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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 신앙고백서 36조 강해 "시민정부(The Civil Government)"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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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정부 제 36 조 시민 정부 The Civil Government 우리는 인류의 부패 때문에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왕과 군주와 공직자들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방탕함이 억제되고, 모든 것이 선한 질서대로 그들 가운데서 행해지게 하기 위해, 세상이 법률과 정책에 따라 다스려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목적을 위해서 정부의 손에 칼(무력)을 두셔서, 악을 행하는 자들을 처벌하시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보호하십니다(롬13:4). 이것을 억제하고 보호하는 그들의 임무는 공공질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나라가 도래하고, 복음의 말씀이 모든 곳에서 설교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에서 요구하신 대로 모든 사람들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시도록 하기 위한 교회와 교회의 사역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더욱이 신분이나 조건, 지위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은 공직자들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세금을 내야하며, 그들을 경의와 존경으로 대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길을 지도하셔서 우리가 모든 면에 있어서 경건하고 정직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딤전 2:1-2).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재세례파와 다른 반역하는 사람들과 일반적으로 권세들과 공직자들을 배격하고 공의를 무너뜨리며 이익 공동체를 도입하여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세우신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모든 자들을 정죄합니다. Article 36: Of Magistrates. We believe that our gracious God, because of the depravity of mankind, hath appointed kings, princes and magistrates, willing that the world should be governed by certain laws and policies; ...

전도서 1-12장 [쉬운성경] Ecclesiastes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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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1:1 <이 세상 모든 것은 헛되다>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던 설교자 가 한 말입니다. 전1:2 설교자가 말합니다.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 만사가 너무 허무하다 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일하는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전1:4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전1:5 해는 떴다가 지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그 떴던 곳으로 급히 돌아가는구나. 전1:6 바람은 남쪽으로 분다 싶더니, 다시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이리저리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전1:7 강들은 모두 바다로 흘러들지만, 바다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 강물도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전1:8 세상 만사 말로 다 할 수 없이 피곤하니, 눈은 보고 또 보아도 만족하지 않고, 귀는 듣고 또 들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전1:9 이미 있던 것들이 다시 생기고, 사람들은 전에 했던 일들을 다시 한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전1:10 누가 “보라, 여기 새것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있었던 것이며, 우리가 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던 것일 뿐이다. 전1:11 이전 사람들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이제 태어날 사람들 역시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전1:12 <지혜도 헛되다> 나 설교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전1:13 나는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지혜로써 연구하고 깊이 생각하기로 작정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워 주셨는지 알게 되니 괴로웠다. 전1:14 내가 해 아래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펴보니, 그 모두가 마치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허무하였다. 전1:15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부족한 것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전1:16 나는 스스로 말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왕 노릇 한 사람치고 나보다 지혜와 지식을 크게 깨친 자는 없을 것이다.” 전1:17 나는 지혜가 무엇이며, 미친 짓과...

5월 1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감정이 아닌 믿음(Faith— Not Emotion)"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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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린도 후서 5:7) 한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의식하며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사역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하시면 우리는 슬픈 기색을 띠고 고난과 역경에 대하여 말합니다. 주의 사역을 하게 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눈에 띄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영적으로 눈에 띄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시고 놀라운 영감을 허락지 않으실 때도, (그래서 전혀 당신의 영성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도,) 당신은 당신의 일상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흘러넘치는 영감과 함께 금빛 후광을 띈 성자처럼 빛나길 원합니다. 그래서 다른 성도들이 자신을 특별히 대해 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금테로 된 후광을 쓰길 원하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은 비정상적이며 일상적인 삶에 맞지 않는 자들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일을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미완성 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거듭났기에 이 땅의 모든 요란함을 이기고 거룩하게 설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만일 희귀한 영감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원한다면 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던 그러한 특별한 순간들에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순간들을 끊임없이 재현하시길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나타나실 때까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영감이나 갑작스러운 하나님의 손길이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 놀라운 깨달음이 임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곳에 계셨건만...

4월 30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사랑의 자발성(Spontaneous Love)"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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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미리 생각해 보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특이한 방법으로 터집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의 특성에는 수학적인 확실성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 “나는 지금부터 악한 생각을 하지 않으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믿을 거예요.” 사랑의 특성은 자발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앞에 표준으로 세워 놓지 않아도 주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아 주관하시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표준에 따라 살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떤 특별한 감정에 끌린 것도 아닌데 주를 따르고 있는 자신을 보며 놀라게 됩니다. 이는 내 안에 자발적인 참된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행한 모든 일은 과거로 지난 후에야 그 본질이 판명됩니다. 사랑의 샘은 하나님 안에 있지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연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안에 넓게 부어진 바 될 때 그때야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게 됩니다.(롬 5:5) 만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주께 증거하려고 노력한다면 이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저절로 우러나는 사랑이야말로 주를 향한 참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뒤돌아보면 왜 우리가 어떤 일들을 행하였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이같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 이유는 사랑의 샘이 성령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4월 30일 사랑의 자발성 Spontaneous Love Spontaneous Love By Oswald Chambers Love suffers long and is kind…...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여호수아 5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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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5:2-9 [개역개정]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NIV] 2. At that time the LORD said to Joshua, "Make flint knives and circumcise the Israelites again." 3. So Joshua made flint knives and circumcised the Israelites at Gibeath Haaraloth. 4. Now this is why he did so: All those who came out of Egypt--all the men of military age--died in the desert on the way after leaving Egypt. 5. All t...

4월 29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불확실함의 은혜 Gracious Uncertainty"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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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나의 최고봉) 4월 29일 불확실성의 은혜 요일 3:2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자연적으로, 우리는 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살아왔기에 불확실한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삶의 속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삶의 속성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신을 누리는 것이며 이 땅 어디에서도 보금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상식은 말합니다. – “그래,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안전할텐데…” 그러나 우리가 결코 처해져 보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가정해 볼 수 없습니다. 확실성은 상식적인 생활의 표지입니다. 은혜로운 불확실성은 영적인 삶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 날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현실은 보통 슬픔의 한숨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실은 벅찬 기대로서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단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주께 우리 자신을 다 내려 놓고 주께서 맡기신 가장 가까운 의무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깜짝 놀랄 일들로 우리의 삶을 채우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특별한 관념을 주장하고 옹호하려고 할 때 우리 안의 믿음은 죽어갑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영적인 삶은 어린아이의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불확실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다음에 무엇을 하실 지에 대하여 불확실할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믿음만을 확신할 경우 자신만 고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는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갖게 됩니다. 자신의 관점만이 완전하다는 고정 관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되면 우리의 삶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하여 오히려 저...

출애굽기 7장 설교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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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나는, 네가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고, 너의 형 아론이 너의 대언자가 되게 하겠다. 2. 너는,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너의 형 아론에게 말하여 주고, 아론은 그것을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 달라고 하여라. 3. 그러나 나는, 바로가 고집을 부리게 하여 놓고서, 이집트 땅에서 표징과 이적을 많이 행하겠다.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때에, 나는 손을 들어 큰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고, 나의 군대요 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겠다. 5.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그들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때에, 이집트 사람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6. 모세와 아론은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의 나이는 여든 살이고, 아론의 나이는 여든세 살이었다. 8.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9. "바로가 너희에게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지팡이를 바로 앞에 던지라고 하여라. 그러면 지팡이가 뱀이 될 것이다." 10.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게 갔다. 그들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하였다.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들 앞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 11. 이에 바로도 현인들과 요술가들을 불렀는데,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똑같이 하였다. 12. 그들이 각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들이 모두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켰다. 13.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가 고집을 부리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1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로는 고집이 세서, 백성들을 내보내기를 거절하였다. 15. 그러니 너는 아침에 바로에게로 가거라. 그가 물가로 갈 것이니, 강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만나거라. 너는 뱀으로 변했던...

4월 28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당신이 얻는 것(What You Will Get)"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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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예레미야 45:5) 이것은 주를 의지하는 자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비밀입니다. – “내가 너로 생명을 얻게 하리라.” 자기 생명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다”는 말은 당신이 어디로 가든, 심지어 지옥이라 할지라도 전혀 해를 받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반드시 재산과 소유물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축복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영광스럽고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 바로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면 당신이 인생 가운데 위대한 것들이라고 불렀던 것들에 대하여 더 이상 관심이 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연합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다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추측을 주의하십시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허락하는 즉시 이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실제로 신뢰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 것인가에 대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내려놓음이란 주님께 질문하려는 사치스러움마저 거절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완전하게 헌신한다면 주께서 당장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로 생명 얻기를 노략물을 얻는 것 같게 하리라.” 사람이 삶에 실증을 갖게 되는 이유는 생명 얻기를 노략물로 얻는 것같이 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다 내려놓을 때 당신은 이 땅에서 가장 놀랍고 가장 기쁜 피조물이 ...

설교 요약 [2021년 4월 18일 주일 예배, 출애굽기 6장]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집안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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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니 이들은 시므온의 가족이요……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출애굽기 6:15, 20) 모세는 바로의 반대와 이스라엘 자손의 불신 속에 낙심하고 있습니다. 살인했던 과거가 낙심을 부추겼을까요? 모세는 자신의 집안 때문에 더욱 위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가계는 마냥 순결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조상 중에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직접적인 조상 레위는 할례를 빌미로 세겜 사람들을 속이고 도륙하여, 야곱의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고모와 결혼하여 모세를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혼을 금하셨습니다(레18:12).그러나 하나님이 쓰시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모세의 손을 들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출애굽기 6:26-27) 하나님은 낙심과 자격지심, 소명감 부재로 힘들어하는 모세를 치유하십니다.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만나주시고, 사용하시어, 그의 자존감을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할 만큼 부끄러운 집안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되지 못할 과거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4월 27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You Want?)" by 오스왈드 챔버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예레미야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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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예레미야 45:5) 당신은 당신에게 위대한 일들이 발생하기를 바랍니까?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대사를 이루시길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님의 선물을 받는 것을 좋아하시기보다, 주님과 더욱더 가까운 관계가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이 그분을 알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큰일들은 임시적입니다. 왔다가 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임시적인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가장 쉬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유가 단지 물질이라면 당신은 온전한 헌신의 첫 단계에도 들어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신은 단지 스스로 볼 때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였지만, 주님은 내가 기대하였던 쉼과 평강을 주시지 않으셨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그 이유를 지적해 주십니다. – “너는 주님을 전혀 구하지 않는구나. 너는 너 자신을 위하여 뭔가를 구할 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 7:7)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옳은 것을 구하지 않고 있다면 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물질을 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그러면 왜 구합니까? 주님을 알기 위함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위대한 것을 구하십니까? “오 주님, 성령 세례를 제게 부어주소서.” 만일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면 이는 당신이 주님을 향하여 완전히 항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주님께 순종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며 또한 왜 하나님께 그것을 원하는지 당신 자신에게 질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것들에 관심이 있으시지 현재의 임시적인 것들에 관심이...

벨직신앙고백서 35조 강해 "성찬(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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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중생하여 하나님의 권속 곧 그의 교회로 접붙여진 자들을 기르시고 유지시키시기 위하여 성만찬의 성례를 제정해주셨음을 믿고 고백합니다. 중생한 자들은 그들 안에 두 생명을 가지는데, 하나는 육신적이며 현세적인 생명으로서 그들은 첫 번째 출생의 순간부터 이 생명을 가지며 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명으로, 이는 두 번째 출생에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의 교통 가운데 오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공통입니다.   지상에서의 육신 생명을 유지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지상의 물질적인 떡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떡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이 공통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가진 영적이며 천상적인 생명을 유지해 나가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오신 산 떡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그를 먹을 때 곧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영적으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의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시고 강하게 해주십니다.   이 영적이며 천상적인 떡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눈에 보이는 이 땅의 떡을 그의 몸을 나타내는 성례로, 포도주는 그의 피를 나타내는 성례로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손으로 성례를 받아서 그것을 우리의 입으로 먹고 마심으로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 참된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하여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우리 영혼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기 위하여 성찬을 제정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우리의 영혼의 손과 입인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성찬식을 결코 헛되이 명하지 않으신 것이 확실합니다. 비록 그리스...

데이빗 클락슨(David Clarkson, 1622-86)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한 것과 선견자로 하여금 대단히 슬픈 충언을 하게 만든 것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대하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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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와   함께   신실한 친구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나 당신 자신의 영혼을 향해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신실하게 행하고 싶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심각하게 훈계하는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자들이 훈계를 거절하거나, 훈계를 통해 교정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들은 피해야 합니다(살후3:14). 소크라테스를 박해한 사람들과 같은 욕탕에서 씻지 않으려 한 아테네인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 시대의 유명한 이단이었던 케린투스가 욕탕으로 들어오자, 즉시 그곳을 떠나 케린투스와는 같은 장소에도 있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도 마르시온이 인사하며 자기를 아느냐고 묻자 “그래 알지. 마귀의 큰아들 아닌가.”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사기꾼에 대해 폴리캅이 취한 태도는 이처럼 단호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합한 것과 선견자로 하여금 대단히 슬픈 충언을 하게 만든 것에 대해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아실 것입니다(대하19:2). 아하시야와의 교제 역시 여호사밧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사귐에 도대체 어떤 위험이 있었던 것일까요? 여호사밧을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훌륭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호사밧이 아합을 친구로 택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합의 행위와 우상 숭배를 따라 하기 쉽게 됩니다. 결국, 여호사밧과 아합의 우정은 사람들에게 올무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사귀는 친구를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우리가 누군가를 친구로 택할 때는 친구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악행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의 악함을 옳다 인정하여 그 악행에 동참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데이빗 클락슨(David Clarkson 1622-1686)

4월 26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믿음의 산을 오르며(The Supreme Climb)"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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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2) 사람의 성품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를 결정합니다 (시 18:25-26).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 아들을 죽여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끔찍한 시련으로 인하여 그 당시의 전통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그의 믿음을 정결케 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믿음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오해시키는 그러한 전통으로부터 우리를 끄집어내실 것입니다. 사실 제거되어야 할 잘못된 믿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데려가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는 마귀의 거짓말이요 하나님의 참된 속성을 왜곡시키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입니다! 만일 마귀가 우리가 최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방해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전통을 번지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하면 하나님께서는 주님에 대한 더 나은 지식을 얻게 하도록 우리로 시련을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가졌던 믿음의 강점은 하나님을 위해서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와 반대가 되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라면 밀고 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신념을 위한 헌신자가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기 신념의 노예였다면 그는 “이삭을 죽이지 말라”는 천사의 음성을 마귀의 음성이라고 하며 이삭을 죽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광신자의 모습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진실하면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당신을 이끌어서 모든 역경을 지나게 하시고 주를 더 깊게 알 수 있는 내빈실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언제나 잘못된 자기 확신 및 잘못된 전통적인 믿음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당신을 시험하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2021년 4월 25일 주보 [라마단 기간입니다. 약 18억 명의 이슬람 교도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집중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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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MK News Letter [순교자의 소리] 2021년 4월호 VOM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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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Ready in Season)"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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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 후서 4:2)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때를 얻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때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말합니다.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우리가 하고 싶든 말든 기회를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면 우리 대부분은 끝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 쓰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들로서 초자연적인 영감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영감을 받았다고 느끼든 말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이 빠지는 가장 큰 함정은 자신의 예외적인 영감의 순간들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영감과 통찰의 순간을 허락하시면 당신은 “나는 이제 하나님을 위하여 항상 이런 상태가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항상 그런 상태가 머물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순간들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신이 선택한다고 하여 당신이 그러한 순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예외적인 영감의 최고 상태에만 머물려고 하면 당신은 하나님께 견딜 수 없는 귀찮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의식할 수 있는 예외적인 영감을 계속 주시지 않으면 당신은 결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외적인 최고의 영감의 순간들을 우상으로 만든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멀어지실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당신에게 맡겨 놓으신 가장 가까운 책임을 행할 때까지, 또한 주께서 허락하신 예외적인 드문 순간들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실 것입니다. 4월 25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Ready in Season” “Ready in Season” By Oswald Chambers B...

4월 24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영적 성공을 원하는 위험(The Warning Against Desiring Spiritual Spiritual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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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4일 영적 방종에 대한 경고 눅 10:20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에게는 세속이나 죄가 올무가 아니라 영적 방종이 올무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종교적 유행이나 흐름을 취하여 영적 성공에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공적인 사역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 한가지로만 기뻐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업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는가를 계산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잘된다고 흥겨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가 기초를 놓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기 보다 그들을 제자화 하여야 합니다. 구원과 죄씻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입니다. 주의 제자로서 우리의 사역은 사람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할 때까지 그들의 삶을 제자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드려진 한 사람의 영혼이 주의 영으로 단순히 각성된 수백의 영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영적으로 우리와 같은 자들을 재생산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사역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로 우리를 표준적인 삶으로 이끄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 똑 같은 그 표준을 재생산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역자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취어진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그는 주의 영이 함께 하는 제자가 되는 대신에 잔소리 많은 독재자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독재자들입니다. 각각의 개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공동체에서도 명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명령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 주께서 제자도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마다 주님은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