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10월 31일,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 사망
10월 31일 “찰스 테이즈 러셀, 여호와의 증인, 옷만 갈아입은 아리우스주의”
오늘은 찰스 테이즈 러셀(Charles Taze Russell, 1852–1916)이 사망한 날입니다. 1916년 10월 31일, 러셀은 미국 텍사스 주 팜파(Pampa) 근처 기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는 1870년대에 펜실베이니아 서부지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옥형벌과 영혼의 불멸 등을 거부했던 러셀은 주후 1세기부터 복음이 교회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천사장 미가엘로, 성령님을 여호와의 우주적 힘에 더 가까운 그 무엇으로 주장하며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새로운 종파는 성경 공부에서 시작하여 탄생했다. 장로교회 회중교회 출신의 성공한 의류업자 찰스 러셀은 윌리엄 밀러 계열의 재림신앙에 이끌려 몇몇 사람들과 함께 분석적인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역사적 기독교 신조에는 많은 오류가 있으며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밀러의 추종자였던 넬슨 바버(Nelson Homer Barbour)의 영향을 받고, 재림한 예수가 진정한 신자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 맞이하는 휴거(携擧, Rapture)가 1878년 4월에 일어날 것으로 확신했다. 러셀은 많은 사재를 들여 출판과 집회를 통해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휴거는 일어나지 않았고 바버와 갈라서고 말았다. 러셀은 예수의 보이지 않는 재림이 1874년에 있었다고 해석하고, 1881년 ‘성경 학생(Bible Students)’들과 함께 워치 타워 문서협회(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를 설립하고 자신의 신학을 활발하게 전파했다. 러셀과 성경 학생들은 신의 이름으로는 반드시 ‘여호와(Jehovah, 즉 הוהי의 영어 음역)’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다시 번역했다.[류대영, 『미국종교사』 (파주: 청년사, 2007), 348-49.]
비성경적인 종말론에서 시작한 여호와의 증인은 신도들에게 윤리적 삶을 강조하는 반면, 수혈 및 집총 거부 등으로 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그들은 옷을 갈아입었을 뿐인 아리우스주의를 믿고 있습니다. 파수대(Watchtower)와 관련 소책자를 접할 때나 왕국회관(Kingdom Hall)에서 나온 전도자들을 만날 때, 배후에 있는 이단적 가르침을 명심합시다. 아무리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도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교리교육에 힘씁시다. 내가 먼저 배웁시다.
그는 파운드당 1불씩을 받고 밀을 팔았는데 그 밀은 다른 어느 종자보다 5배나 빨리 성장한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브루클린 데일리 이글 지는 그를 조롱하는 만화를 발행했다. 러셀은 명예훼손죄로 그 신문을 고소했는데 결국은 정부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 “기적의 밀”이 보통 종자의 밀보다도 좋지 못함이 발견됨으로써 신문사측이 승소하게 되었다……1912년 6월에 침례교회 로스 목사는 한 책자에서 러셀을 비난했다. 그 즉시 러셀은 로스 목사를 고소했다. 그가 증인대에 섰을 때 그의 거짓말이 탄로났는데 그것은 신약성경의 원어인 희랍어를 아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것이었다. 몇 자 읽어보라고 했을 때 그는 거짓말을 했음을 시인하게 되었다. 그는 안수 받은 목사라고 주장해 왔었으나 후에 그런 사실이 없었음을 시인했다.[Fritz Ridenour, So What’s the Difference?, 김태곤 역, 『무엇이 다른가?』 (서울: 생명의말씀사, 2005), 164-65.]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