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나는 보기 원하네 하나님의 어린 양 /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 나를 구원하신 분 영원한 목자 되신 분 ...
1. 나는 보기 원하네 하나님의 어린 양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나를 구원하신 분 영원한 목자 되신 분
시온산 위에 있는 어린양 그분을 보기 원하네
2. 나는 보기 원하네 흰옷 입은 사람들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사람들
나의 영원한 소원 있네 그분을 따라가는 것
흰옷 입은 사람들 그들과 나는 있기 원하네
3. 나는 보기 원하네 주의 능력의 날을
거룩한 옷을 입고 기쁨으로 주께 달려나가는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 그들을 보기 원하네
시온산 위에 있는 사람들 나는 보기 원하네
히브리서13:9-14
[새번역]
9.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마십시오. 음식 규정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튼튼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음식 규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은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10. 우리에게는 한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에 놓은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11. 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제물로 드리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고, 그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워버립니다.
12.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3. 그러하므로 우리도 진영 밖으로 나가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가 겪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
14. 사실, 우리에게는 이 땅 위에 영원한 도시가 없고, 우리는 장차 올 도시를 찾고 있습니다.
[NASB]
9. Do not be carried away by varied and strange teachings; for it is good for the heart to be strengthened by grace, not by foods, through which those who were so occupied were not benefited.
10. We have an altar from which those who serve the tabernacle have no right to eat.
11. For the bodies of those animals whose blood is brought into the holy place by the high priest as an offering for sin, are burned outside the camp.
12. Therefore Jesus also, that He might sanctify the people through His own blood, suffered outside the gate.
13. So, let us go out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His reproach.
14. For here we do not have a lasting city, but we are seeking the city which is to come.
7월 24일 (월) / 중앙아시아 - 오픈도어 파트너들은 일년에 4회 정도 청각장애인 자녀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 아이들은 사회, 심지어 교회에서도 소외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 행사에서는 아이들을 기도회로 초대했는데 45명이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획을 찬양합니다.
탄자니아 - 위험한 곳에 사역자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들어가기를(살후 3:1-3)
a. 잘못된 교훈은 여러 가지이며 다양하다(9절). 이러한 교훈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실한 선생님께로부터 받은 것과 아주 다르며 그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b. 이러한 교훈은 이상한 교리이다. 그것은 복음 교회가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복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c. 이러한 교훈들은 산만하고 늘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배를 요동하게 하고 또 배를 닻에서 떨어지게 하여 멀리 이동시켜서 바위에 산산조각이 나도록 하는 바람과 같다. 이 교훈들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착시키게 하는 아주 탁월한 하나님의 은혜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러한 이상한 교훈은 인간의 마음을 항상 흔들리게 하며 불안정하게 만든다.
d. 잘못된 교훈들은 그 내용이 조잡스럽고 속되다. 그 교훈들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같은" 외적이며 사소하고 없어질 것들에 관하여 다룬다.
e. 잘못된 교훈들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 잘못된 교훈을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 자들은 그 교훈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한다. 잘못된 교훈들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신성하게도 할 수 없으며, 겸손하게 하거나, 감사하게 만들 수도 없고 하늘나라에 이르지도 못하게 한다.
f. 이러한 잘못된 교훈을 지닌 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예배(제단)에 참석할 특권을 잃게 된다.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도 제단이 있다"고 하였다. 이 사실은 매우 중대한 것이므로 사도는 이 문제를 좀 더 길게 취급하였다. 이제 다음을 관찰해 보자.
(a) 기독교회에도 제단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초대 교회의 집회 때에는 제단이 없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제단 무용성을 말한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 제단이 없었다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제단이 있다"고 하였다. 물론 이 제단은 외형적인 제단이 아니라 인격적인 제단 곧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 되시며 제물도 되신다. 그는 제물을 거룩케 하신다. 율법 시대의 제단은 그리스도의 유형이다. 구약 시대에 구리로 희생 제단은 금으로 된 그리스도의 중제의 제단의 유형일 뿐이다.
(b) 이 제단은 진정으로 믿는 자들을 위해서 만찬을 제공해 준 이 음식은 드려진 희생 제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아주 풍요한 만찬이다. 즉 만찬은 우리에게 영적인 힘과 성장, 거룩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주의 식탁은 우리의 제단은 아니지만, 제단에서 나온 음식물이 주의 식탁에 놓여진다. "우리의 유월절 양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이 되셨다."(고전 5:7).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만찬을 즐겨야 한다." 주의 성만찬은 복음 시대에 유월절 잔이다.
(c) 장막과 레위의 율법을 고집하고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자들은 이 제단의 특권에서 제외되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유익함을 받지 못한다. 장막을 고집하는 자들을 종속시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제단에 대한 권리를 배격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주장을 입증하고 그 다음 그것을 활용하였다.
[a] 바울은 유대의 의식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것이 복음의 제단에서 받을 특권에 대한 장애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논법으로 주장하였다. 유대의 율법 아래서는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은 먹을 수 없고 유대인들이 장막 생활을 할 때는 야영지 밖에서 또 그들이 성에 거할때는 성문 밖에서 속죄물을 다 태워야만 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들어 그들이 여전히 율법의 지배 아래 있고자 한다면 복음의 제단에서도 먹을 수 없음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제물은 큰 속죄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제공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역주: 율법에 의해서는 속죄 제물을 먹을 수 없으므로 따라서 그것을 따르는 자들은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도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복음 잔치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결실로써 이 희생물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이 잔치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속죄물의 원형이 되시며 그 자신의 피로써 그의 백성들을 신성하게 하시며 순결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그는 자신을 유형과 일치하게 나타내 보이시려고 영문 밖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겸손하심을 나타내는 충격적인 표본이다. 그는 인간의 속죄를 위해 하나님께 대하여 또 인간 사회에 대하여 불결한 존재나 되는 것처럼 영문 밖에서 처형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죄(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귀중한 대가를 치루셨다)는 모든 하늘의 시민권과 이 세상의 시민권까지 박탈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또 이 사실은 죄인의 모든 사회에 문제거리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바울은 지금까지 레위 율법을 따르는 것이(율법자체의 규례에 의해) 인간들로 기독교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논한 후 다음과 같이 이 논리를 활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논하였다.
[b] 바울은 위의 논증을 활용하여 히브리인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하였다(13-15). 첫째, 바울은 "그런즉 우리는……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하였다. 즉 그가 부르실 때 율법의 의식과 죄와 세속, 우리 자신의 육체를 떠나서 그에게 나아가자는 말이다. 둘째, 바울은 기꺼이 "그리스도의 능욕을 지도록"하자고 하였다. 즉 우리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로써 곧 살 가치도 없고 평범한 죽음을 죽을 가치도 없는 존재로 기꺼이 생각하자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러한 능욕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능욕께서 바로 이러한 능욕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러한 능욕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같이 능욕을 감수해야 하는 더 큰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든지 또는 죽음을 당하므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나오게 되든지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며 또 이 세상은 "우리가 거할 영구한 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와 죄인들과 죽음이 우리를 이 세상에 오래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 믿음으로써 주께 나아가서, 이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안식과 안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바울은 이 복음의 제단을 바르게 사용하자고 하였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제단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이에 부끄러웁지 않게 이 제단의 특권에 참여할 뿐 아니라 이 제단의 의무도 바르게 이행하자는 말이다. 우리는 이 제단에 희생 제물을 가져와야 한다. 또한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가져와 그를 통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봉헌해야 한다(15,16절). 우리가 이 제단에 가져와 드려야 하는 제물은 무엇인가? 물론 이제 다른 속죄 제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큰 속죄의 제물로 드려지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의 속죄의 제물을 승인하는 승인의 제사만 드리면 된다. 승인의 제사란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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