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누가복음 21장 “인내를 가르치소서.”

2월 25일 누가복음 21장 “인내를 가르치소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누가복음 21:19)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성전이 무너질 것인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입니다.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지막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든 고통이 종식되는 그 날을 성도는 고대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마지막 날을 두려워합니다. 그날에 악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말을 찾으러 허둥지둥할 것입니다. 저들의 모든 불경건이 드러날 것이며, 공의로운 재판장이 합당하게 그들을 판결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의 날을 앞둔 성도들에게는 잠시 잠깐의 고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누가복음 21:12)

예수께서는 이러한 군급(窘急)한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친히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자유로운 사역자들이 자신의 소홀한 준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로 견디는 자에게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명석하게 하시어 허둥대지 않게 해 주십니다. 성도는 인내하는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빛과 달콤한 향기를 발합니다. 예수께서는 인내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인내가 구원을 얻는 수단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는 인내의 힘을 공급받습니다. 신자는 구원의 확신 속에 끝까지 견딜 수 있습니다. 박해의 시기 속에 성도의 위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눅 21:36). 인내를 훈련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열매있는 진실한 종들은 인내의 사람이었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바울의 전기(傳記)를 기록하면서 그 첫 말에, “바울은 인내의 사람이라”하였고, 그 결말도 “바울은 인내의 사람이라” 하였다.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인내는 모든 덕의 항구(港口)라”고 하였다. 과연 인내는 모든 덕의 어미라고도 할 수 있다. 인내하여야 모든 선한 행실을 산출할 수 있다.[박윤선, 『성경주석: 공관복음』 (서울: 영음사, 1983), 254.]

현재의 작은 일을 참아내지 못하고 어찌 종말의 큰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성도는 부지런히 모든 기회를 활용하여 이를 훈련해야 하겠습니다. 신사참배 반대자 안이숙 선생은 감옥생활을 대비하여 상한 사과를 먹고, 추위를 견디며, 수일을 금식하기도 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기독교를 소비하는 사람에게 인내는 달갑지 않은 말입니다. 인내를 훈련하지 않는 자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집니다. 그는 주님께 상을 기대할 수 없는 불쌍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좁고 협착한 길을 걷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 천막을 치고 유숙하는 아브라함과 같을지라도 주께서 오늘도 은혜 주시니 찬송하며 갈 수 있습니다. 주여, 안주함을 버리게 하소서. 연약한 제게 인내를 가르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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