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2월 5일, 드와이트 무디(D. L. Moody, 1837-99) 출생, "나의 부족함은 주님 앞에서 어떠한 핑계도 될 수 없습니다."
2월 5일 무디, 태어나다
오늘은 드와이트 무디가 태어난 날입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많이 올 수 있도록 미국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부흥사입니다. 1837년 2월 5일, 드와이트 무디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습니다.
드와이트 무디(D. L. Moody, 1837-99)는 그의 시대의 가장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의 시작은 유망한 출발이 아니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노스필드에서 유니테리언 가정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죽었고, 가정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채 무디는 보스턴에 있는 그의 삼촌의 양화점에서 일하려고 17세에 집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그의 주일학교 교사 에드워즈 킴블(Edward Kimble)의 도움을 통해서 회심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마운트 버논 회중교회의 회원이 되려는 그의 요청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무지 때문에 1년간 거절당하였다.[Lion Publishing, The History of Christianity, 송광택 역,『교회사 핸드북』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9[1977]), 536.]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왕성한 주일학교 사역을 벌여 큰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무디는 더럽고, 관심 받지 못하며, 무식한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이크 시스템이 없는 그 시절, 육성으로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디는 찬양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아이라 생키라는 훌륭한 복음 가수와 동역했습니다. 생키는 “양 아흔 아홉 마리는”,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등 우리에게 친숙한 찬송을 많이 작곡하여 보급했습니다. 무디는 결코 세련된 설교자가 아니었으나, 2개의 학교를 세우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선교지로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빚진 자입니다. 신앙의 인물들을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나의 부족함은 주님 앞에서 어떠한 핑계도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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