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 인간들을 위하여 아들을 제물로 삼으실 때 /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음 / 사람...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아들을 제물로 삼으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몸과 마음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제물 되실 때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 가슴은
독생자 주셨건만 인간들 부족하다 원망할 때
얼마나 아프실까 주님의 심령은
자신을 주셨건만 사람들 부인하여 욕할 때


히브리서11:8-10

[현대인의성경]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던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받은 낯선 땅으로 가서 같은 약속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나그네처럼 천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10. 그것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여 세우신 견고한 하늘의 도성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KJV]
8. By faith Abraham, when he was called to go out into a place which he should after receive for an inheritance, obeyed; and he went out, not knowing whither he went.
9. By faith he sojourned in the land of promise, as in a strange country, dwelling in tabernacles with Isaac and Jacob, th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10. For he looked for a city which hath foundations, whose builder and maker is God.

[새번역]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10.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NIV]
8. By faith Abraham, when called to go to a place he would later receive as his inheritance, obeyed and went, even though he did not know where he was going.
9. By faith he made his home in the promised land like a stranger in a foreign country; he lived in tents, as did Isaac and Jacob, who wer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10. For he was looking forward to the city with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Ⅳ. 하나님의 친구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믿음. 이 아브라함은 히브리인들은 자랑으로 여겼고, 또 그들은 그들의 혈통과 특권들을 그로부터 물려받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는 히브리인들을 즐겁게 하고 또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다른 어떤 선진들의 믿음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업적이 위대함을 상론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에 사라의 믿음에 대하여서도 얘기하므로 그녀의 후예들인 히브리 여인들이 계속 잘 해줄 것을 암시하였다. 다음을 유의하자.

Ⅰ. 아브라함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이었다(8절).



(1) 아브라함에 대한 부르심은 시련이 예상되는 부르심이었지만 그 부르심은 그럼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그 부름을 믿고 복종해야 한다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 2,3절에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에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셨다"고 말하였다. 이 부르심은 능력의 부름이었다. 이 부름을 받고 아브라함은 회개하고 자기 부친이 지켜오던 우상 숭배를 떠났던 것이다(창 12:1). 이 부르심은 그의 부친이 하란에서 운명한 후 아브라함에게 재차로 임명하였었다.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자유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악한 사람을 취하시어 가장 선한 사람으로 만드시기로 하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도 오신다는 사실이다.

[3]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하도록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며 인간의 영혼 가운데 영광스러운 일을 수행하신다는 사실이다.

[4]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떠나라고 하실 뿐만 아니라, 죄된 동료를 떠나라고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거기서 떠나도록 명하신다.

[5] 우리는 잘 시작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계속 잘 진행하기 위하여서도 부르심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하늘나라의 가나안에 다다를 때까지 쉴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가라고 명하신 그 땅을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즉 잠시 후 그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는 하늘나라의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이고, 다른 한편 현세에서는 그의 후손들이 지상의 가나안을 유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이 받게 될 유업에로 불러내신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의 부르심을 통해 그가 부르신 자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상속자로 삼으신다.

[2] 이 유업은 그들이 즉시 소유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할 때까지 확실한 것으로 때가 오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었다.

[3] 조상의 믿음이 그의 자손들에게 축복이 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2.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절대적으로 복종하였다. 그러므로,

(1)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8절)"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곳으로 자기를 이끌어 가시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혜야말로 그를 이끄는 가장 훌륭한 인도자라고 믿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자기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우선적인 것임을 믿었다. 절대적인 믿음과 복종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드려야 하는 것이며 그분만이 받으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뜻과 지혜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에 우선권을 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가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안내자만은 안다면 충분히 안심하여도 좋은 것이다.

(2) "믿음으로 저는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였다(9절)." 이러한 행위도 그의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1] 가나안이 약속의 땅으로 불리우게 된 이유. 그 까닭은 그 땅이 오직 약속되었을 뿐 아직 약속 받은 자가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2]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거주한 태도. 그는 상속자나 소유자처럼 그곳에 거한 것이 아니라 나그네처럼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 땅의 옛 거민들을 쫓아내지도 않았으며 또 그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그들에게 전쟁을 도발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나그네처럼 사는 것으로 만족해하였고 옛 주민들이 불친절할 때는 참고 또 그들이 호의를 베풀때는 감사함으로 그 호의를 받았으며 오직 그의 마음을 그의 고향인 하늘의 가나안에만 향하며 살았다.

[3] 아브라함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같은 약속의 후사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 그는 이동식 주택인 장막에서 살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지냈다. 우리 모두도 이 세상을 살 때 이와 같은 태도로 살아야 한다. 아브라함에게는 또한 좋은 반려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그네 상태의 생을 사는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칠십 오세, 야곱이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또 이삭과 야곱은 같은 약속의 후사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이삭에서 갱신되었고(창 26:3) 또 야곱에게도 갱신되었기 때문이다(창 28:13). 모든 성도들은 같은 약속의 상속자들이다. 그 약속은 믿는 자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주 하나님께서 부리실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부모나 자녀가 다같이 하늘의 유업의 후사로서 함께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3. 아브라함의 믿음을 지탱시켜 준 것은 그가 하늘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다(10절)"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하늘나라의 모습, 하늘나라는 도성이다. 그것은 잘 건설되고 또 방어되며 물자가 풍부한 정상적인 사회인 것이다. 또한 그곳은 기초가 든든한 도성이다. 그곳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목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공적과 중보가 거하며 또한 영원하신 계약에 의해 약속된 곳으로 순전하며 그 주민들은 완전한 그러한 도성이다. 또한 이 성을 지으신 이와 다스리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 모델을 고안하시고, 또 그가 그 모델에 따라 그 성을 지으셨다. 그는 또한 그 성으로 들어가는 새롭고 살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는 그 길을 자기 백성들을 위해 열어 놓으셨다. 그는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성을 소유하게 하시고, 그 안에 살도록 하시며, 스스로 그 성의 본체가 되시며 축복이 되셨다.

(2) 아브라함은 이러한 하늘나라의 도성에 대해 응분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도성을 기대하였다. 또한 그는 그러한 하늘의 성이 있을 것을 믿었다. 그는 그곳을 기다렸고 또 기다리는 동안도 믿음에 의해 그 성과 친숙하여졌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되면 그가 정하신 방법에 의해 자기가 그곳에 안전하게 도달하리라는 즐거운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6월 20일 (화) / 미얀마 - 작년에 신앙 때문에 집이나 나라에서 쫓겨난 기독교인의 거의 80%가 미얀마 출신이었습니다(110,000명). 많은 사람들이 숲과 정글에서 살아야 합니다. 실향민 각자가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임재와 평안을 경험하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나이지리아 - 납치될까 두려워하는 여성과 어린이들을 보호하시고 평안 주시기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찬양: 너 시험을 당해 [우리 구주의 힘과 그의 위로를 빌라 주님 네 편에 서서 항상 도우시리] Yield not to tempt...

주의 곁에 있을 때/주여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빠른 세상 살 동안 주여 인도하소서/Savior lead me lest I stra...

1912년 1월 30일, 프란시스 쉐이퍼(혹은 쉐퍼, Francis August Schaeffer) 출생, "전제가 다른 이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