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1:1-7 설교/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로 넘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 가...
다니엘1:1-7
[새번역]
1.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하였다.
2. 주님께서 유다의 여호야김 왕과 하나님의 성전 기물 가운데서 일부를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 주셨다. 그는 그것들을 바빌로니아 땅, 자기가 섬기는 신의 신전으로 가지고 가서 그 신의 보물 창고에 넣어 두었다.
3. 그 때에 왕은 아스부나스 환관장에게 명령하여, 이스라엘 백성, 특히 왕과 귀족의 자손 가운데서,
4. 몸에 흠이 없고, 용모가 잘생기고,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으며, 지식이 있고, 통찰력이 있고, 왕궁에서 왕을 모실 능력이 있는 소년들을 데려오게 하여서, 그들에게 바빌로니아의 언어와 문학을 가르치게 하였다.
5. 또한 왕은 왕궁에서 날마다 일정한 양을 정해서 음식과 포도주를 그들에게 공급하도록 해주면서, 삼 년 동안 교육시킨 뒤에, 왕을 모시도록 하였다.
6. 그들 가운데는 유다 사람인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다.
7. 환관장이 그들에게 이름을 새로 지어 주었는데,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고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고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고 하였다.
[NIV]
1. In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Jehoiakim king of Judah, Nebuchadnezzar king of Babylon came to Jerusalem and besieged it.
2. And the Lord delivered Jehoiakim king of Judah into his hand, along with some of the articles from the temple of God. These he carried off to the temple of his god in Babylonia and put in the treasure house of his god.
3. Then the king ordered Ashpenaz, chief of his court officials, to bring in some of the Israelites from the royal family and the nobility-
4. young men without any physical defect, handsome, showing aptitude for every kind of learning, well informed, quick to understand, and qualified to serve in the king's palace. He was to teach them the language and literature of the Babylonians.
5. The king assigned them a daily amount of food and wine from the king's table. They were to be trained for three years, and after that they were to enter the king's service.
6. Among these were some from Judah: Daniel, Hananiah, Mishael and Azariah.
7. The chief official gave them new names: to Daniel, the name Belteshazzar; to Hananiah, Shadrach; to Mishael, Meshach; and to Azariah, Abednego.
잡혀간 다니엘 (다니엘 1:1-7)
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의 통치 원년에 즉 유다 왕 여호야김 3년에 처음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공략에 성공하였다(1,2절). 그는 예루살렘을 에워쌌다가 곧 정복하고 왕을 생포했으며 자기 마음대로 데려가고 싶은 자는 데려가고 가져가고 싶은 것을 빼앗았으며 여호야김을 여전히 치리자로 남겨놓아 공물을 바치게 하였다. 여호야김은 약 8년간 조공을 바치다가 반역했는데 그것이 그의 최후가 되었다. 물론 이때 예루살렘이 멸망되지도 않았고 포로도 19년 후까지 계속되지만 거개의 해석자들은 바벨론 포수 칠십년을 이때부터 가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니엘은 이 첫 해에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 간을 계속해서 거기에 머물렀다(1:21 참조). 이 기간동안 열방은 느부갓네살과 그 아들과 그 손자까지 삼대를 섬기게 된다(렘 25:11). 그러므로 다니엘 선지 한 사람이 자기 당대에 바벨론 제국의 흥기와 통치와 몰락을 목격한 셈이다. 이야마로 res unius aetatis--즉 단일 시대의 사건이었다. 세상 왕국은 이처럼 단명하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영원하다. 의인은 그들의 뿌리 박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망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욥 5:3; 잠 29:16). 브루톤(Broughton) 선생은 출애굽 이래 하나님의 통치 기간이 비례 관계에 있음을 주목한다. 즉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주까지가 40년이요, 그때부터 땅 분배 기간이 칠 년이며 거기서 사무엘 원년까지가 일곱 희년(Jubilee)이었다. 그리고 예언은 사무엘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 포로기 초년까지가 490년(열 희년)이요, 포로 귀환까지가 70년이며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죽음까지가 또 490년(열 희년) 남짓하고 예루살렘 멸망까지가 40년이라는 것이다.
Ⅱ. 느부갓네살은 이 승전을 활용했다. 그는 성이나 나라를 파괴하지 않고 바벨론에게 화를 당하리라던 첫 번 경고에 부합되는 것만 성취시켰다. 그 재앙의 경고는 히스기야에게 선언되었던 것이다(사 39:6, 7). 그는 바벨론 왕의 사신들에게 자기 보물을 보여 준 때문이다. 그 경고는 보물과 자녀들이 탈취당할 것이며, 그들이 이로써 겸비케 되고 회개하면 바벨론 왕의 권세와 성공도 더 이상 어쩌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보다 작은 심판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보다 큰 심판을 보내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로도 회개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풀무를 일곱 배나 더 뜨겁게 가열시키실 것이다.
1. 그들은 성전 기물 중 "얼마"를 옮겨갔다(2절). 유대인들은 불의를 계속 행하면서도 성전이 자기들을 지켜 줄 것으로 기꺼이 신뢰하였다. 그러나 그 신뢰의 헛됨을 보여 주기 위해 먼저 성전이 약탈된다. 하나님 예배에 사용되던 많은 성기명(聖器皿)들이 바벨론 왕에게 탈취되었고 이들은 매우 값진 기구들이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이들을 전리품으로 자기 신의 묘에 가져갔고 맹목적 신앙심으로 자기 신에게 승전에 대한 찬미을 드렸을 것이다. 이들 기구들을 전적으로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신에게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기구들을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두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신들의 형상들(즉 우상)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 왔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성전 기구들이 다른 신들의 보고로 옮겨지는 것을 묵과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죄로써 성소의 기물을 더럽힐 때 하나님이 심판으로써 그들을 더럽혀 마땅하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미 예언된 대로 아마 유다 왕궁의 보고도 깡그리 약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성전 기구의 탈취만 언급된 것은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되듯 이런 모독이 갈데아인의 불의의 양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5:3). 그러나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이때 약탈된 것은 성전 기구 중 일부였다. 다른 일부는 시험을 위해 남겨진 것이다. 즉 그들이 나머지 일부의 약탈을 방지하기 위해 정당한 방도를 취하는지 않는지를 보시기 위해 남겨 놓으신 것이다(렘 27:18 참조).
2.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젊은이들을 끌어갔다. 그들은 특히 와가나 귀족 출신으로 아름답고 유망하고 준수한 젊은이들을 데려갔다. 이와 같이 아비의 죄악은 자손에게 보응됐다. 느부갓네살이 이들을 끌어간 것은 다음과 같은 동기에서이다.
(1) 자기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전리품으로써 그는 이들을 통해 자기의 승리를 증명시키고 칭송받게 하려고 꾀한 것이다.
(2) 유다에 남아 있는 포로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한 볼모로써 그들의 부모는 자녀들이 보다 잘 대우받도록 하기 위해 잘 처신하려고 할 터였다.
(3) 자기를 섬길 자손으로서. 그는 이들을 데려가서 자기 밑에 등용시킬 인재로 양성하려고 했다. 이것은 위대한 왕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듯 자기 동족보다 이국인(설사 흑인일지라도)의 배종(倍從)을 받고 싶어하는 묘한 허영심에서였거나 아니면 갈데아인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청년만큼 재치있고 씩씩하고 솜씨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재주는 그렇게 많던 민족이 지혜와 은혜는 그토록 적게 가졌다는 것은 수치였다. 다음을 주목하자.
[1] 바벨론 왕이 이 소년들의 선택에 대해 내린 지침(4절). 그들은 신체적으로 흠이 있는 자를 선발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아름답고 잘 생긴 소년들을 골라야 했다. 용모는 재간과 성품의 지표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을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자라야 했다. 기민하고 예리하며 자기 나라와 그때까지 교육받은 학문에 대해 즉시 이지적 대답을 할 수 있는 자라야 했다. 그가 젊은 소년들을 택한 것은 소년이라야 유순하여 길들이기 쉬우며 자기 조국과 동포를 쉽사리 잊어버리고 갈데아인에게 동화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에게 대한 자기 의도와 구상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 왕궁에 모실" 만한 능력을 가진 자라야 했다. 그가 공공 업무에 적합한 후계자들의 양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이 신흥 군주가 품은 정책의 한단면도이자 그의 번영에 대한 길조이기도 했다. 그는 아하수에로왕과 달리 정욕의 충족을 위해 젊은 소년들을 선발하라고 명했다. 지혜로운 자를 등용하는 것은 통치자에게 이익이 된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소년들을 찾아내서 양육하려고 애쓰는 통치자는 현군이다, 공직에 적합한 많은 인물들이 초야에 묻혀서 썩고 있는 반면, 공적에 부적합한 자들이 등용된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다.
[2] 느부갓네살이 이 소년들에게 쏟은 정성은 교육과 부양 두 가지면에서 나타났다.
첫째, 교육면에서는 갈데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이들은 지혜롭고 지식있는 소녀들로 간주되었지만 더 교육을 방아야 했다. 지혜있는 자에게 훈계를 하라. 그러면 그는 학식이 더할 것이다(잠 1:3 이하). 커서 좋은 일을 하려는 자들은 어릴 때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젊은 시절은 학습의 시기이다. 이 때를 놓치면 다시 구제받기 어렵다. 느부갓네살은 당시 갈데아에서 유행되던 마술이나 점술 따위의 불법적 기술을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 만일 그랬다면 다니엘과 그 동반들은 자기 자신을 그런 학문으로 더럽히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는 갈데아 종교를 가르치도록 명령했다는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보건데 이때만 해도 그는 완고한 우상 숭배자가 아니었던 것같다. 사람만 재주있고 충실하고 그가 의도하던 일에 적합하다면 그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다한들 그것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그 나라의 언어, 법, 역사, 철학, 수학, 영온 기술, 전술, 항해술 등 자기 세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학문을 가르쳐야 했다. 훌륭한 청소년 교육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공중에게 대한 진정한 봉사라는 것을 명심하자.
둘째, 부양면에서 그는 이들에게 삼년 동안 음식을 공급했다. 필수품뿐만 아니라 고량 진미도 하사해서 이들의 학구 활동을 격려했다. 그들은 날마다 와의 진미와 왕의 마시는 포두주를 공급받았다(5절). 이것은 느부갓네살의 관용성과 인간미의 본보기였다. 그는 그들이 비록 자기 포로였지만 그들의 출신과 자질, 정신과 재주를 고려하여 귀하게 대접했고 그들의 포로 생활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나 잘 양육받은 그들은 재난을 당하더라도 그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받고 있다. 후한 교육을 시킬 때는 후한 부양도 수반되어야 한다.
Ⅲ. 다니엘과 그 동무들에 대한 세부적 설명. 그들은 "유다 자손" 이었다. 유다 지파는 유다 왕이 속한 지파였다. 이들은 아마 다윗가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다윗가는 그때 수가 굉장히 많았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그 몸에서 날 자녀 중 일부는 잡혀가서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나 시종장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왕하 20:18). 환관장은 다니엘과 그 동무들의 이름을 고쳤다. 이는 한편으로 그들에게 대한 자기 권세와 자기에게 대한 그들의 복종을 나타내기 위해서였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할례시에 받았던 히브리명은 하나님과 관계된 부분 곧 Jah란 말이 들어 있었으니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관이시다. "하나냐는 "주의 은혜," 미사엘은 "강하신 하나님," 아사랴는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 란 뜻이다. 갈데아인들은 이들로 열조의 하나님과 소시의 인도자를 잊도록 만들기 위해 갈데아의 우상 숭배 냄새가 풍기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벨드사살은 "벨(Bel)의 숨긴 보물을 지키는 자" 란 뜻이고 사드락은 갈데아인이 숭배하던, "태양의 영감" 이란 뜻이다. 메삭은 "삭(Shach) 여신에게 속했다" 는 뜻이다. 그들은 삭 여신의 이름으로 비너스(Venus)여신을 숭배했다. 아벳느고는 "밝은 불의 종" 이었으니 그들은 불도 숭배한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이들에게 강제로 열조의 종교를 버리게 하거나 정복자의 종교로 개종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가급적이면 교묘한 방법으로 부지불식간에 열조의 신앙을 약화시키면서 정복자의 종교를 주입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소년들이 얼마나 안락한 대우를 받았는지 주목하자. 그들은 조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있긴 했지만 그들 자신의 장점 때문에 후대를 받고 포로된 땅은 그들의 고국보다 더 편안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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