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시작하시는 하나님 [2019년 11월 17일 자비교회 주일 설교 요약]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세기 8:1)
자기 발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그들은 죄인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 그들은 포악하고 잔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노아가 전한 심판의 메시지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가장 높은 산까지 덮고도 남을 많은 물로써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냥 다 없애버리고, 무(無)로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쓸어버리시는 것이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예레미야 1:10) 예레미야 선지자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은 선지자들. 그들은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회복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무거운 메시지를 싫어했습니다. 거짓선지자의 사탕발린 메시지, 가벼운 위로를 선호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지막 기회까지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와 같은 심판을 이스라엘에 내리셨습니다. 잔인한 주변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모조리 약탈해 갔습니다.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귀환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겸손한 예배 공동체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무너뜨리고 않고, 새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귀찮다고 뽑지 않고, 새 것을 건설하려 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회개와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거의 죄와 결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사람에서 떠나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옛 자아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연합한 새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 회복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죄인이여, 삶이 고달프십니까? 지금이 당신의 구세주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우리는 우둔하여, 고통이 아니고는 도무지 예수님을 찾지 않는 것을 주님이 제일 잘 아십니다. 주님이 잠시잠깐 당신을 누르시는 것은 당신을 죽이고자 하심이 아니요, 영생을 주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쾌락과 망각 속에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못됩니다. 지금 당장 손을 뻗어 예수님께 외치십시오. 만나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분은 거절하지 않고, 반드시 당신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동료 신자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 인격을 더 거룩하게 빚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교만하게 된 우리를 겸손케 하시려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닮은 성품을 세우시려고, 당신의 허물을 무너뜨리실 때, 아픈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아픔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감히 비할 수 없는 작은 것입니다. 당신의 완악함을 뽑으시려 개입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그분 앞에 엎드리십시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새롭게 하시려 성령의 불로 깨끗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무너져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양다리를 걸친 자는 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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