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5년 3월 30일, 로버트 퍼라르(Robert Ferrar) 순교
3월 30일 “로버트 퍼라르(Robert Ferrar)”
오늘은 로버트 퍼라르(Robert Ferrar)가 순교한 날입니다. 1555년 3월 30일, 퍼라르는 “피의 메리(Bloody Mary)” 여왕의 통치 기간 중 화형 당했습니다. 그는 헨리 8세가 1539년에 제정한 “6개 조항법(Act of six articles)”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되었습니다. 6개 조항법은 영국 교회의 로마가톨릭적 신학을 반영하는 법률로서 목회자의 독신생활, 화체설, 일종성찬(성찬시 떡만 받음), 고해성사, 라틴어 예배 등을 강요했습니다. 퍼라르는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물려받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가톨릭적인 우상숭배 타파와 종교개혁 신앙의 교리들을 보급하는데 앞장섰지만, 그의 열정은 대적자들의 반대를 일으켰습니다. 퍼라르가 구류(拘留)되어 있는 동안 메리 1세에게로 통치권이 넘어갔고, 그녀는 로마 가톨릭 복권정책을 폈습니다. 이 훌륭하고 학식 높은 고위 성직자는 에드워드 왕의 치하에서 호민관에 의해 주교직으로 승진되었다. 그러나 그를 옹호해 주는 귀족이 몰락한 이후 그도 역시 그의 적들의 악의와 거짓 고소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의 적 가운데는 그의 하인이었던 조지 콘스탄틴도 있었다. 그는 그가 교회 행정부를 무시하고 불순종했다는 56개 항목으로 된 고소문에 대해 답변했고 부인했다. 그러나 그의 적들이 너무나 많았고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제 그는 다른 죄목으로 핍박을 받았다-교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2월 4일 영광스러운 순교자 후퍼와 로저스, 브래드퍼드, 손더스와 함께 불려나가 그들과 함께 정죄되었다. 그러나 틈이 없어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 그는 감옥에 남아 있게 되었고 거기서 2월 14일까지 있었다.[Marie Gentert King ed,, Foxe’s Book of Martyrs, 양은순 역, 『기독교 순교사화』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9), 249.] 이단자로 정죄된 퍼라르는 타오르는 불 속에서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진리를 부인하고 굴욕적으로 사는 것보다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한 순교자의 인내 앞에서 나의 믿음을 점검해 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신앙 까닭에 핍박받는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숨을 내어걸고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이들은 퍼라르와 함께 나와 같은 보편교회의 신자들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없다 하여도 순교자의 신앙 따라 범사에 인내하게 하소서. 퍼라르 박사는 유죄 판결을 받고 직위 해제된 후 곧 카마덴(Carmathen)의 처형장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 장터의 남쪽에서……불길의 고통을 끝까지 견뎌내었다. 퍼라르의 불변함에 대해 한 기사(knight)의 아들인 리처드 존스(Richard Jones)가 증언하였다. 리처드 존스는 퍼라르가 죽기 전에 그의 앞에 다가갔는데, 퍼라르가 자신이 당해야 할 죽음의 고통을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교는 만일 자기가 불타는 고통 속에서 퍼라르가 한 번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본다면 퍼라르의 교리에 대해 신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주교의 말에 퍼라르는 자신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었다. 그는 요동하지 않고 인내하며 서 있었고, 결국 리처드 그라벨(Richard Gravell)이라는 사람이 와서 퍼라르를 때려 눕혀 버렸다.[Amos Blanchard, Book of martyrs, or, A history of the lives, sufferings and triumphant deaths of the primitive and Protestant martyrs, from the introduction of Christianity, to the latest periods of pagan, popish, Protestant, and infidel persecutions, 232-33.]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