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6년 3월 31일,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가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독려하다.

 3월 31일 “제2차 십자군 원정”

오늘은 클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가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독려한 날입니다. 1146년 3월 31일, 프랑스 왕 루이 7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버나드는 베즐레(Vézelay) 평원에서 십자군 모집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1147년부터 1148년까지 진행된 두 번째 십자가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군인들은 첫 번째 원정 때에 비해 종교적 열정이 식어 있었고, 바다에서의 파선으로 병력도 많이 약해져 있었습니다. 8차까지 이어진 원정은 1291년에 그 막을 내렸습니다.

제2차 십자군 원정의 동기가 되었던 것은 1144년 알레포(Aleppo)의 술탄(sultan)에 의한 에데사의 함락이었다.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설교가들은 일반 신자들의 성지 탈환을 촉구하였다. 어떤 이들은 원정 도중 유대인들도 진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클레르보의 버나드의 설교는 이들과 매우 달랐다. 그는 예루살렘 왕국의 구원을 위한 정규군의 조직을 촉구했으며, 아무런 준비 없이 무턱대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갈 것을 주장하는 감정적 설교가들을 반박하였다.[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서영일 역, 『중세교회사』 (서울: 은성, 2007), 122.]

십자군 원정의 중심에는 잘못된 신학과 야욕이 있었습니다. 교황은 오리겐의 신학을 차용하여 성지탈환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하면 죄가 사하여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통하여 동방교회까지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릇된 가르침은 오류에 빠진 사람들을 더 큰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교회의 역사에서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음을 인정합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감동받고 설득된 것이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점검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게 하소서(살전 5:21).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성숙한 신자들을 일으켜주소서. 내가 선 이곳이 성지(聖地)임을 깨닫게 하소서.

2세기에 걸쳤던 십자군 원정 사건의 장기적 결과들은 그다지 인상적인 것들이 되지 못한다. 만약 원정의 주요 목표들이 성지를 회복하고, 이슬람교의 파급을 방지하고, 동서방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었다면 십자군 원정은 참담하게 실패한 사건이다……아마도 십자군 원정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교황청의 권위가 이 때문에 더욱 높아졌다는 점일 것이다……이 시대 전체를 두고 계속 새로운 원정을 일으키도록 영감을 제공한 인물들은 다름 아닌 교황들이었다. 황제가 아닌 교황들이 이슬람에 대항하여 기독교권을 통일시켰던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교황들은 우리들이 익히 깨닫고 있는 두 가지 기본적 진리들을 소유하지 못하였다. 즉,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만족은 어느 특별한 지리적 장소를 확보함으로써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칼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확장시키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명백한 진리이다. 이러한 무지의 약점은 결국 전체 구조의 종교적 몰락을 초래하게 되었다.[Bruce L. Shelly, Church History In Plain Language, 박희석 역,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2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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