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없는 자가 되어” [2019년 7월 14일 자비교회 주일 설교 요약]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에베소서 4:17)
거룩한 삶은 구원 받은 성도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거룩한 삶은 자동적으로, 기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복하는 신자의 기도와 애씀의 땀방울을 사용하시어 신자를 거룩하게 빚어 가십니다. 거룩한 삶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볼 것을 명하십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관계없이 이방인으로 살았던 날들을 돌아보면서, 그 비참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복음을 거절하는 “비신자”를 가리킵니다. 본문은 비신자의 대표적인 특징을 “무감각”으로 제시합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에베소서 4:18-19)
비신자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비신자를 “허물과 죄로 죽은” 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있기에, 생명과 천국, 영적 환희와 소망 등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이들은 영적 문둥병자와 같습니다. 문둥병, 즉 한센병에 걸린 사람은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료할 때를 놓쳐 버리곤 하여, 신체 중 일부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바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로는 하나님께 대해 무감각한 자였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눈앞에서 경험했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프게 하셔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의 결국은 멸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 나아만 장군은 어떠했습니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선지자를 찾아갔고, 화를 누르고 선지자에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각 없는 자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구원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비신자의 고집과 완고함을 깨뜨리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권면과 전도가 아무 소용없어 보일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비신자의 무감각은 기도 들으시는 주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신자의 무감각은 매우 심각한 질병입니다. 마귀는 구원을 취소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자를 영적으로 둔감하게 하고, 잠들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삼손이 대표적인 경우 아닙니까? 그는 감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했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변화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매일 주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십시오. 몸에 좋은 것을 복용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관리하는 것처럼, 영혼을 매일 돌보십시오. 자신을 부인하는 일 없이 영적인 예민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신자의 교제를 귀히 여기십시오. 중풍병자를 메워온 네 사람은 인파를 헤집고, 지붕을 뜯었습니다. 중풍에 걸려 무감각해진 친구는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내가 무감각의 질병에 시달릴 때, 나를 깨워줄 지체들은 금보다 귀합니다. 기도시간에 나를 기억해 줄 형제자매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친구여, 하나님을 감각하고 싶으십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가십시오. 그분만이 당신의 무감각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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