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년 7월 1일, 존 브래드퍼드(John Bradford, 1510–1555) 순교

7월 1일 “존 브래드퍼드, 영국이여! 너의 죄를 회개하라.”

오늘은 존 브래드퍼드(John Bradford, 1510–1555)가 화형당한 날입니다. 1555년 7월 1일, 순교자 브래드퍼드는 불꽃 속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에서 태어난 브래드퍼드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세인트 폴 교회의 교역자로 섬기던 중 구속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소동을 진압하기 위해 허락 없이 주교의 자리에서 설교한 것이 그의 죄였습니다. 당시는 메리 여왕이 로마 가톨릭 복귀 정책을 펴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오후 간수의 아내가 그에게 와서 매우 고통스러워하면서 말했다. “오, 브래드퍼드씨, 나는 당신에게 무서운 소식을 전하려고 왔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물었다. “내일 당신은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당신을 묶을 쇠사슬이 준비되고 있으니 당신은 곧 뉴게이트로 가야 할 것입니다.” 브래드퍼드는 모자를 벗고 두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서 외쳤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언제나 그에게 보여준 친절함에 대해서 감사를 한 뒤에 자기 방으로 가서 얼마동안 혼자 기도했다. 한밤중에 그는 뉴게이트로 옮겨졌고 다음날 아침 그는 무장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송되어 스미스필드로 갔다. 거기서 그는 겨우 20세 된 청년과 함께 산 채로 불에 타는 고통을 당했다. 그는 생명이 남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그의 구세주를 위해 죽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을 기뻐했다.[Marie Gentert King, ed., Foxe’s Book of Martyrs, 양은순 역, 『기독교 순교사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256.]

순교와 화형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게 했느냐는 사실입니다. 브래드퍼드는 사형 선고를 언도받을 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같은 이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을 사람으로 여겨주신 것에 감격한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하루에 두 번씩 설교했습니다. 죽음의 실존 앞에서 위선을 떨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브래드퍼드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그를 사랑하셨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브래드퍼드는 갈대 한 묶음을 집어 입을 맞춘 후 화형주에도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화형주에 몸을 묶게 한 후 두 손을 들고 외쳤다. “오, 영국이여, 영국이여! 너의 죄를 회개하라. 너의 죄를 회개하라. 우상 숭배의 죄를 깨달을지어다. 적그리스도들의 실체를 깨달으라. 그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깨어 있으라.” 주장관은 말을 멈추지 않으면 두 손을 묶겠다고 위협하며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그는 군중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젊은 리프를 격려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이 좋은 위로가 될 걸세. 형제여, 우리는 오늘 밤 주님과 함께 기쁨의 만찬을 들게 될 거야.” 브래드퍼드가 갈대를 품에 안았을 때 군중이 들은 마지막 말은 이것이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Andrew Atherstone, The Martyrs of Mary Tudor, 송용자 역 『순교자들과 떠나는 여행』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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