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누가복음 23장 “십자가형을 외치는 무리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2월 27일 누가복음 23장 “십자가형을 외치는 무리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누가복음 23:11)
간밤에 불공정한 재판에 끌려다니신 예수님은 목마르고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쳤으며, 손바닥으로 때렸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명절에 시행하는 특사(特赦)제도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재판을 지켜보는 민중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며칠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연호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피에 굶주려 있습니다. 민중들은 살인자요 강도인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결국 그들의 목소리가 이겼습니다. 빌라도는 끝까지 소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사형선고 속에서 주님은 침묵을 지키십니다. 자발적으로 죽음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2:23)
(1) 바라바는 강도였다. 그는 폭력으로 궁핍한 자들의 양식을 빼앗는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궁핍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양식을 먹이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었다. (2) 바라바는 강도였다.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아 상하게 하고 물건을 빼앗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강도를 만나 다친 자를 고치고 상처를 싸매 주며 포도주와 기름을 부어 주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3) 바라바는 살인자였다. 그는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는 구주였다. (4) 바라바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소요를 일으키는 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충실하게 세를 내는 분이었다……(5) 바라바는 피의 보복자였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온유하고 잠잠한 심령을 지닌 분이었다. 피땀을 흘리고 결박당하며 매를 맞고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몸에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구속자셨다.[Isaac Ambrose, Looking unto Jesus, 송용자 역, 『예수를 바라보라 2』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33.]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두 번이나 소리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주님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사형 당해야할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증오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신성 모독죄로 주님을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문제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빌라도에게까지 올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돌을 들어 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요? 그들은 잔인한 죽음을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죄인들의 잔혹한 요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피 흘리심을 생각할 때 슬픔을 느끼십니까? 어느 한 순간도 십자가를 냉담한 심정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처형을 외치는 유대인들의 무리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그런 나를 위해 흘리신 보혈을 잊지 않게 하소서. 감당할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히게 하소서.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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