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욥기 3장 “삶을 저주하고 싶을 때”

3월 29일 욥기 3장 “삶을 저주하고 싶을 때”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욥기 3:11)

욥은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집과 재산, 아들과 딸을 잃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두 번이나 “내 종”이라고 부르시며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 욥이 침묵을 깨고 내뱉은 말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신자의 가장 무서운 대적 중 하나는 “낙심(落心)”입니다. 지금 욥은 이 낙심이라는 감옥에 갇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욥이 알고 있었던 선하신 하나님과 자비로우신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이 고통의 시간이 잘 조화되지 않기에 죽음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음 이후에 고통의 옷을 벗고 안식의 땅에서 주님과 복된 교제를 누린다는 것을 욥은 알고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신자가 죽음으로부터 얻는 유익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37문.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리스도로부터 받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그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그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 그들의 육체는 여전히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부활 때까지 무덤에서 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은 완전한 안식에 들어갈 때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뤄져야하고,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아프리카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과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Charles Spurgeon)이 “나(우리)는 사명을 이룰 때까지 죽지 않는다(I am immortal till my work is accomplished).”라고 말한 것은 실로 옳습니다. 대적들이 주 예수님을 죽이려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주님의 생명은 십자가 처형 전까지 보존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을 저주하고 싶을 때 기억합시다. 침묵 중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주의 뜻의 이루어질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주여, 눈물의 형제들을 위로해 주소서.

우리의 신앙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인격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성숙합니다. 신앙생활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눈물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애통을 무조건 싫은 것으로, 두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탄식’이라는 말을 사용해 신앙생활을 정의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3)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날마다 탄식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썩을 몸을 빨리 벗어 버리고 예수가 부활하셔서 입으신 그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그 날, 양자 될 그 날, 우리 몸이 구속받을 그날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탄식입니다……“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 5:2). 신앙생활의 밑바닥에는 눈물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애통을 모르는 신앙은 천박한 신앙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예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옥한흠, 『빈 마음 가득한 행복』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1),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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