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받는 자” [2019년 7월 28일 자비교회 주일 설교 요약]
에베소서 5장의 시작 부분은 에베소서 4장의 끝에서 나온 권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신자의 언어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짚어주었습니다. 그것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과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충분히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은데, 바울은 다시 한 번 이를 반복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에베소서 5:3)
왜 그럴까요? 쓸데없는 잔소리처럼 느끼십니까? 친구여,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접해야 합니다. 마귀가 끈질기게 공격하고, 세상이 계속된 손짓을 날리며, 육신은 쉬지 않고 유혹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요셉처럼 자신의 눈과 입, 귀와 언약을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매일, 매순간의 유혹과 공격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악독을 인정하면 곧바로 다른 악한 것들이 기세를 잡고 물밀듯이 밀어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반복해서 교훈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반복해서 자신을 교정하십시오. 부지런히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신자만이 진리와 순결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에베소서 5:4)
신자가 유혹과 싸워 이기는 방식은 소극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적극적인 방식을 취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바보 취급하여도, 그리스도인은 감사의 언어를 통해 복음의 향기를 풍겨 냅니다. 세상은 이것을 매력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감사의 말이 멸시를 당할 때,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세상이 보기에 매력적인 구원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피비린내 나는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세상이 멋지게 보지 않는 회개와 감사, 전적인 의지와 인내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이러한 반대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갑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5:2)
에베소 교회는 음행을 멀리하고, 진리를 잘 수호했으며, 언어생활도 감사로 잘 가꾸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서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절제와 훈련은 사랑에 기초해 있을 때, 빛과 향기를 발합니다. 예수께서 보이신 그 사랑에 흠뻑 젖은 신자만이 이러한 빛과 향기를 뿜어낼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흠 없는 삶을 살려고 애써보십시오. 금방 밑천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 없이 거룩한 삶을 흉내낼 수조차 없습니다. 사랑 없는 내게 먼저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내 대신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고통과 죽음은 내 죄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그래야 바리새인처럼 책망 받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제야 비로소 신자답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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