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약속, 첫 소유지 [2020년 2월 23일 자비교회 주일 설교 요약]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창세기 23:2-3)
사라가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었습니다. 참으로 힘겨운 인생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녀를 생각하며 웁니다. 사라와 함께 했던 기쁨과 슬픔을 추억하며 웁니다. 아브라함의 슬픔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신자는 눈물을 아는 사람입니다. 죽음이 죄로 인해 들어온 것을 아는 까닭입니다. 본래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첫 세상은 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질병과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보면서 신자는 슬피 웁니다. 그러나 마냥 울 수만은 없습니다. 때가 되면 눈물을 닦고 일어나야 합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소망의 사람이기 때문에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본격적으로 사라의 장례 준비에 착수합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창세기 23:6)
매장지가 필요했던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땅을 팔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헷 족속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였고, 그냥 땅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원했던 땅의 주인 에브론도 기꺼이 땅을 내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몸을 굽혀 절하며 땅을 사겠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히고” (창세기 23:7, 12)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했던 다윗은 값을 치르지 않고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아라우나가 타장마당을 드리겠다고 했지만 다윗은 물러서지 않습니다(삼하24:21-24). 오늘 본문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특히 상거래에 있어서 신자에게 정중하고 합당할 것을 가르칩니다. 지나치게 물건 값을 깎거나, 흥정할 때 인색한 모습은, 복음에 합당한 삶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2절에서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공짜를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정당한 값을 치르십시오. 그러나 본문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브라함은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창23:4)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을 가지고 큰돈을 지불한 후 매장지를 삽니다. 그냥 주겠다는 사람이 사라지고, 새로운 통치자가 나타나도 문제가 없도록, 분명한 자기 소유의 땅의 삽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어주실 것이란 믿음으로 매장지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음성도, 기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소망의 거래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참 성도는 슬픔 중에도 소망으로 일어섭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천국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눈물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친구여, 당신에게는 소망이 있습니까? 당신의 소망을 보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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