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8장 [새번역] Book of Ezekiel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
1. 표제
히브리어로는 이 책이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실 자”라는 의미를 가진 그 저자의 이름 그대로 에스겔(Yechezgel)로 명명되었다. 여러 다른 옛 성현들의 이름같이, 이 이름도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생애와 사업에 퍽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흠정역(KJV)에서는 이 책이 네 큰 선지자들의 기록들 가운데 세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에스겔서는 에스겔과 동시대의 두 위대한 인물들의 책 사이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 정확한 연대적 위치는 틀림이 없다. 이들 중 예레미야는 오래 전에 그의 예언을 시작하였고, 다니엘은 오랜 후에 그의 예언들을 계속하였다.
2. 저자
근년에 이르기까지 에스겔서의 신빙성과 정경성은 심각하게 공격을 받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비평적 학파들과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학자들은, 에스겔 자신이 현재 그의 이름으로 된 예언적인 기록들의 편집 저자라고 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선지자의 개인적인 내력에 관해서는 이 책 자체로부터나 저자가 살던 당시 환경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구약의 다른 어떤 책에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계시록에 그의 비유적 표현에 대한 많은 암시들이 있기는 하지만 신약에서도 그의 글은 한번도 직접 인용되지 않았다(혹 고후 6:17을 제외하면). 성경 이외에서 그는 단지 요세푸스(고대의 x. 5.1; 6.3; 7.2; 8.2)와 시락(Sirach)의 아들 예수에 의해 언급되었는데(외경, 집회서 49:8), 두 부분이 모두 어떤 중요한 항목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에스겔은 자신을 “부시의 아들 제사장”이라 부른다(겔 1:3). 부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에스겔이 여호야긴의 포로시(597 B.C., 겔 1:2)에 잡혀간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들”(왕하 24:14)중에 포함되었던 사실은 그가 예루살렘의 귀족 중 한 사람이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에스겔이 포로 신세가 되었을 때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에스겔 1:1의 “제삼십년”은 그의 생애의 30번째에 해당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 가정에 의하면 그가 유배되었을 때는 25세였을 것이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 선지자는 당시 한 청년이었다(고대의 x. 6.3). 그 당시 그가 최소한 꽤 젊었음이 틀림없다고 하는 것은 그의 예언 중 하나가 그로부터 27년 후인 B.C. 570년, 혹은 571년(겔 29:17)의 것인 사실에 의해 입증되었으며, 그는 분명히 그의 직분을 좀 더 오랫동안 수행하였다.
결혼을 하지 않고 지냈던 예레미야(렘 16:2)와는 달리 에스겔은 그의 눈에 기뻐하는(겔 24:16) 한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포로 9년째 되던 해에 갑자기 죽었으며(겔 24:1; 1:2) 에스겔은 그 선지자직에 따르는 커다란 시련들을 홀로 감당하도록 남겨진 바 되었다.
3. 역사적 배경
에스겔은 B.C. 593/592년 여호야긴의 사로잡힌 지 5년째 되던 해(겔 1:2)에 그의 예언을 시작하였다. 북방 이스라엘 왕국은 100여년 전에 소멸되었으며, 유다의 멸망은 급속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벨론의 예속은 여호야긴의 위에 있은지 3년(605 B.C.),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단 1:1) 이미 시작되었었다. 이때에 얼마나 포로들이 잡혀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단 1:3; 왕하 24:1) 몇 사람이 있었다.
여호야김은 그의 통치 11년 만에 불명예스러운 종말을 고하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에 의해 그 위가 계승되었다(597 B.C. 왕하 24:1). 불과 3개월의 통치 후 여호야긴은 에스겔을 포함하는 1만명의 방백들과 더불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24:12-16; 겔 1:1, 2; 33:21).
여호야긴의 후계자 시드기야는 그의 선조들 보다 조금도 낫지 않았다. 그의 통치 11년째 되던 해(586 B.C.)에 유다의 마지막 멸망이 이르렀다(왕하 25:1-11). 남아있던 백성들이 잡혀갔으며, 성전은 불살라졌고 예루살렘은 파괴되었다. “그 땅의 빈천한 국민들” 소수만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로 남겨진 바 되었다(왕하 25:12).
아직 청년이었던 에스겔이 선지자직에 부르심을 받은 때는 그렇게 소란스러운 시기였다. 전망은 몹시도 암담했다. 이미 예루살렘에 내려진 심판의 타격은 유다의 거민들을 근실하게 하는 대신 저들을 더욱 깊은 배도와 타락으로 빠져들게 할 뿐인 것처럼 보였다. 그발(Chebar) 강가의 유랑자들에게는 “징계”에 의한 “연달”(練達)이(히 12:11) 허용되지 않았다. 저들은 반역과 우상 숭배를 계속하였으며(겔 2:3; 20:39), 철저한 개혁에 대한 의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4. 주제
에스겔서의 기별들은 바벨론 포로의 쓰라린 경험 중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여러 세기에 걸쳐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게 권면도 하고 경고도 하였지만, 그 국가는 더욱 깊은 배도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저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공과를 가르치고 그와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택한 백성들이 한 국가로서 저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들을 결코 성취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번영의 시기 동안의 배우기를 거부했던 교훈들을 역경 가운데서 배우도록 허락하셨다.
이상한 말이지만, 솔선수범하여 그 나라를 배교하도록 이끈 것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다(사 3:12; 9:16; 겔 34:2-19). 처음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들만 포로로 잡혀갈 것을 목적하셨다(단 1:3, 4). 대다수의 백성들은 징벌을 받은 지도자들의 무리가 하나님의 택하시는 방법대로 저들을 인도하기 위해 돌아올 것을 기다리며 유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렘 27:1-22) 느브갓네살에게 즐겨 복종했다면, 예루살렘 도성과 그 장려한 성전은 그대로 보존되었을 것이며(렘 17:25, 27; 38:17), 포로들이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함에 있어 직면한 100여년간의 지체와 고난과 실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완고한 저항(렘 28:1-14)은 저들의 잔을 점차적으로 더욱 쓰게 만들었으며 제2차, 3차의 유배를 초래하였다(2차: 597 B.C., 3차:586 B.C.). “나무 멍에”가 “쇠 멍에”로 대체된 것이다(렘 28:13, 14).
그러나 포로 생활 중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는 자비와 함께 조화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징벌하시고자 하는 엄격한 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불순종의 어리석음과 그분과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하는 교사로서 그 백성들에게 임하셨다. 포로 생활의 쓰라린 경험들은 본질상 저들이 치료된 것만큼 보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은 인간들에게 하늘의 목적을 제시하고 그것과의 협력을 불러 일으키도록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바 되었고, 동시에 에스겔은 이미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위하여 같은 사명을 수행하였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그의 협력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느브갓네살의 궁정에 보내진 하늘의 대사였다. 고난의 불꽃은 그 불순물을 제거하기에 필요한 것보다 더 뜨겁게 타지는 않을 것이었다. 포로 생활에 관련된 다니엘의 역할에 대한 세부적인 고찰을 위해서는 다니엘서의 서론을 보라.
에스겔서는 두 개의 뚜렷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부분인 1:1-33:20에는 대개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이전 바벨론 근처 그발 강가에 있는 포로들에게 에스겔이 전한 기별들이 기록되어 있다. 둘째 부분인 33:21-48:35은 포로 생활로부터의 회복을 기대하며 소망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에스겔을 통하여 포로 중에 있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마침내는 받아들이도록 강력하게 호소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그러한 호소를 위한 기회는 새로운 역사적 발전 과정들에 비추어 보아 특별히 적절하였다. 이 책의 방식은 독특한 복음적 문체를 나타내고 있다. 약간의 기별들은 그 백성들의 죄악을 폭로하는데 바쳐졌다. 그 목적은 이중적인데, 첫째는 그 백성들을 진실한 회개의 경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새 언약 가운데 약속된 장래의 순종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지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부패한 제사장들과 거짓 선지자들, 그리고 배교한 지도자들의 그릇된 교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 백성들에 대한 당신의 목적에 대해서 엄청나게 왜곡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에스겔은 이 잘못된 인상을 바로잡기 위해 힘썼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되는 개혁을 성취시키고 또 그 백성들이 저들의 고귀한 섭리를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힘이 되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정배(定配)에 순응하고 포로됨을 저항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능력에 의지하는 그릇된 희망을 단념하라고 간청하였다. 그는 그 포로 생활을 허용하므로 저들에게 임하는 유익한 결과를 얻도록 그들을 설득했다. 그는 그 조건들을 용납하는 결과로 뒤따르는 장래의 영광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를 반복하는 것으로 그의 호소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스라엘이 그 예언자의 감동적인 탄원에 유의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5. 개요
에스겔의 예언들은 적절히 연구된 방식을 따라 기록되었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두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처음 서른 세장은 주로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전해진 예언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나중 열 다섯장은 멸망 후에 전해진 것들이다. 제1부는 순서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데, 1-24장은 포로 생활과 관련된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리고 25:1-32:32은 주변 나라들에 대한 심판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다.
에스겔의 예언들에 있어 또 다른 흥미로운 특색으로는 그것들의 일자 기입이 정확하게 돼 있는 것이다. 개요 끝에 나오는 에스겔 연대표는 그 선지자가 제시한 연대순으로 된 일자들을 가지고 거의 도표를 작성할 수 있으리만큼 책의 여러 부분들에 대한 날짜들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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