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2년 5월 30일, 토마스 케이스(Thomas Case, 1598–1682) 별세


5월 30일 “토마스 케이스, 감옥에서 누린 달콤한 위로”

오늘은 토마스 케이스(Thomas Case, 1598–1682)가 별세한 날입니다. 1682년 5월 30일, 84세의 수(壽)를 누린 케이스는 이 땅을 떠나 본향에 들어갔습니다. 케이스는 자신을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평가했던 리처드 백스터의 무덤 근처에 묻혔습니다. 옥스퍼드대학의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수학한 케이스는 주일설교 수준 이상의 가르침을 요구하는 친구들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 이른 아침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케이스는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은 거룩하고 칭찬할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사보이 총의에서 활동했습니다.

토마스 케이스는 런던에서 목회하였던 청교도 장로교 목사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회원이었다. 1641년에는 성 메리 막달린(St. Mary Magdalene) 교회의 강사가 되었으며, 1642년에는 그 교회의 교구 목사가 되었다. 케이스는 1649년까지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교회를 강력한 장로교회로 만들었다. 그는 이 교회에 있는 동안 런던 제6노회에 속하였으며, 이곳에서부터 비국교도들을 위한 기도회와 설교를 계속 행하는 “아침기도회”(Morning Exercises)를 시작하였다. “아침기도회”에는 런던 주위의 여러 다양한 비국교도 설교자들이 참석하여 공화국과 여러 사회문제를 열심히 기도하였고 또 “신학 체계”를 위한 설교들이 1690년까지 행하여졌다.[김홍만, 『청교도 열전』 (서울: 솔로몬, 2009), 269.]

케이스는 거짓교리와 우상 숭배적 예배의식을 고수하는 영국국교회를 “큰 성 바벨론”(계18:2)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크롬웰의 치세 기간 중에 6개월 정도 런던탑에 갇혀있었습니다. 찰스 2세를 복위시키려는 장로교도들과 뜻을 모았다는 것이 죄명이었습니다. 케이스는 감옥에서 『고통에 대한 논증』(A Treatise of Affliction)을 집필했습니다. 그는 고통을 통해 완고한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무지와 오류를 깨닫게 되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순종하게 된다고 논증했습니다. 비록 갇힌 공간에서 특별한 은혜를 맛보기는 하였지만, 케이스는 성도들과 주일에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했습니다. 찰스 1세의 처형을 반대했던 케이스는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동시에 외친 비국교도이자, 열린 마음을 가진 청교도였습니다. 감옥에서 주일과 예배당을 그리워했던  케이스를 생각보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와 한주의 첫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고난』은 시편 94편 12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 작품의 주제는 “징벌과 함께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혹은 가르침과 견책은 함께 주어진다. 말씀과 막대기가 어우러져서 온전한 복을 구성하게 된다.”라고 볼 수 있다. 케이스는 런던탑에 갇혀 있는 동안 이 작품을 썼다. 그런 고통의 경험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것이라고 믿으며 강력하게 설교한 내용이라 하겠다. 케이스가 석방된 이후 토머스 맨턴은 이 책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케이스가 감옥에서조차 가졌던 그 위로와 평안을 부러워하고 있다.”[Joel R. Beeke and Randall J. Pederson, Meet the Puritans: With A Guide to Modern Reprints, 이상웅‧이한상 역, 『청교도를 만나다』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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