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2019년 2월 10일 자비교회 주일 설교 요약]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마태복음 6:12)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공부하다가, 이 부분에서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죄 용서함을 받으려면 남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조건처럼 본문을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로주의적 해석이며,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닙니다. 완전한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먼저 주님께 죄를 용서받고 용납 받았기 때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05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간구로 우리는 무엇을 구합니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다섯째 간구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담대히 그렇게 구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모든 죄가 용서받은 유일무이한 이유는 “오직 은혜”입니다. 즉 믿음과 회개로 그리스도께 나아온 자는 거저 죄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억지로 용서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기꺼이, 성령의 감동으로 용서합니다. 그렇지 않은 자를 두고,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마태복음 18:23-25)

만 달란트는 오늘날의 16조원과 비슷한 돈의 액수입니다. 주인은 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겨 채무를 전부 탕감해 주었습니다. 몇 대의 후손들이 평생을 일해도 다 못 갚을 빚을 없애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이 종은 그만 그 감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백 데나리온, 즉 오늘날 노동자 3달치 봉급에 해당하는 돈을 자기에게 빚진 동료의 멱살을 잡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주인은 노하여 이렇게 호통을 치고는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18:32-33)

형제자매 여러분, 주께서 당신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렇게 이웃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물론 용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복수의 날을 갈며 자신을 소모하지 마십시오. 시편기자처럼 신원(伸寃)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주님은 나와 여러분의 모든 배반과 사악함을 아십니다. 말로 다 못할 죄를 용서받은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될 것입니다. 은혜를 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값없이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치르신 대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늘 십자가를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십자가 사랑에 다시 감격하기 원합니다. 은혜로 용서받고, 은혜로 용납하며 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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