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운명 - 존 샤우어(John Shower, 1657–1715)

청교도와 함께 두 운명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누가복음 16:24)
 
행복과 비참의 상태는 둘 다 변할 수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복된 나사로와 비참한 부자의 상태 어느 쪽도 변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변개할 수 없는 작정으로 결정된 넘어갈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기 때문에 저주받은 자는 결코 천국에 올라갈 수 없고, 복 받은 자도 결코 지옥으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부자의 큰 불행과 나사로의 지극한 복락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한 멸망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구조가, 생명과 불명성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드러난다는, 죽음 이후의 복됨과 비참함에 대한 이 진리 위에 서 있습니다. 죽음 후에 복됨과 비참의 두 영원한 상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폐기하고, 성경을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사기꾼이라고, 성경을 지어낸 이야기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은 지나간 모든 현자를 바보라고 비난해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이 설명하신 마지막 날과 최후 심판의 결과가 여기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심판(6:2)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심판이 계속해서 행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의 효력과 결과가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심판의 날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알지 못하지만, 영원한 보상과 영원한 형벌이라는 심판의 실행이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 - 존 샤우어(John Shower, 16571715)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전도서 5장 설교 / 내가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애 동안 해 아래에서 먹고 마시고 열심히 일해서 보람을 얻는...

찬송: 예수 귀하신 이름 / 성경 읽기: 창세기 23장, 마태복음 22장, 사도행전 22장 / 설교: 사라의 죽음, 성령의 보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