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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6장 [개역개정] Galatians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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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개론 [제목] 본서의 명칭은 갈라디아인(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의미에서 갈라디아서라 불리우게 되었다. 갈라디아는 소아시아 지역의 중앙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고원 지대의 북쪽에 위치한 지방이다. 바울은 이곳에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나타냈으며 그 결과 이 지역에는 많은 교회들이 설립 되었다. [저자] 본서는 서두에서 저자가 바울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바울은 본 서신을 기록할때 다른 서신들과 같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쓰게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기록하였다(참조 1:1; 5:2; 6:11절). 그래서 19세기 몇몇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본서에 대한 바울의 저작권에 이의를 거는 사람은 없다. [기록연대] 갈라디아서의 기록연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를 개최하도록 한 일련의 초대 교회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초반부(1~7장)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만 전파되고 있다. 그 후 예루살렘 안에서의 박해로 인해 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선교 영역을 이방 지역으로 넓혀가게 되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교도의 상태에서 직접 개종했거나 혹은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시리아의 안디옥은 많은 희랍인들을 영입하게 되었다. 갑자기 불어난 이방인들의 신앙을 위해 예루살렘 교회는 급기야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주로 희랍인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였다. 안디옥의 이방인 대량 유입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이방인들이 초대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의 수를 압도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에서의 일년 동안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의 후원으로 제1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제1차 선교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이방인 개종자의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다(행 13,14장). 그러자 예루살렘에...

8월 2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희생과 우정(Sacrifice and Friendship)"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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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과 우정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요한복음 15:15) 모든 것을 내려놓기까지는, 우리는 결코 자기희생의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자기 항복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하면 완전하게 순복하겠는데… 이런, 나의 삶을 주님께 다 드려야만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자기희생의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순간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자기희생의 최종 목표는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내려놓는 것입니다.(요 15:13-14)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을 위해 나의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 됩니다. 이때는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우리에게 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희생은 성령의 사랑을 표현하는 열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희생의 삶의 본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을 행하기를 즐거워하노니.”(시 40:8) 주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기쁨으로 자신의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순복하며 나 자신을 내어 드렸습니까?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떠한 희생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우리의 눈을 고정한 가운데 자기희생이 치러졌을 때, 서서히 그리고 분명하게 주께서 나를 빚으시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히 12:1-2) 자연적인 애착들이 사랑 안에서 행하는 당신의 삶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자연적인 애착을 제거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의 하나는 자연적인 애착을 혐오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애착은 주 예수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감상적으로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하심 같이 성도가 사랑하는 것은 가장 실천적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예수님과의 우정은 우리 안에 창조된 새 생명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우정은 옛 생명에 대하여 아무 애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생명을 사랑합니다. 그 우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

설교 요약 [2021년 8월 8일 주일]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자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제물이셨습니다. 그분은 피 흘리셨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놋제단은 우리 주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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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 (출애굽기 27:1-2) 놋제단은 성막에서 제일 큰 가구입니다. 또한 성막 안으로 들어온 예배자가 제일 먼저 보는 물건입니다. 놋제단은 죄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며 죄는 곧 죽음을 뜻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상기시킵니다. 놋제단 곁에서 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을 잡고, 각을 뜨고, 제단 주위에 피를 뿌리며, 제단에서 불태웁니다. 이는 죄가 정말로 큰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매우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행위들입니다. 동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지는 것을 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죄는 흉측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흉측한 일이 골고다에서, 십자가 위에서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21)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이자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며,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제물이셨습니다. 그분은 피 흘리셨고,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으며,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놋제단은 우리 주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놋제단의 재료는 조각목입니다. 하지만 불을 견뎌내야 하는 실제적 목적 때문에 놋으로 싸야 했습니다. 하지만 놋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금색은 영광과 존귀, 청색은 자비와 사랑, 자색은 권위와 위엄, 홍색은 희생과 속죄, 베실의 흰색은 순결과 순수를 나타내듯,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

8월 24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영적 지침(The Spiritual Index)"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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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지침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마태복음 7:9) 우리 주님께서 기도를 설명하시기 위해 선한 것을 구하는 선한 자녀를 예를 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처럼 말합니다.(마 5:45) 결코 당신이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주의 뜻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기에 그냥 자리에 앉아 있지 말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이유를 여러 영적 지침을 펼쳐서 찾아보십시오. 당신의 아내 혹은 남편과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당신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좋은 자녀”입니까? “오 주님, 저는 짜증을 냈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영적 축복을 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좋은 자녀”의 자세를 가질 때까지는 그 축복 없이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따지면서 자기 맘대로 행하는 것을 헌신으로 오해합니다. 우리는 영적 지침을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빚진 돈을 갚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뭔가를 더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구하지는 않았습니까? 내게 속한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않으면서 내게 자유를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고 불친절하게 대했습니까? 친척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았습니까?(마 7:12) 나는 오직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오직 빛 가운데 행할 때 하나님의 좋은 자녀가 됩니다.(요일 1:7) 우리 대부분은 기도를 종교적 상투어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감정의 문제가 되었고 하나님과의 ‘신비’한 체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안개를 만드는데 전문가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 지침을 펴본다면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뚜렷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친구와의 관계, 갚지 않은 빚, 혈기를 부린 것 등…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고 ...

토마스 맨턴(Thomas Manton, 1620-77)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는 마치 죽은 자요 관계없는 자인 것처럼 우리 마음을 세상에서 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얼마나 쉽게 이 땅의 염려들에 휩쓸려 가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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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교도와  함께  영광에 사로잡혀 “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   ( 시  123:1)  이 구절은 기도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  마음을 이 땅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피조물에게서 멀리하고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  기도는 말을 많이 하고 떠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영광스러운 성도들과 천사들 사이에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처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  이렇게 기도 가운데 영혼을 천국에 이르게 하는 일에는 갑절의 유익이 있습니다 .  기도는 혼란과 의심과 다른 쓸모없는 생각에서 멀리하는 수단이 됩니다 .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는 마치 죽은 자요 관계없는 자인 것처럼 우리 마음을 세상에서 멀리하지 않는다면 ,  우리 마음은 얼마나 쉽게 이 땅의 염려들에 휩쓸려 가는지요 !  영혼을 구분하고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  우리 기도가 얼마나 많은 우스꽝스러운 생각들로 뒤섞이는지요 !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 ,  마치 친구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하다가 꽃보다도 냄새 나는 잡초를 더 많이 집어넣는 사람처럼 ,  서툴게 행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  육신이 끼어들고 ,  우리의 육적인 마음은 기도를 헛된 생각들과 이 땅의 혼란스러운 일들로 뒤섞습니다 .  하나님께 분향하려고 향로를 들고 나오면서 향에 유황을 섞어놓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세상을 넘어 하나님께 올라가게끔 ,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 속에 완전히 사로잡히게끔 ,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  우리 몸은 땅 위에 있지만 우리 영혼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해야 합니다 .  기도가 이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혼란이 일어납니다 ....

8월 23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은밀한 곳에서의 전투(Prayer—Battle in “The Secret Place”)" by 오스왈드 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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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밀한 곳에서의 전투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 예수님께서는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를 꿈꾸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의지의 노력입니다. 은밀한 곳에 들어가 문을 닫은 후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정연하게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첫 번째 갈등은 방황하는 생각들입니다. 혼자 기도할 때 가장 큰 싸움은 방황하는 생각들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여 의지를 가지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한 특별한 장소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날파리 같은 생각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조용한 시간이란 모든 감정의 문을 의도적으로 닫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며 은밀한 곳에서 우리를 보십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보듯이 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듯이 보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은밀한 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며, 우리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는 은밀한 곳에만 계시고 다른 곳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모든 환경의 중심에 언제나 하나님이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을 가져가 하나님과 대면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매일 잠이 깨는 첫 순간에 당신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이 들어 오시도록 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당신은 온종일 잘못된 차원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을 활짝 열고 당신의 아버지께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면 모든 보이는 일마다 하나님의 임재의 흔적이 남을 것입니다. Prayer—Battle i...

2021년 8월 22일 주보 [8월 정기 후원 6곳에 정성을 나누었습니다. 네팔과 필리핀, 중국과 SFC, CCC, 그책의 사람들 출판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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