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그의 생애, 서신, 신학 (Thinking through Paul: An Introduction to His Life, Letters, and Theology) 저자/역자:브루스 W. 롱네커,토드 D. 스틸/박규태



바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바울을 통해 넓게 신학하라!


바울 르네상스라 할 만큼 바울에 대한 저작이 쏟아지고 있고, 최첨단의 논의도 국내에 빠른 속도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할 정도로 신뢰할 만한 바울 입문서는 거의 없었다. 대중의 눈길을 끈 많은 논쟁이 난립하는 터라, 바울에 대한 이해는 심각한 편식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바울』은 이 와중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이다. 주목할 만한 바울 연구자인 저자들은 바울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논의들을 균형 있게 소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견해도 존중하는 열린 신학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독자들이 바울의 풍부하고 복잡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우면서 동시에 바울의 신학을 직접 붙들고 씨름해 보라고 독려하는 것이다. 그 작업은 결코 끝나지 않겠지만, ‘바울을 깊이 고찰’하도록 북돋아 주는 저자들과 함께 시작하기는 가능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롱네커와 스틸은 학생들이 바울을 발견할 수 있는 기초를 명쾌하게 알려 주는 데 성공했다.
아름답고도 훌륭한 체계를 갖춘 바울 소개서가 여기 있다.” _스캇 맥나이트


* 인간, 목회자, 신학자 바울을 처음 만나는 탁월한 입문서
* 다채로운 사진지도 / 깊이 있는 연구 문제 / 상세한 용어해설참고도서 수록
* 신학 교과서로서 최신의 학문적 논의를 반영한 정확성과 중립성


“우리는 독자들이 이 책을 정독하는 동안 바울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쌓고 바울의 진가를 더욱더 알아 가기를 바란다.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쌓고 바울의 진가를 알아 갈 수 있는 길은, 그의 묵직한 말을 희석시켜 쉽고 짧으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경구나 쉬이 다룰 수 있는 슬로건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역동성이 넘치는 그의 신학 담론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들어가며 중에서).

바울과 그가 쓴 서신을 연구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우리에게 도전을 던지며 삶을 바꾸어 놓는 일일 수 있다. 특히 독자들이 그저 기초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이 나아가 많은 것을 얻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 책 『바울』은 일차적으로 신학생을 위한 바울 입문서이지만, 바울 해석의 고전적 문제는 물론 학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저자인 브루스 롱네커와 토드 스틸은 이를 통해 독자들이 바울과 그의 글을 폭넓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수십 년 동안 바울을 연구하며 가르쳐 온 저자들은 이제 우리에게 바울서신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풍성하고 역동성이 넘치는 바울의 신학 담론을 붙들고 씨름해 보라고 도전한다.

바울 연구에 대한 실용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입문용 개론서인 이 책의 1부는(1장),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를 망라하여 그의 주목할 만한 생애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2-10장) 13편의 바울서신을 다루는데, 각 서신이 표명하는 시각(vision)의 위치를 설정하고 중심을 찾아보며 그 시각이 흘러가는 경로를 따라가 본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11-13장), 바울 텍스트가 다루는 공동체의 미시적인 문제들과 세계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거시적인 안목을 연결시키는 바울의 신학 담론을 연구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다채로운 사진지도 및 말끔한 구성과 편집이 돋보이며, 깊이 있는 토론&연구 신학&묵상 질문 및 상세한 용어 해설과 참고문헌 목록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바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그가 살았던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서, 그의 영혼이 담긴 서신들과 중대한 신학 공헌을 탐구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바울과 관련한 모든 이슈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명쾌하고도 최대한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정리해 놓은 대작이다. 바울 복음의 활동성과 치밀한 학문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저자들의 설명은 바울과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독자를 사뭇 설레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왜 이 책에 “바울을 깊이 고찰하다”(Thinking through Paul)라는 원제를 붙였을까? 이유는 그 제목이 이 책을 구성하는 모든 장의 특징을 규정하는 두 시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첫째, “바울을 깊이 고찰하다”라는 말은 “바울에 관하여 생각한다”는 의미요, 그의 서신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그가 각 서신 속에서 하고 있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바울은 연구 대상이자 깊이 고찰할 대상이며 탐구 대상이다. 그러나 때로는 또 다른 의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이 경우에 “바울을 깊이 고찰하다”라는 말은 “바울이 생각했던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의미요, 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사유 패턴을 따라 생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바울은 연구 대상이라기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일에 관하여 우리 자신이 가진 생각을 뒤흔드는 촉매제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을 깊이 고찰한다”는 말이 지닌 이 두 의미는 서로를 보완하며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의미에서) 바울을 깊이 고찰하면 할수록, (두 번째 의미에서) 바울을 더욱더 깊이 고찰할 수 있다.
_들어가며 중에서

물론 우리는 바울이 그의 다메섹 체험을 구약에 나오는 소명 내러티브와 비슷하게 인식하고 그곳에 나오는 말과 비슷한 용어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한다. 아울러 다메섹 체험 전과 후에 바울이 전개하는 사상과 실제 활동에 상당한 연속성이 있다는 점에도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를 묘사하는 말로서 ‘회심’이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다고 하는 것은 쓸데없이 이 용어의 활용 폭을 좁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그는 이전에 그가 파괴하려 했던 믿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시간이 흐르자 그는 ‘이전에’ 유대교 안에서 보냈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삶을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자신의 절박한 열망과 비교하여 하찮게 여긴다고 이야기하게 된다. 더욱이, 바울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은, 바울의 다메섹 체험과 이후에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보낸 삶을 서술할 때 변화를 나타내는 언어(‘회심’)와 부르심을 나타내는 언어(‘소명’)를 결합하는 것이 올바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_01. 바울의 삶과 사역 중에서

이제 감사를 살펴보자.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오는 두 감사 중 첫 번째 감사문을 보자마자 바울서신의 기둥과 같은 말인 믿음, 사랑, 소망을 만난다. 바울은 1:2-3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으로 만들어 낸 일, 사랑이 원동력이 된 [그들의] 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품은 소망이 불러일으킨 [그들의] 인내”를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린다. 이 3개1조(triad, 믿음, 사랑, 소망)를 이 같은 순서로 제시한 데는 신학 논리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은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이어지고, 소망 안에서 완성된다.
_02. 데살로니가전후서 중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의미가 깊디깊은 우주 안으로 스며든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자기 내어 주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정체성을 삼켜 버리는 ‘종말의’(apocalyptic) 차원을 가진다. 바울은 이를 갈라디아서 6:14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로 이런 이해와 능력이 어우러진 종말의 틀 속에서 그들이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리라고 본다. 때문에 그는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의 에토스와 실천이 ‘새 창조’를 포괄한다. 바울은 예수 따름이들의 공동체가 성령에 감동된 공동체라는 근본 성격을 잃어버리면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보았다.
_03. 갈라디아서 중에서

일부 그리스도인이 바울의 복음을 “난 아무것이나 해도 될 권리가 있다”는 슬로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바울은 이 슬로건에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다”와 “그러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지는 않는다”라는 단서를 단다. 단서들이 등장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고린도 교인들의 뒤섞인 생각에 한 몸인 공동체를 생각하는 정신을 불어넣는다. 바울이 모든 것이 유익하거나 덕을 세우지는 않는다고 강조한 까닭은 곧 예수 따름이 공동체의 안녕을 염두에 두라는 의미다. 바울은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려는 행동은,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는 자세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쓴다. 오로지 영예를 얻는 일을 추구하는 것에 푹 빠져 버린 세계에서는 이런 가르침이 어리석은 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를 공동체 차원에서 적용하는 모습이다.
_04. 고린도전서 중에서

따라서 우리는 고린도후서가 서로 별개인 두 개의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견해를 가지고 논의를 펼쳐 보도록 하겠다. 본문과 본문을 이어 주는 경첩을 통해 느슨히 결합해 있는 고린도후서 1-9장과 10-13장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의 관계가 두 단계였으며 각 단계가 서로 다른 양상을 띠었음을 알려 주는 증언이자, 양자의 팽팽한 긴장 관계 속에서 바울이 순간순간 달리 채용했던 목회 전략들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더구나 고린도후서 10-13장이 사실은 ‘눈물 어린 서신’의 주요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지금은 그 서신의 간결한 첫머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어쩌면 마무리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고린도후서 10-13장이 1-9장보다 먼저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순서는 바울이 고린도후서 10-13장을 쓸 당시 고린도 교인들과 지극히 까다롭고 위험한 관계에 있었다가 그들과 깨지기 쉬우면서도 화해할 가망이 보이는 관계를 누리기 시작하는 단계로 옮겨 갔음을 시사한다.
_05. 고린도후서 중에서

바울은 예수를 속죄소로 묘사함으로써 놀라울 정도로 대담한 움직임을 보인다(이와 같은 묘사는 어쩌면 초기 예수 운동의 신학 주장을 되풀이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에서 제시하는 맥락을 보면, 예수가 처리하신 죄는 ‘죄라는 힘’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모든 사람-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죄였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대속죄일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새로운 대속죄일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민족 그룹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의 선한 피조 세계 안에서 경건하지 않은 목적을 이루려고 활동하는 죄라는 힘(그리고 우주의 다른 세력들)과 관련이 있다. 이제는 이런 파멸의 모체에서 구속 또는 “속량”(해방)을 받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모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 행사를 통해 (어쩌면 NIV가 3:22 각주에서 밝힌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구속과 해방을 누릴 수 있다.
_06. 로마서 중에서

3장 첫 부분에서 다음 본문으로 넘어가는 모양새가 분명 어색하기는 하지만, 빌립보서가 여러 서신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시나리오를 만족스럽지 않게 여기는 이가 늘고 있다. 아울러 빌립보서의 통일성을 지지하는 이들은 서신 끝에 나온 감사가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특히 바울이 이 서신 서두에서 표명하는 감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폴리카르포스가 한 말처럼,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당연히 여러 서신을 썼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정경의 빌립보서를 반드시 콜라주 작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를 포함하여 더욱더 많은 해석자가 빌립보서를 단일 서신으로 보려고 한다. 빌립보서 안에 그리 매끄럽지 않은 전환 부분이 몇 곳 있음은 인정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보는 정경의 빌립보서는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뒤섞어 놓은 잡탕이 아니다. 실제로, 빌립보서가 되풀이하는 여러 주제와 단어는 이 서신이 단일 작품임을 시사한다.
_07. 빌립보서 중에서

바울은 빌레몬을 ‘형제’라 부르면서, 빌레몬이 자신에게 “주 안에서...기쁨[유익]”을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표명한다. ‘유익’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헬라어로 onaimen(‘이익을 주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oninamai에서 나온)이다. 이것을 말해 두는 이유는 바울이 또 다른 언어유희를 구사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도 오네시모의 이름을 사용하여 언어유희를 펼치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사도는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자신에게 다시 보내 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요구하는 셈이다(그리 은근한 요구도 아니다). 이렇게 읽으면 바울이 빌레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splanchna)에 생기를 넣어 주십시오”라고 요구한 20절의 마지막 문언과도 일치할 것이다. 바울은 이제 빌레몬이 다른 신자들을 위해 했던 일-곧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했던 일-을 바울 자신을 위해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빌레몬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이 바울 자신의 마음인 한 사람, 곧 오네시모를 자신에게 되돌려 보내면 자신의 마음이 새로워질 것이라고 제시하는 듯하다.
_08. 빌레몬서골로새서 중에서

에베소서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쓴 서신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쓴 것일까? 어쩌면 처음에는 라오디게아의 교인들에게 썼을지도 모른다. 마침 골로새서 4:16은 골로새에 있는 교회에게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독려한다. 게다가, 2세기에 테르툴리아누스의 가장 큰 대적이었던 마르키온은 ‘에베소
서’를 ‘라오디게아서’라고 불렀다. 혹은 어쩌면 에베소서는 소아시아 서부 지역 신자들이 돌려 읽을 회람서신(circular letter)으로 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지역의 중심을 이루는 대도시이자 서신을 회람하고 보존했던 곳 가운데 하나인 에베소와 묶이게 되었을 수도 있다(그랬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_09. 에베소서 중에서

디모데전서 2:8-15이 여자에게 주는 가르침은 확실히 특정한 정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가 여자의 머리 스타일, 보석, 옷차림에 관해 제시하는 관념을 이전에 통용되었던 규범이라고 생각한다면, 오늘날 대다수 지역에 있는 대다수 회중은 이 특별한 관심사를 자신들과는 무관하다 여기고 그렇게 다룰 것이다. 오히려 교회 안에 ‘거짓 교사’가 존재하면서 이들이 교회에 미친 영향이 디모데전서가 제시하는 인식과 여자에게 주는 가르침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령, “속이는 자”가 이 서신이 언급하는 여자들을 속이고 있었다면, 그들이 공동체가 모인 자리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설교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목회 차원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게다가 디모데전서 4:3이 귀띔하듯이 거짓 교사가 혼인을 금지하고 있었다면, 2:15이 (비록 완전하지는 않아도) 더 수긍이 간다. 혹자는 저자가 이 구절에서 여자와 관련해 이야기하는 구원이, 거짓 교사가 (혼인과) 출산을 통해 오고 계속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 안에 적절히 거함으로써 온다고 가르친 구원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_10. 목회서신: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중에서

많은 바울 해석자들은, 바울서신에 들어 있는 특정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하심)을 언급한다고 본다면 그 본문들이 더욱 풍성한 신학 차원을 제공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로마서 3:21-26 같은 본문은 하나님의 신실한 의가 단순히 “모든 믿는 자에게” 뚫고 들어온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모든 믿는 자에게 뚫고 들어온다고 말한다. 아울러 하나님이 예수를 단지 “믿음으로 받을” 대속제물로 내놓으셨다고 말하지 않고(물론 이것도 옳은 말이다) “[그의] 신실함을 통해” 내놓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바울의 신학 작업은 믿음/신실하심의 삼각망 안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_11. 바울이 펼치는 신학 담론의 묵시 내러티브 중에서

하지만 바울을 ‘대체 신학’을 밑받침하는 근거로 끌어들일 때 발생하는 큰 문제는, 바울이 대체 신학이라는 이슈를 중요하게 다루는 곳으로 보이는 유일한 본문에서 하는 말과 그 신학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을 보면, 바울은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인 예수 따름이와 달리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자신의 목적에서 배제하셨으며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이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활용해 하나님 자신의 구원 목적을 이루기로 하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의 뜻이 특히 (비록 아이러니하지만) 자신의 언약 백성을 통해 온 세상 속에서 역사하게 하셨음을 증명한다.
_12. 바울의 신학 내러티브와 그 시대의 거시 내러티브 중에서

바울은 예수 따름이가 십자가를 따라가는 도덕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성경을 올바로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추측하건대, 바울은 바로 이런 특징이 자신의 성경 해석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보았을 것이다. 자기를 내어 주신 그리스도가 바울 안에 들어와 사시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바울 자신의 성경 해석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그의 성경 해석은 예수 그룹이 그리스도를 닮아 자신을 내어 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반면, 다른 성경 해석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갈라디아서 1-2장에서 우선 그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뒤이어 3-4장에서 성경 해석을 전개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울의 성경 해석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리스도를 그 자신의 삶 속에서 체현한 결과물이다.
_13. 바울의 신학 내러티브와 예수 그룹의 미시 내러티브 중에서
들어가며

I. 바울의 생애
01. 바울의 삶과 사역

II. 바울서신
02. 데살로니가전후서
03. 갈라디아서
04. 고린도전서
05. 고린도후서
06. 로마서
07. 빌립보서
08. 빌레몬서 골로새서
09. 에베소서
10. 목회서신: 디도서 디모데전후서

III. 바울의 신학
11. 바울이 펼치는 신학 담론의 묵시 내러티브
12. 바울의 신학 내러티브와 그 시대의 거시 내러티브
13. 바울의 신학 내러티브와 예수 그룹의 미시 내러티브

마치며

주 용어 해설 참고문헌 찾아보기(성경/주제저자)
이 책은 일차적으로 신학생을 위한 바울 입문서이지만, 바울 해석의 고전적 문제에 대한 연구사는 물론 학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고 있어 바울서신 전문가도 정독할 만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색감과 명료한 레이아웃을 사용한 말끔한 구성이 돋보이며, 서양화와 유적 사진을 적소에 배치해 시각 문화에 편안함을 느끼는 젊은 학생들을 위한 교과서로 적합하다(할례 의식 도구 사진은 나도 처음 보았다!). 현존하는 바울서신 개론서 중 단연 으뜸이며 번역 또한 일품이다.
_김선용,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객원교수

바울 르네상스라 할 만큼 바울에 대한 저작이 쏟아지고 있고, 최첨단의 논의도 국내에 빠른 속도로 소개되고 있지만, 정작 신뢰할 만한 바울 입문서는 거의 없었다. 대중의 눈길을 끈 많은 논쟁들이 국내에 소개된 터라, 바울에 대한 이해는 심각한 편식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와중에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이 책의 출간이 반갑다. 저자들은 바울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논의들을 균형 있게 소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입장과 다른 견해도 존중하는 열린 신학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의 텍스트가 다루는 공동체의 미시적인 문제들과 세계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거시적인 안목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울 이해의 관건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모범이라 할 만하다. 고고학적 발견과 사회사적 연구를 적절하게 사용해 바울 연구에 입체감을 더했으며, 특히 훌륭한 참고문헌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목록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_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

저자들은 바울의 삶과 신학, 그리고 그의 편지들에 대한 소개를 절묘하게 한 권에 담아냈다. 핵심 쟁점들에 대한 설명은 간명하고, 그 논의의 폭은 최근의 연구들을 망라할 정도로 넓다. 무엇보다 독자 친화적인 구성과 편집이 돋보인다. 한동안 바울서신 수업을 위한 교재 고민을 덜어 줄 책이다.
_정성국,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바울 연구에 대한 실용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입문서다. 바울의 생애와 신학뿐만 아니라, 바울서신 13권의 해석을 상당히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 권의 책 속에서 이렇게 알찬 내용을 접하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반가운 일이다. 저자들은 바울의 ‘사유 패턴을 따라’ 생각하기를 자신들의 저술 기준으로 취하는데, 이는 매우 좋은 접근 방식이다. 물론 입장을 결정해야 할 수많은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이며 때로는 그들이 취하는 입장에 동의할 수 없기도 하겠지만, 바울서신의 방대한 영역을 촘촘히 그리고 최대한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잘 정리해 놓은 수고에 찬사를 보낸다.
_최승락,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사도 바울을 소개하는 것은 오늘날만의 과업이 아니다. 역사적인 많은 문제뿐 아니라, 바울 사상의 핵심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폭풍의 중심에 자리해 있다. 롱네커와 스틸은 학생들이 바울을 발견할 수 있는 기초를 명쾌하게 알려 주는 데 성공했다. 아름답고도 훌륭한 체계를 갖춘 바울 소개서가 여기 있다.
_스캇 맥나이트, 노던 신학교 교수

바울의 생애와 서신은 물론 그의 ‘신학 담론’을 다양한 삽화 및 소개 자료와 잘 조합해 서술한 작품이다. 바울 연구에서 쟁점이 되는 최신의 전문적인 논의를 사려 깊게 반영하면서 1차-2차 자료들을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다. 저자들은 바울의 ‘종말론적 묵시 내러티브’가 그의 서신과 신학에 일관성을 제공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유대적이고 로마적인 환경에서 바울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과 로마 제국의 질서라는 거대 담론을 재구성한다. 전문적이면서도 최신의 정보들을 독자가 쉬이 읽을 수 있게 쓴 이 교과서는, 그리스도중심의 에토스를 배우고 함양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_주디스 건드리, 예일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사도 바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여러 지점에서 가치 있는 교과서가 출간되었다. 주목할 만한 학자들인 롱네커와 스틸은 바울의 삶과 서신에서 논쟁이 되는 이슈들을 명확하고 공정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우리가 바울의 풍부하고 복잡한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동시에 우리더러 바울의 신학을 직접 붙들고 씨름해 보라고 독려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바울을 깊이 고찰’하도록 북돋아 줌으로써 그들이 이루려 했던 목표를 성취했다. 그 작업은 결코 끝나지 않겠지만, 이 책과 함께 시작하기는 가능할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 책을 소개할 생각에 벌써부터 즐겁다!
_니제이 굽타, 조지 폭스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

근래 바울을 연구하는 학계의 동향과 바울이 쓴 각 서신의 내용 및 맥락을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게 소개한 안내서가 나왔다. 풍부한 삽화를 곁들인 이 작품은 탁월한 교과서이지만, 교실 안에 있는 학생뿐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도 환영받을 것이다.
_스티븐 웨스터홀름, 맥마스터 대학교 교수

브루스 W. 롱네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베일러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 1990년에 영국 더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더럼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현재는 베일러 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학과장 및 초기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독교의 기원과 바울 신학을 깊이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이 책 외에 여러 주석서와 『어느 로마귀족의 죽음』(복있는사람), Hearing the Silence, Remember the Poor, Narrative Dynamics in Paul 등이 있다.
토드 D. 스틸
미국 베일러 대학교의 신약학 교수. 1996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현재는 베일러 대학교 조지 트루트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과 헬라어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이 책 외에 The Revised Expositor’s Bible Commentary의 골로새서 주석, Conflict at Thessalonica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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