--but not everything is constructive.
24.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25. Eat anything sold in the meat market without raising questions of conscience,
26. for,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27. If some unbeliever invites you to a meal and you want to go, eat whatever is put before you without raising questions of conscience.
28. But if anyone says to you, "This has been offered in sacrifice," then do not eat it, both for the sake of the man who told you and for conscience' sake--
29. the other man's conscience, I mean, not yours. For why should my freedom be judged by another's conscience?
30. If I take part in the meal with thankfulness, why am I denounced because of something I thank God for?
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고전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 바울은 위의 14-22까지 신당 제연 석상(神堂祭宴席上)에서  기
독자가 우상의 제물을 먹을 수 없음에 대하여 엄히 경계하였다. 특별히 21절에  "귀신
의 잔", "귀신의 상"이라는 표현이 설비를 갖춘 제연을 생각하게 한다. 제연 석상으로
말하면 우상 교도들이 저들의 우상을 즐기는 의미에서 연회를 가지는 것인  만큼,  그
자리는 우상 숭배를 찬성하는 자리이다. 그러니만큼 기독자가 거기에 참예할 수  없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바울이 23절에서부터는, 위의 경우(신당에서 제물을 먹지 말 경우)와 다른  경우를
취급한다. 곧, 신자가 우상의 제물을 모르고 먹을 경우에도(25-27절) 양심 문제를  존
중시하여 행동을 조종하여야 될 것을 가르친다. 자기자신의 양심에는  가(可)한  줄로
생각되는 일에 있어서도 그는 그 일 행가기를 거부(拒否)할 경우가 있나니 이런  것을
가리켜 양심 자유의 사항(事項)이라고 한다. 이것을 라틴말로  아디아포라(Adiaphora)
라고 부른다. 아디아포라의 문제에 있어서 기독자 자신은 자유를 사용할 수 있다.  그
러나 언제든지 남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라면 자기로서는 양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본문에 말한 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라는  원
리에 따라서 행동을 조종함이다. "덕을 세운다"는 말은 남들을 유익하게 한다는  뜻으
로서 건립(建立)을 의미한다. 물론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는,  성경에  어떠한
명문(明文; 命令 혹은 禁令)이 없는 건(件)에 대한 사항(事項)에 관계된 것이다. 성경
에 명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것의 실행을 거리껴 하는 경우에  신자
가 그 일에 대한 자기의 행동을 견제(牽制)할 필요는 없다.

 

 고전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여기 구한다는 말은  계
속적으로 탐색(探索)함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나 남들의 유익을 구하는 것 만치 중요하지는 못하다.

 

 고전 10:25,26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 이 말씀 뜻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시장에서 파는  음
식물이라면 상품화(商品化)된 것이니 그 물건의 유래(由來)를 물어볼 필요는 없다. 바
울은 여기서 이 말을 할 때에, 우상의 제물 같은 것도 상품화 되어서 시장에 나올  수
있게 되는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 우상의 제물이라도 일단 상품화되어 시장에  나왔다
면, 그것을 상품 취급할 뿐이다. 그 이유는, 그 물건이 우상의 제물로 사용된 일이 있
다 할 지라도 물건 자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
건 그 자체가 윤리성(倫理性)을 띠는 법은 없다. 그 이유는, 물건은 인격이 아니기 때
문이다(윤리 문제는 意志와 자유를 가진 인격에게 한하여 따르는 것임).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좋다고 하셨다(창 1:12, 18, 1, 25, 31).  물질
자체가 악하다는 사상은 이교사상(異敎思想)이다. 특별히 헬라 철학에서 물질을  악시
(惡視)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 말하기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
이니라"라고 하였다. "주의 것"이라 함은, 주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또한 그것들을
보존 시키시며 그것들을 소유하실 권세가 있음을 이름이다.
   여기 이른바 "양심을 위하여"라는 말은, 남들의 양심을 위한다는 의미이다.

 

 고전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바울이 여기서는 우상의 제물관념(祭物
觀念)에서 떠나, 단순한 식탁을 대상(對象)하고 기독자가 취할 태도를 보여준다. 신당
(神堂)이 아니고 보통 사가(私家)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청할 때에는, 손님 접대의 목
적으로 차려 놓은 음식물이라는 관념 밖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그 마음은 헛된 생각에 불과하다. 초청을 받은 그는 청한 자의 친절과 거기 차려
놓은 물질 그 자체를 볼 뿐이다. 물질은 하나님이 지어 내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장
하셔야 마땅한 것이니, 그것을 받는 자로서는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 있어서도 문제가 달라질 경우도 있다. 그것은, 물질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그 장면에 어떤 때에 있을 수 있는 인적 관계(人的關係)이다. 다시 말
하면 다른 사람의 양심문제가 일어날 경우이다.

 

 고전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
라. - 윗절에 관설된 좌석(座席)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거기 차려 놓은 음식물을  제
물이라고 하여 문제시(問題視)할 경우에 기독자의 처신원리는 달라진다.  그  이유는,
그의 양심에 가(可)하다고 생각한 것이, 새삼스러이 일어난 다른 사람의 양심상  거리
껴 하는 생각 앞에서 강행(强行)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그것을 강행하면, 남
에게 유익이 없고 덕을 세우지 못한다(23절). 여기 이른바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이
란 말은, 결국 그 "알게 한 자"의 양심이란 뜻과 같다.

 

 고전 10:29,30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
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
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 일설에, 이 말씀 뜻은 우상의  제물을  단지
물질로만 취급하여(남의 양심에 저촉됨이 없는 한), 먹는 자로서 남들의 비평을  받을
필요는 전연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 한다면 자기  양심
에 거리낌 없다고 하여 주위에 있는 자들의 비평을 돌보지 않고 강행할 수 있다는  뜻
이 된다. 이런 해석은, 28절 하반절에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는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라리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먹을 수 있는 자의 자유가 남들의 양심에서 나오는 비평을  무릅쓰고까지  강행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이라고 하여 감사함으로 받
을 뿐이라는 주장이 좋으나, 하필 그 주장을 남에게 유익되지 못하게  실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함이 이 아래 31-33까지의 말씀에도 잘 부합한다.

 

 고전 10:31-3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먹는 문제에 있어서 덕을 세우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궁극적(窮極的) 목절을 이루라는 뜻이다(8:1-3 참조). 하나님의 영
광을 위하는 행동원리(성경에 명백히 밝혀진 진리)는 우리가 남들의 비평을  무릅쓰고
실행하여도 가하다. 그러나 성경에 밝혀지지 아니한 아디아포라(Adiaphora)의 문제(23
절 해석 참조)에 있어서는 우리가 남들의 생각에 잘 조절하여 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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