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테오도라(Theodora of Arta)의 축일
3월 11일 “성상숭배(idolodulia)”
동방정교회에서는 오늘을 테오도라(Theodora of Arta)의 축일로 지킵니다. 동방정교회는 그녀를 성자로 추앙하는데, 3월 11일이 그 기념일입니다. 테오도라는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 미카엘 3세가 황제가 되자 섭정을 하면서 성상(icon)숭배를 회복시켰습니다. 황제의 어머니는 동로마제국황제 레오 5세(Leo V) 때 열린 하기아 소피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성상숭배금지를 뒤엎은 것입니다. 중세스콜라학자들은 성상숭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옹호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Latreia), 성인들과 성상 등에 드리는 것(Duleia),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드리는 것(Hyperdulia)으로 구분하면서, 성상에 예를 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상들의 사용을 다시 허용하고 교회에 평화를 가져온 것은 테오필루스의 미망인이었던 테오도라(Theodora)였다. 성상철폐는 더 이상 종교적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 신자들의 경건성이 그 사용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이는 정치적인 문제였다. 이에 따라 3살 난 아들을 섭정하던 테오도라는 스스로 성상 사용을 원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가 요구하던 바대로 성상숭배를 용인함으로써 교회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논쟁은 끝을 맺었다. 그녀는 회의를 소집하여 존 7세를 폐위시키고, 대신 메소디우스 1세(Methodius Ⅰ, 842-846)를 선출하였다. 이 종교회의는 또한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의 결정사항을 다시 확인하였다.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상들의 사용은 올바르고 정당하며, 예배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까지 정의한 바 있었다. 이는 성상들은 “경배와 존경”을 받기에 족하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완전한 의미의 경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동서양 양교회가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입장이다.[William R. Cannon, History of Christianity of the Middle Ages, 서영일 역, 『중세교회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139.]
목회적 배려라는 이유로 성상을 허용하는 것은 타협에 불과합니다. 유대교와 초대교회에서는 일체의 성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불상에 절하는 불자들은 그것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부처님을 부르며 불상을 찾습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명분은 그럴듯하고 논리도 있어 보이나 제2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주여, 죄인의 교묘한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보이지 않으나 살아계신 하나님만 섬기게 하옵소서.
하지만 성상 사용을 주장하는 쪽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성상 사용을 옹호한 대표적인 신학자가 다마스쿠스의 요한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형체가 없으시며 에두를 것 없고 그릴 수 없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은 미친 짓이며 불경한 짓이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참으로 사람이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사시며 기적을 행하시고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신 일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까막눈이었고 혹 글을 읽을 수 있다 해도 성경 읽을 틈을 쉬이 내지 못했기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성상들로 묘사해서 생생하게 기억나게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다는 겁니다.[임원택,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서울: 기독교연합신문사, 2012), 80.]
동방정교회에서는 오늘을 테오도라(Theodora of Arta)의 축일로 지킵니다. 동방정교회는 그녀를 성자로 추앙하는데, 3월 11일이 그 기념일입니다. 테오도라는 당시 세 살이었던 아들 미카엘 3세가 황제가 되자 섭정을 하면서 성상(icon)숭배를 회복시켰습니다. 황제의 어머니는 동로마제국황제 레오 5세(Leo V) 때 열린 하기아 소피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성상숭배금지를 뒤엎은 것입니다. 중세스콜라학자들은 성상숭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옹호했습니다. 그들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Latreia), 성인들과 성상 등에 드리는 것(Duleia),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드리는 것(Hyperdulia)으로 구분하면서, 성상에 예를 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상들의 사용을 다시 허용하고 교회에 평화를 가져온 것은 테오필루스의 미망인이었던 테오도라(Theodora)였다. 성상철폐는 더 이상 종교적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 신자들의 경건성이 그 사용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이는 정치적인 문제였다. 이에 따라 3살 난 아들을 섭정하던 테오도라는 스스로 성상 사용을 원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가 요구하던 바대로 성상숭배를 용인함으로써 교회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논쟁은 끝을 맺었다. 그녀는 회의를 소집하여 존 7세를 폐위시키고, 대신 메소디우스 1세(Methodius Ⅰ, 842-846)를 선출하였다. 이 종교회의는 또한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의 결정사항을 다시 확인하였다. 제2차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성상들의 사용은 올바르고 정당하며, 예배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까지 정의한 바 있었다. 이는 성상들은 “경배와 존경”을 받기에 족하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완전한 의미의 경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동서양 양교회가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입장이다.[William R. Cannon, History of Christianity of the Middle Ages, 서영일 역, 『중세교회사』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139.]
목회적 배려라는 이유로 성상을 허용하는 것은 타협에 불과합니다. 유대교와 초대교회에서는 일체의 성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불상에 절하는 불자들은 그것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부처님을 부르며 불상을 찾습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명분은 그럴듯하고 논리도 있어 보이나 제2계명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주여, 죄인의 교묘한 마음을 붙들어 주소서. 보이지 않으나 살아계신 하나님만 섬기게 하옵소서.
하지만 성상 사용을 주장하는 쪽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성상 사용을 옹호한 대표적인 신학자가 다마스쿠스의 요한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형체가 없으시며 에두를 것 없고 그릴 수 없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은 미친 짓이며 불경한 짓이라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참으로 사람이 되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사시며 기적을 행하시고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승천하신 일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까막눈이었고 혹 글을 읽을 수 있다 해도 성경 읽을 틈을 쉬이 내지 못했기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성상들로 묘사해서 생생하게 기억나게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다는 겁니다.[임원택,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서울: 기독교연합신문사, 2012),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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