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9월 26일,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 1901-1987) 출생

9월 26일 김재준. “학생들이 억울하게 잡혀가서 얻어맞아도 한마디 대변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김재준(金在俊, 1901-1987)이 태어난 날입니다. 1901년 9월 26일, 장공(長空) 김재준은 함경북도 창골(현재의 아오지)에서 출생했습니다.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신학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와 웨스턴신학교에서 수학한 김재준은 조선신학교 설립에 이바지한 학자이자 교역자였습니다. 그는 ‘보수주의적 자유주의자’로 자처하며 생활신앙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박형룡 박사와 성경해석과 성경관의 문제로 대립했으나, 서구적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는 아닙니다. 그의 성경관은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그것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신정통주의자도 아닙니다. 김재준은 바르트와 달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리에서 싹터 생활에서 열매 맺는 신앙, 행함 있는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독실한 교회인의 생활을 보면 매일 가정예배를 보고, 새벽기도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연보도 남하는 것만큼 하고, 아무 파렴치죄를 범하는 일도 없고, 흠 없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일반사회의 되어 가는 일에는 영리하게 적응하는 정도에 머물고 적극적인 참여는 안합니다. 학생들이 억울하게 잡혀가서 병신 될 정도로 얻어맞아도 그 학생을 위하여 한마디 대변도 하지 않습니다. 노무자들이 유례없는 저임금으로 12시간 혹사를 당한다 해도 그 기업주에 대하여 한 번도 충고하지 않습니다. 그건 모두가 자기 본위적이기 때문에 직접 내가 당하지 않는 한 내 알게 뭐냐 하는 교회이기주의, 개인이기주의를 생활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생활양식입니다. 기독교 신자로서의 그는 실질적인 이단자입니다. 영웅은커녕 속인도 못되는 권외인간일 것입니다.[김재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인간의 길』 (서울: 삼민사, 1984), 80.]
김재준이 비판을 받은 것은 그가 고등비평을 활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 기독교를 송두리째 부인했던 사람이 아니었음을 기억합시다. 그를 축출했던 이들이 1970년대 유신독재를 찬양하고 있을 때, 김재준은 이를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대조적인 그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정치와 경제, 문화와 교육 등 삶의 모든 분야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정신을 성육시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김재준은 잊힌 선생입니다. 그의 찬송시 “어둔 밤 마음에 잠겨”의 가사를 묵상하며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으로서 나의 자리와 역할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기 원합니다. 분명 나는 그분과 다른 성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릇된 성경관보다 더 역겹고 무서운 것은, 복스러운 신앙고백 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나의 위선입니다.
1.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었을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빛 삶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2. 옥토에 뿌리는 깊어 하늘로 줄기 가지 솟을 때 가지 잎 억만을 헤어 그 열매 만민이 산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일꾼을 부른다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리 
3. 맑은 샘줄기 용솟아 거치른 땅을 흘러 적실 때 기름진 푸른 벌판이 눈앞에 활짝 트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하늘 새땅아 길이 꺼지지 않는 인류의 횃불 되어 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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