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날에 문안드립니다. 내일은 함께 요한복음을 읽고 나누는 날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다룰 예정입니다. 2025년 9월 2일 오전 10시에 줌(zoom)에서 뵙겠습니다. https://us06web.zoom.us/j/9023540308?pwd=JSdaM9nRsQWNcO978njV9UWJvTUIvy.1 회의 ID: 902 354 0308/암호: 111111
9월의 첫날에 문안드립니다. 내일은 함께 요한복음을 읽고 나누는 날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다룰 예정입니다. 2025년 9월 2일 오전 10시에 줌(zoom)에서 뵙겠습니다. https://us06web.zoom.us/j/9023540308?pwd=JSdaM9nRsQWNcO978njV9UWJvTUIvy.1 회의 ID: 902 354 0308/암호: 111111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에 그 답이 있다는 점을 말해왔다.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와 연합하여 그의 충만한 데서 받는 것이다. 한 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살며 주 안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는 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기만 하면 모든 상황이 완전히 바뀌고 달라질 것이다. 교회도 지금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능력과 활기에 넘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무언가 박탈당하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 밖에 머무는 것이요, 기독교가 협소하고 옹졸하며 갑갑하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삶의 영광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걸인처럼 살고 있고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충만함을 받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은 자아만큼 번번히 충만함을 앗아가는 것이 없다.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내가 쇠하지 않는 한 그가 내 삶에서 흥하실 가능성은 없으며, 내가 그의 충만함을 받을 가능성 또한 없다. 현대 많은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중생하는 순간 전부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항상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던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상태가 그랬다. 자신들의 “곤고한 것...