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8년 11월 30일, 요아힘 펠러(Joachim Feller, 1638-1691) 출생,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11월 30일 “요아힘 펠러, 경건주의자란 말씀을 배우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자들입니다.”
오늘은 요아힘 펠러(Joachim Feller, 1638-1691)가 태어난 날입니다. 1638년 11월 30일, 펠러는 독일의 츠비카우(Zwickau)에서 출생했습니다. 라이프치히(Leipzig) 대학의 수사학 교수였던 그는 “경건주의자”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이들 중 한 사람입니다. 펠러는 독일 루터교 진영에서 경건주의 운동을 벌였던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의 동료였습니다. 펠러는 경건주의자였던 한 신학생의 장례를 위해 시를 한 편 지었습니다. 그는 이 시에서 경건주의자를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당시의 분위기를 뒤엎는 발언이었습니다.
경건주의자들 – 이 이름은 지금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경건주의자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한 삶을 영위하는 자들입니다……
경건은 마음에 깃들이는 것이 우선입니다.[Carter Lindberg ed., The Pietist Theologians, 이은재 역, 『경건주의 신학과 신학자들』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9), 31.]
당시는 경건주의자가 조롱받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펠러는 경건주의자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건주의자를 무조건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배경에서 이런 운동이 태동하게 되었는지 유심히 살피고, 그것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경건주의자들은 분파를 형성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믿음과 실천을 강조했음을 염두에 둡시다. 경건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성경 연구를 결코 도외시하지 않았으며, 지나친 주관주의에도 빠지지 않았음을 기억해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교리교육과 삶의 실천(lebens praxis)은 함께 가야 합니다. 균형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 경건성의 추구와 교회 개혁운동으로서 경건주의의 신학과 교회에 대한 역사적 공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하다. 또한 경건주의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운동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 의의를 나열할 때 성직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함께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경건 모임을 중심으로 한 교우운동(평신도운동)을 이루었고, 그 어떠한 것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만이 교회를 새롭게 함을 확고히 인식하는 성경운동을 이끌었고, 신앙과 삶을 이원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실생활에서 마땅히 나타내주는 문화 변혁적 사명감에서 복음적 사회사업을 힘 있게 추진하였다. 즉 양로원, 빈민원, 고아원, 학교, 병원 등을 운영하였고, 현대적 선교가 세계 최초의 성서 공회인 ‘칸슈타인 성서공회’(1710)의 설립과 함께 열정으로 복음전도를 시행하였으며, 냉철한 머리와 함께 뜨거운 마음의 신앙의 조화를 강조하였고, 여기서 나타나는 경건주의 찬양운동은 교회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특히 개혁 교회의 찬송 역사에서 새로운 장을 열게 하였다. 게다가……참된 신앙과 경건을 주제로 한 경건 서적 운동을 모든 성도들의 삶 가운데 기꺼이 구현하였다.[주도홍, 『개혁교회 경건주의』 (서울: 대서, 201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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