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1-3 설교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 Hebrews[faith is the as...
히브리서11:1-3
[새번역]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NIV]
1.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2. This is what the ancients were commended for.
3. By faith we understand that the universe was formed at God's command, so that what is seen was not made out of what was visible.
믿음의 본질(히브리서 11:1-3)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Ⅰ. 믿음의 은혜가 두 가지로 정의 또는 묘사되고 있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1절)." 믿음과 희망은 언제나 병행한다. 우리 희망의 목적과 우리 믿음의 목적은 똑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 수행하실 것이라는 같은 사실을 우리는 믿고 또한 바란다. 이 믿음이 강열할 때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맛보고 또 소유하게 된다. 이 강력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바라는 것들의 첫 열매를 미리 맛보므로 영혼의 계속적인 유지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역사 안에 사는 믿는 자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게 된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영혼 안에 거하시며 그의 영혼은(하나님의 현존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는 믿음의 대상에 대해 그 본질적인 실재를 이 세상에서 이미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1절)." 믿음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여 준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와 그 계시의 각 부분에 대한 우리 영혼의 확고한 동의이다. 또 이 모든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인봉하는 것이 곧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거룩함과 의와 선하심으로 계시하신 모든 것에 대한 전적인 시인이다. 또한 믿음은 우리 영혼으로 하여금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게 하며 또 그의 뜻을 사랑하게 해 준다. 또한 믿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혼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육신에서 여러 가지 감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영혼에게도 이러한 감관이 필요한데 믿음은 바로 이러한 영혼의 감관인 것이다. 믿음이란 무슨 환상이나 생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 주며 또 우리의 영혼으로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고무시켜 주는 실질적인 것이다.
Ⅱ. 믿음을 실천하면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받은 영예에 대한 설명. 이에 대하여 본문은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2절)고 하였다. 선전들이란 옛 시대 곧 이 세계가 시작된 초창기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참된 믿음의 역사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므로 옛 믿음의 역사를 통하여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을 최상의 좋은 방법이다. 참 믿음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며 현대에 생긴 환상도 아니다. 이 믿음은 은혜의 언약이 이 세상에 발표된 이후로 인간의 영혼 가운데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은혜인 것이다. 믿음은 계시가 시작될때부터 역사되어져 왔다. 이 세상에 살았던 선진들과 가장 훌륭한 위인들은 바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2. 그들이 지녔던 믿음은 그들에게 영예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영예롭게 하였다. 이 믿음이 선진들에게 역사하였으므로 그들은 전해져 오던 하나님의 계시의 사실들을 실천할 수가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선조들이 강력한 믿음으로 행하였던 뛰어난 일을 기록하게 하사 그들로 하나님의 증거가 되도록 배려하셨다. 믿음으로 행한 순수한 행위는 기록으로 남겨져 증거될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기록은 참 믿는 자들에게 영예가 될 것이다.
Ⅲ.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규례의 첫 항목을 대하게 된다. 이 첫 항목은 모든 다른 믿음의 규례의 항목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본 항목이다. 또한 이 첫 항목은 모든 시대에 걸쳐 세계 구석구석에 거하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공통적으로 고백되어야 할 내용인 것이다. 이 첫 항목의 내용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한 선재해 있던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요 무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3절).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을 내다볼 뿐 아니라 과거도 믿음으로 회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내다보아야 한다. 할 뿐만 아니라 태초의 시기에 대해서도 돌이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믿음을 지니게 되면 이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믿음 없는 이지(理智)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믿음은 이해하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이해하도록 돕는 조력자요 친구이다. 믿음을 통하여 이 세계에 관하여 즉 하늘과 땅 밑에 관하여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가를 생각하여 보자.
1.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누구인가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2. 이 세상을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는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대단히 정밀하게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창조는 "만드는 일"이었다. 즉 지어지는 모든 것들을 창조의 목적에 일치되어야 했고 또 창조자의 완전성을 나타낼 수 있어야 했다.
4.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즉 그는 자신의 온전하신 지혜와, 영원하신 아들과 그의 능동적인 의지로 세상을 지으셨다. 그는 "모든 것이 있으라 하셨고 또 모든 것은 그대로 되었다"(시 23:9).
5. 이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미리 있었던 물질로부터 재조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는 유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인간의 상식을 뒤엎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피조물들 중의 그 어느 것도 없던 것들을 마치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칭하셨고 또 그것들은 존재하도록 명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이해하게 된다. 정확한 지식을 주며 또한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창조에 대한 성서의 내용을 왜곡하거나 무시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경의 창조기사는 인간의 환상적인 가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느 정도 있으나 현혹되기 잘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러한 환상적인 가설에 도취하여 결국 불신을 향해 첫 걸음 딛게 되고 결국 더욱 큰 불신에로 빠져드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 '실상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는 '아래에'라는 뜻인 '휘포'(* )와 '서게 하다', 또는 '확 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히스테미'(* )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문 자적으로 '...아래에 확립하다' 혹은 '...아래에 서다'를 뜻하는 것으로 '기초' (Morris), '실체'(KJV), '확증'(NIV), '객관적 실체'(Lane)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휘포스타시스'는 사람의 생각에 좌우되는 주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객관적인 실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객관적 실체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에 확신을 더하는 근거이다(Lane). 바꾸어 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객관적 실체를 확신하는 것이다. 믿음의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붙잡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확신하게 한다(Grasser). 한편 저자는 본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믿음'과 '바람'(hope)을 거의 동일 시 하였다. 이는 믿음의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Thompson).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보지 못하는 것들'의 헬라어 '프라그마톤...우블레 포메논'(* ... )에서 '것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그마톤'은 '되어진 것', '사실', '행위', '사건', '업무'등을 의미하는 말로서 인간사(human events)를 의미한다. 저자는 '프라그마톤'을 사용하여 믿음을 인 간사의 영역에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Lane). 이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플라톤의 철 학에서 말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나라의 것들이 아니라 아직 보여지지 않은 사건들 즉 종말론적 미래에 나타날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시사한다(Williamson). 믿음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와 같이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믿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 여금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고 진지하게 나아가게 한다(Lane). 한편 '증거'의 헬라어 '엘렝코스'(* )는 법률 용 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으로서(Morris) '객관적인 증거' 혹은 '증명'을 의미한다. 이 것은 믿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임을 시사한다.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선진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프레스뷔 테로이'(* )는 '조상들'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1:1) 구약 성경에 나오는 신앙위인들을 지칭한다(Morris). 한편 '이로써'의 헬라어 '엔 타우테' (* )는 여성 지시 대명사로서 1절에서 언급한 '믿음'(* , 파 스티스)과 연결된다. 구약 시대의 신앙 위인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의 결과로 하나 님으로부터 확신과 증거를 얻었다.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 '믿음으로' (* , 피스테이)는 본절에서 31절에 이르기까지 헬라어 본문의 첫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옛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고 행동한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4-31절까지는 '피스테이'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 사용된 반면 본절에서는 저자와 수신자들을 포함한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에 대해 사용되었다. 본 절에서의 강조점은 헬라어 원문의 첫 문장인 '믿음으로...우리가 아나니'(* , 피스테이 노우멘)로 진리에 대한 인식이 믿음을 통해서 가능함을 시사한다. 특별히 본절은 창 1:1에 나타나는 세상 창조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어 하나 님께서 모든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인식할 수 있음을 시 사한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보이는 것'의 헬라어 '토 블레포메논'(* )은 헬라적 유대주의(hellenistic judaism)의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가시적인 우주를 가리킨다(외경 지혜서 13:7). 한 편 '나타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파이노메논'(* )은 헬라어 오랜 철학적 전통에서 기인한 표현이다(Williamson, Philo). 저자는 유대주의 전통과 헬라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차용하여 그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이는 저자 가 당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플라톤과 필로의 우주론, 즉 태초 혼돈 상태에 있었던 가시적인 물질들을 창조자가 이데아나 원형을 사용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 우주가 생 성되었다는 우주론을 배격하고 특히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적 유대주의의 관점에 서 창세기 1장을 이해하려는 시각을 막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형태를 갖추지 못한 물질들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다';지혜서 11:17, Lane). '보 이는 것' 즉 물질 세계는 '나타난 것' 즉 창조 이전에 존재했었던 어떤 물질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다(Ehrhardt). 즉 저자는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Widders, Bruce, 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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