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더 좋은 것-윌리엄 휘태커(William Whitaker,1548-95) [청교도와 함께] 시편 63:3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은 생명이나 죽음보다 더 나은 분...
청교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더 좋은 것
모든 선한 것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선한 것의 절정이자 정수이신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피조물에게서 뭔가 만족을 찾을 수 있다면, 하나님 안에는 훨씬 더 큰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족을 느끼는 어떤 피조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 피조물이 없어도 하나님 자신에게서 똑같은 만족을 우리에게 전달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만든 존재는 그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라는 오래된 규칙을 생각해 보십시오.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인과론입니다. 피조물 곳곳에 나타난 각종 탁월성을 인식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에게 있는 불완전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 무한성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어떤 친구가 만족스럽게 여겨집니까? 하나님은 모든 친구보다 더 뛰어난 친구이십니다. 큰 도움을 주는 신실한 상담자가 있습니까? 어떤 상담자도 하나님과 비길 수 없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40:18) 큰 특권으로서의 평안을 간구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더 큰 평안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곤궁한 마음에 평안을 주시며 상처받은 양심에 평화를 주십니다. 생명이 귀하게 여겨지십니까? 시편 63편 3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은 생명이나 죽음보다 더 나은 분이십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하나님한테서 떨어져서 사느니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아! 태양빛에 비교해 촛불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은 이 땅의 만족보다 훨씬 더 좋은 분이십니다. 엘가나가 한나에게 말한 것과 같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삼상1:8)
- 윌리엄 휘태커 (William Whitaker, 1548-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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